메뉴 건너뛰기

2015.11.25 06:36

덕구의 빈방

조회 수 8920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23750_47796_235.jpg

 

 

밀알선교단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연극 “빈방있습니까?”가 지난 주간 나흘동안 이어졌다. “덕구”는 연극 “빈방있습니까?”의 주인공 이름이다. 그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 지능이 현저히 낮고 말이 어눌하다. 성탄절이 다가오며 그가 다니는 교회 고등부에서 성탄극 “빈방있습니까?” 공연을 기획하게 된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자신에게 어떤 배역을 줄 것인가?’에 관심을 모은다. 은근히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이 그 시절에 아이들에게 있는 공통된 욕심이다. 기대했던 배역이 주어지지 않아 속상해 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은 곧 선생님의 결정에 순응하게 된다.

문제는 선생님이 여관 주인 역에 “덕구”를 배정하면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직접적으로 “덕구”를 비하하지는 못하지만 은근히 반대하는 입장을 내비춘다. “덕구”를 가슴으로 사랑하는 선생님은 아이들의 강력한 반대를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그에게 배역을 맡기게 되고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게 된다. 이미 예측은 했지만 지적장애인 “덕구”가 연극을 소화해 내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끝까지 믿어주고 서로를 배려하며 연습은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덕구”역은 극단 <증언>의 대표인 “박재련 장로”가 맡아 열연을 한다. 20대 후반부터 무려 31년 동안 오직 “덕구”역을 감당해 온 그가 몹시 존경스러웠다. 그는 현재 동숭교회의 시무장로이며 <서울예술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그의 커리어를 모두 내려놓고 장애인 “덕구”가 되어 관중들을 끌고 다닌다. 천연덕스러운 바보연기를 하면서도 절제된 연기력으로 사람들의 눈에서 결국 하얀 액체를 뽑아내고야 만다. “덕구”를 연기하며 그의 청춘은 흘러갔고 내년이면 환갑을 맞이하는 시간에 도달하는 그는 실로 달인이요, 장인이었다.

연극을 지켜보며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또한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예뻐하시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행복했다. 함께 움직이는 극단 <증언>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엄청난 부피와 무게의 소품가방을 나르고 묵묵히 무대장식을 하고 땀을 흘리며 연기를 하고는 또다시 소품을 챙기는 그들의 노고가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웠다. 무려 네 번이나 같은 연극을 보면서 친해질대로 친해진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열연을 펼칠때에 나는 어두운 예배당 한구석에서 동포들과 함께 웃다가 눈물을 훔쳐냈다. 우리 밀알선교단에는 “덕구”가 많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마음은 앞서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몸이 건강한 사람들과 똑 같은 소망이 그들에게도 있건만 그 꿈을 이루는 것은 요원할 뿐이다. 극중 만삭의 마리아를 대동한 요셉이 여관주인인 “덕구”에게 묻는다. “주인장, 빈방있습니까?” 그 물음에 대한 대사는 오로지 “빈방 없습니다.”이다. 하지만 “덕구”는 예수님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외친다. “빈방이 있습니다.” 결국 연극은 엉망이 되고 말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덕구”는 되뇌인다. “어떻게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에게 ‘방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연극이지만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동은 인생관 자체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음을 깨달 았다. “덕구”의 순수한 모습은 혹시 잃어버리고 살았던 우리의 정서를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으리라! 인생은 어차피 연극이 아닐까? 맡겨진 배역에 충실하면서도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며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삶이라면 얼마나 이상적일까? 추운 겨울밤에 공연장을 찾아와 연극 “빈방 있습니까?”를 관람한 분들의 가슴 한켠에 숨겨져 있던 겨자씨만한 믿음이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오염된 내 모습을 발견하고 정화하는 귀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들은 공연을 마치고 떠나갔다. 내 가슴에 구멍하나를 뚫어놓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1월에 가슴 떨리는 크리스마스를 또다시 경험하였다. 나는 장애인들이 예쁘다.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장애인들이 그들의 배역에 감사하며 내가 서있는 그 자리에서 예쁘게 살았으면 좋겠다.


  1. 쇼윈도우 부부 5/28/2012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부부가 있다. ‘어쩜, 저런 선남선녀가 만나 부부가 되었을까?’ 부러워지기까지 하는 커플이 있다. 보이는 것처럼 내면도 행복했으면 좋으련만 그게 아닌가보다. 다가가 묻는다. “댁은 너무 행복하시겠어요. ...
    Views98686
    Read More
  2. 아, 백두산! 5/28/2012

    모처럼의 나들이를 했다. 그것도 나라와 나라를 넘나드는 힘든 여정이었다. 호주에 가서 많은 곳을 둘러보고 수많은 한인들에게 설교를 한 것은 무엇보다 뜻 깊은 시간이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필라델피아에서 오신 33분의 목사님, 장로님들과 합류...
    Views87993
    Read More
  3. 행복하십니까? 5/16/2012

    사람들은 오늘도 행복에 목말라 하고 있다. 행복은 무엇일까? 과연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까?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행복이란 간단했다. “괴깃국(고깃국의 사투리)에 이밥(하얀 쌀밥)을 말아 먹는 것”이었다. 그것은 명절이라야 가능한 일이었...
    Views96055
    Read More
  4. 시드니의 노스탤지어(nostalgia) 5/16/2012

    꿈에 그리던 땅에 도착을 했다. 광활하지만 아름다운 그곳. 호주에 도착하는 그 순간에 나는 이미 들떠있었다. 시드니는 초가을의 숨결로 나를 반겼다. 드높은 코발트색 하늘, 필라델피아를 능가하는 깊은 숲,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바람이 호주임을 실감하게...
    Views97611
    Read More
  5. 사람을 바꾸는 힘 5/16/2012

    그는 고교시절 문제 학생이었다. 한번은 싸움이 붙어 상대방을 주먹으로 가격했는데 뒤로 넘어가더니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응급조치를 취해야 정당하건만 그는 너무 겁이 나서 도망을 치고 말았다. 집에 들어가면 혼이 날 것 같아 3일이나 이곳저곳을 떠돌...
    Views89716
    Read More
  6. 살아있는 비너스 “앨리슨 래퍼” 5/16/2012

    앨리슨 래퍼는 두 팔은 아예 없고 다리는 자라다 만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그녀는 발과 입으로 그림을 그린다. 사진을 찍는 일에 도전하여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며 ‘세계 여성 성취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모성(母性) 및 장애...
    Views103084
    Read More
  7. 정말 그 시절이 좋았는데 5/16/2012

    실로 정보통신 천국시대가 되었다. 한국에 가보면 어리디어린 아이들도 모두 핸드폰을 들고 다닌다. 젊은 시절에 외국영화를 보면 길거리에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는 장면이 있었다. “저게 가능할까?” 생각을 했는데 이제 그 모든 것이 현실이 ...
    Views98143
    Read More
  8. 모자 5/16/2012

    동물들은 모자를 쓰지 않는다. 아니 쓰지 못한다. 사람들만이 모자를 쓴다. 따가운 햇볕을 차단하고 얼굴이 그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모자를 쓴다. 단색인 모자도 쓰지만 언제부터인가 매우 현란한 색깔의 모자들이 등장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
    Views91067
    Read More
  9. STOP! 5/16/2012

    미국에 와서 정말 낯설게 느껴진 것은 팔각형 표지판에 새겨진 <STOP>싸인이었다. 가는 곳마다 <STOP>이 나타나면 차를 정지시켜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너무도 낯설었다. 그러면서 그 옛날 주일학교 전도사 시절에 아이들과 불렀던 어린이 복음성가 “STO...
    Views94481
    Read More
  10. 눈먼새의 노래 3/15/2012

    한 시대를 살며 장애인들에게 참 소망을 주셨던 “강영우 박사님”이 지난 23일(목)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드라마 “눈먼 새의 노래”를 통해서였다. 탤런트 “안재욱”과 “김혜수”가 열...
    Views117099
    Read More
  11. 고부(姑婦) 사랑 3/15/2012

    고부갈등은 드라마의 단골소재이기도 하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피부로 겪는 가족관계이기도 하다. “고부갈등은 사주팔자에도 안 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좋은 것 같으면서도 멀기만 하고 먼 것 같으면서도 챙겨야만 하는 묘한 관계이다. 이런 말...
    Views99521
    Read More
  12. “1박 2일” 마지막 여행 3/7/2012

    세상의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그것을 알고는 있지만 막상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에 밀려오는 서운함은 감당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나는 초등학교를 5군데나 다녔다. 순경아버지를 둔 덕분(?)에 일어났던 일이다. 가장 오래 다녔던 ...
    Views101613
    Read More
  13. 모나미 볼펜 3/7/2012

    우리세대는 연필세대이다. 연필의 이점은 잘못 썼을 때에 지우면 된다는 데 있다. 문제는 연필의 질이었다. 부러지기 일쑤였고, 가끔은 쪼개지는 일까지 속출하였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아이들이 쓰는 연필은 고급 중에 고급인 셈이다. 공책도 질이 떨어져서...
    Views101728
    Read More
  14. 가슴으로 만나야 한다 2/25/2012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만남”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먼저 “숙명적 만남”을 갖는다. 그것이 가족이고 집안이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 보니 그런 분들이 나의 부모님이셨다. ...
    Views100214
    Read More
  15. 나는 엄마다 2/25/2012

    젊은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식을 올린다. 1년 만에 예쁜 딸이 태어났다. 얼마나 착하고 말을 잘 듣는지 가정에는 항상 웃음꽃이 피었다. 몇 년 만에 다시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자라며 놀이방에 맡겼는데 얼마 되지 않아 원장에게 &ldquo...
    Views98629
    Read More
  16. 덕구의 빈방

    밀알선교단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연극 “빈방있습니까?”가 지난 주간 나흘동안 이어졌다. “덕구”는 연극 “빈방있습니까?”의 주인공 이름이다. 그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 지능이 현저히 낮고 말이 어눌하다. 성탄절...
    Views89203
    Read More
  17. 지금 1/25/2012

    이메일을 열었다. “멀리계신 스승님께”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목사님”이라고 불리우는데 익숙한 나에게 “스승님”이라는 호칭은 느낌을 새롭게 한다. 교육전도사 시절에 만났던 제자에게서 온 편지였다. 새해 ...
    Views102287
    Read More
  18. Honey! 1/25/2012

    어느 날 어떤 인연으로 남녀가 만나고 서로를 사랑하기에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된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부부는 어느새 닮아간다. 생김새만 닮는 것이 아니고 성격도 취향도 같아진다. 그래서 부부는 정말 신비하다. 지난 주간 어느 노...
    Views95461
    Read More
  19. 아름다운 빈손 1/25/2012

    “한경직 목사의 아름다운 빈손”<KBS>이라는 영상을 보았다. 이미 고인이 된지 오래지만 한 목사님은 한국교회 127년사에 존경받는 목회자로 귀감이 되고 있다. 66년 전 27명으로 시작한 영락교회는 이제 5만 명이 넘는 성도들이 모이는 대형교회...
    Views90950
    Read More
  20. 젊은날의 푸르름 12/31/2011

    또 한해가 떠나려고 손을 흔들고 있다. “2011년”이라는 어색한 이름을 부르며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정든 한해가 내 곁을 떠나려 하고 있다. 세월을 흘려보내는 일에 이골이 날만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이맘때 찾아오는 서운함은 감출길이 없...
    Views10149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Next
/ 40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