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5.11.25 05:44

모자 5/16/2012

조회 수 6664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모자.jpg

 

 

동물들은 모자를 쓰지 않는다. 아니 쓰지 못한다. 사람들만이 모자를 쓴다. 따가운 햇볕을 차단하고 얼굴이 그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모자를 쓴다. 단색인 모자도 쓰지만 언제부터인가 매우 현란한 색깔의 모자들이 등장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모자를 가까이했다. 아버지가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쓰고 다니시는 경찰모는 몹시도 무거웠다. 경찰모는 앞쪽이 거창하게 올라가고 비둘기가 날개를 펴고 자리 잡고 앉았다.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기에 그랬나보다. 모자 안쪽에는 땀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굵다란 고무호스가 둘러치고 있었다.

경찰 모자를 쓰고 계급장이 달린 정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요샛말로 “짱”이었다. 아버지가 퇴근을 하셔서 모자를 벽에 걸어놓으시고 옷을 갈아입고 나가시면 나는 몰래 아버지 모자를 써보았다. 아버지의 땀 냄새가 기분 좋게 코를 찌른다. 모자가 커서 눈 밑에 까지 덮어 씌어 버렸다. 모자를 쓰고 거울을 향해 거수경례를 붙여 보는 것이 내 취미였다. 비가 올라치면 그 모자위에 비닐커버가 씌어졌고 여름에는 흰색의 천이 모자를 덮었다. 자전거를 타고 동리 곳곳을 누비며 민원을 살피시는 아버지의 멋진 모습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모자는 직업을 나타내기도 하고 직급을 표시해 주기도 한다. 내가 어릴 때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다. 어른들은 새싹그림이 그려진 초록색 모자를 쓰고 열심히 일들을 하셨다. 나에게는 “초록색 모자”에 대한 서글픈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하려던 나의 꿈은 낙방을 맛보며 산산이 부서졌다. 양평중학교(경기도)에서는 상위의 실력을 나타내며 우리 집안에서 “장애를 가졌지만 제일 공부를 잘 한다.”고 칭찬받던 나였는데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진 것이다. 옛날에는 합격자 발표를 학교중앙 건물에 벽보로 붙여 나갔다. 그 순간이 되면 학부모들과 당사자들의 모습은 초죽음이 된다. 심장이 약한 아이는 땅바닥만 쳐다보다가 겨우 고개를 들어 벽보를 바라볼 정도였다.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에 시험을 치른 학교 교정에 들어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와 벽보가 붙여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내가 이 학교에 들어가면 무엇부터 할까?’ 궁리가 많기도 많았다. 하지만 내 이름은 없었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내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다. 자세히 보니 공교롭게도 내 앞과 뒤에 수험번호는 합격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쓸쓸히 돌아섰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 생애 첫 번째 실패였다. 죽고 싶었다. 한강 다리가 떠올랐다. 그냥 걸었다. 온전치 못한 걸음으로 몇 시간을 걸었다.

그러다가 당도한 곳이 청량리 시장이었다. 우연히 초록색 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날부터 나는 초록색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다녔다.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듯 했다.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조차 싫었다. 평소 명랑하던 내 성격은 침울해 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감사한 것은 가족들의 세심한 보살핌이었다. 특히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하셨다. 그냥 내 등만 어루만져 주셨다. 이제야 안다. 애비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 주시며 아들의 표정이 돌아오기를 바라셨다.

그때 나는 모자의 실용성을 터득했다. 모자를 착용하는 사람의 심리도 알아차렸다. 그래서 인지 나는 지금도 모자를 쓴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을 할 때 모자를 쓰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따가운 태양광선을 피하기 위해 쓰는 모자는 당연하다. 하지만 항상 모자 쓰기를 즐겨한다면 그 사람은 우울증 초기현상을 겪고 있는 지도 모른다. 모자는 내 표정은 감추면서도 모든 사람과 상황은 볼 수 있는 희한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한편 모자가 잘 어울리는 사람을 나는 부러워한다. 이상하게 나는 모자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또 모자를 써서 머리가 눌리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어떠세요. 모자 좋아하세요?


  1. 정말 그 시절이 좋았는데 5/16/2012

    실로 정보통신 천국시대가 되었다. 한국에 가보면 어리디어린 아이들도 모두 핸드폰을 들고 다닌다. 젊은 시절에 외국영화를 보면 길거리에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는 장면이 있었다. “저게 가능할까?” 생각을 했는데 이제 그 모든 것이 현실이 ...
    Views73381
    Read More
  2. 모자 5/16/2012

    동물들은 모자를 쓰지 않는다. 아니 쓰지 못한다. 사람들만이 모자를 쓴다. 따가운 햇볕을 차단하고 얼굴이 그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모자를 쓴다. 단색인 모자도 쓰지만 언제부터인가 매우 현란한 색깔의 모자들이 등장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
    Views66647
    Read More
  3. STOP! 5/16/2012

    미국에 와서 정말 낯설게 느껴진 것은 팔각형 표지판에 새겨진 <STOP>싸인이었다. 가는 곳마다 <STOP>이 나타나면 차를 정지시켜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너무도 낯설었다. 그러면서 그 옛날 주일학교 전도사 시절에 아이들과 불렀던 어린이 복음성가 “STO...
    Views70762
    Read More
  4. 눈먼새의 노래 3/15/2012

    한 시대를 살며 장애인들에게 참 소망을 주셨던 “강영우 박사님”이 지난 23일(목)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드라마 “눈먼 새의 노래”를 통해서였다. 탤런트 “안재욱”과 “김혜수”가 열...
    Views88555
    Read More
  5. 고부(姑婦) 사랑 3/15/2012

    고부갈등은 드라마의 단골소재이기도 하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피부로 겪는 가족관계이기도 하다. “고부갈등은 사주팔자에도 안 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좋은 것 같으면서도 멀기만 하고 먼 것 같으면서도 챙겨야만 하는 묘한 관계이다. 이런 말...
    Views75200
    Read More
  6. “1박 2일” 마지막 여행 3/7/2012

    세상의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그것을 알고는 있지만 막상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에 밀려오는 서운함은 감당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나는 초등학교를 5군데나 다녔다. 순경아버지를 둔 덕분(?)에 일어났던 일이다. 가장 오래 다녔던 ...
    Views76765
    Read More
  7. 모나미 볼펜 3/7/2012

    우리세대는 연필세대이다. 연필의 이점은 잘못 썼을 때에 지우면 된다는 데 있다. 문제는 연필의 질이었다. 부러지기 일쑤였고, 가끔은 쪼개지는 일까지 속출하였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아이들이 쓰는 연필은 고급 중에 고급인 셈이다. 공책도 질이 떨어져서...
    Views77065
    Read More
  8. 가슴으로 만나야 한다 2/25/2012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만남”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먼저 “숙명적 만남”을 갖는다. 그것이 가족이고 집안이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 보니 그런 분들이 나의 부모님이셨다. ...
    Views76200
    Read More
  9. 나는 엄마다 2/25/2012

    젊은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식을 올린다. 1년 만에 예쁜 딸이 태어났다. 얼마나 착하고 말을 잘 듣는지 가정에는 항상 웃음꽃이 피었다. 몇 년 만에 다시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자라며 놀이방에 맡겼는데 얼마 되지 않아 원장에게 &ldquo...
    Views74555
    Read More
  10. 덕구의 빈방

    밀알선교단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연극 “빈방있습니까?”가 지난 주간 나흘동안 이어졌다. “덕구”는 연극 “빈방있습니까?”의 주인공 이름이다. 그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 지능이 현저히 낮고 말이 어눌하다. 성탄절...
    Views65858
    Read More
  11. 지금 1/25/2012

    이메일을 열었다. “멀리계신 스승님께”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목사님”이라고 불리우는데 익숙한 나에게 “스승님”이라는 호칭은 느낌을 새롭게 한다. 교육전도사 시절에 만났던 제자에게서 온 편지였다. 새해 ...
    Views77800
    Read More
  12. Honey! 1/25/2012

    어느 날 어떤 인연으로 남녀가 만나고 서로를 사랑하기에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된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부부는 어느새 닮아간다. 생김새만 닮는 것이 아니고 성격도 취향도 같아진다. 그래서 부부는 정말 신비하다. 지난 주간 어느 노...
    Views70142
    Read More
  13. 아름다운 빈손 1/25/2012

    “한경직 목사의 아름다운 빈손”<KBS>이라는 영상을 보았다. 이미 고인이 된지 오래지만 한 목사님은 한국교회 127년사에 존경받는 목회자로 귀감이 되고 있다. 66년 전 27명으로 시작한 영락교회는 이제 5만 명이 넘는 성도들이 모이는 대형교회...
    Views68204
    Read More
  14. 젊은날의 푸르름 12/31/2011

    또 한해가 떠나려고 손을 흔들고 있다. “2011년”이라는 어색한 이름을 부르며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정든 한해가 내 곁을 떠나려 하고 있다. 세월을 흘려보내는 일에 이골이 날만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이맘때 찾아오는 서운함은 감출길이 없...
    Views76531
    Read More
  15. 성탄의 축복이 온누리에! 12/26/2011

    어린 시절에 성탄절은 꿈의 날이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았으면서도 성탄이 가까워오면 이상하게 가슴이 설레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리며 그날을 기다리고 첫눈이 휘날리는 한가운데에 서서 그날을 바라보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밤늦게까지 버티다가 눈...
    Views79246
    Read More
  16. 빨리 빨리! 12/26/2011

    우리 한국 사람들의 특징은 조급함이다. 식당에 들어서서 제일먼저 하는 말은 “여기 빨리 주문 받으세요”이다. 메뉴 주문을 받고 돌아서는 종업원에게 또 한마디를 한다. “아줌마, 빨리 주세요.” 유럽에 있는 레스토랑은 식당을 열고...
    Views64892
    Read More
  17. 떠나가는 분을 그리며 12/26/2011

    9년 전 필라델피아에 와서 밀알사역을 감당하면서 눈에 들어온 후원자의 이름이 있었다. 특이하게 이름이 네 자였다. “남궁” “독고” “황보”성을 가지신 분들은 자연스럽게 이름이 네자가 나올 수 있지만 그분은 나처럼 &...
    Views67359
    Read More
  18. 기적은 있다 12/15/2011

    인생을 살다보면 벼라별 일들을 다 만나게 된다. 나에게는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에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좋은 일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극한 고난을 만날 때에 사람은 당황한다. &ldquo...
    Views69032
    Read More
  19. 잘 되는 나 12/8/2011

    이것은 ‘긍정의 힘’의 저자 조엘 오스틴이 내놓은 역작의 제목이다. 너무 노골적이지만 현대인들은 그런 취향에 익숙해 진지 오래이다. 조엘 오스틴의 책을 접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음을 나도 느낀다. 아마 그것은 정식으로 신학을 하...
    Views68022
    Read More
  20. 동보극장 간판 예술가 12/8/2011

    평생 경찰로 살아오시던 아버지는 퇴직을 하시자마자 모든 것을 정리하여 서울행을 결심하신다. 내 나이 16살에 나는 그렇게 꿈꾸던 서울사람이 되었다. 밤이 되면 거리를 수놓는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이 어린 가슴을 설레이게 하였다. 처음에는 어리버리하던...
    Views7904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Next
/ 36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