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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31 21:38

뭐가 그리 서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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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마다 세대별로 서운함을 안고 인생을 엮어간다. 아이 때는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가지지 못한 것부터, 형제가 많은 가정에서 자라난 까닭에 새 옷은 꿈도 꾸어보지 못하고 항상 맨 위부터 물려주는 것을 입어야 했던 서러움까지. 이성에 눈을 뜨는 시기에 내가 바라보는 소녀는 다른 아이를 좋아보고, 전혀 관심이 없는 아이는 나를 따르는 어긋남에 실망한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지만 뒷받침을 못해주는 부모가 못내 원망스러워 벌판에 나가 소리 지르며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풀어내며 산다. 그런 세월이 손에 잡힐 듯한데 머리에 흰서리가 내려앉으며 젊은 날의 초상은 저만치 멀어져가는 나이가 서럽다. 선배들의 비위를 맞추며 변죽 좋게 지내던 때는 다 지나가 버리고 어느새 그 자리에 내가 서보니 온갖 서운함이 밀려온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60을 넘어서는 것을 “이순”(耳順)이라 한다. 뜻은 “귀가 순해져서 듣는대로 이해 할 수 있게 됨”이다. 60이 깊어지며 세월의 속도에 놀라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신체 반응을 보면서 마음도 쇠약해지는 것을 실감한다. 10년 전 쯤일까? 모처럼 찾아간 L.A. 선배 집에서 하룻밤은 묵고 아침을 함께 나누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식사 후 으레 복용하는 약 먹는 모습을 보며 선배가 물었다. “약이 잘 넘어가요?” 목사라고 항상 공대를 한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왜요? 선배는 안되요?” “나이 더 들어봐요. 약을 넘기기도 힘들어져요?” 아직까지 그런 어려움이 없는 것이 다행스럽다.

 

 5월 19일(주일) 평상시 가까이 지내던 선배가 은퇴를 했다. 교회를 개척하여 꼬박 30년을 목회 해 온 분이다. 축하 봉투에 이렇게 적었다. “사랑하는 목사님, 30년 목양일념하시다가 영예롭게 은퇴하심을 축하드립니다.” 며칠 후 감사의 전화가 걸려왔다. ‘감동받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제 멀리만 느껴지던 “은퇴”라는 단어가 점점 가까워 옴을 느낀다. 건강하고 의욕이 넘칠지라도 “박수 칠 때 떠나는 것”이 본인에게나 모두를 위해서 미덕인 듯 싶다.

 

 30세. 목사 안수를 받았다. 젊디젊은 목사는 여유로웠다. ‘와우, 은퇴까지 40년이 남았네’ 멀게만 느껴지던 그 시점이 한국, 미국을 오가며 목회를 하다보니 저만치 바짝 다가서고 있다. 21년 전, 밀알선교단 단장으로 필라델피아와 인연을 맺었다. 사람들은 내가 부임 한지 30년을 훨씬 넘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활동 영역이 넓어 보여서 인 것 같다.

 

 전혀 낯선 고장에 와서 사람들을 사귀고, 교회를 찾아가 예배하며 담임 목사님들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만나는 분들에게 밀알선교단을 소개하며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돕는 손길이 늘어갔고, 부족한 종을 초청하여 강단을 내어주는 교회가 수를 더해갔다. 마트, 식당, 각종 모임에 가보면 참석자들이 거의 아는 분들인 것을 보면 이제 필라 사람이 다 된 듯하다.

 

 그러면서 지긋한 나이에 접어드는 분들의 모습에 서러움이 밀려온다. 간혹 병석에 누워계신 분들의 소식을 듣는다. 세상을 떠나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다. 성경의 교훈처럼 장례식에 참석할 때마다 인생을 돌아보고 깊은 감회에 젖는다. 관 속에 고운 옷을 입고 누워있는 분을 Viewing 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며 눈시울을 달군다. 금방이라도 내 손을 잡으며 “이 목사님 오셨네”하며 특유의 미소를 지을 것만 같다.

 

 “잘 나갈 때는 사랑이 오더니 힘들었을 땐 싫다고 가더라. 돈 떨어지면 사랑도 떨어지더라. 인생이 무슨 낙엽이 드냐 이제야 나는 알았네 바람 불면 떨어지는 인생은 낙엽이란걸. 이제야 나는 알았네. 인생은 바람이어라” 노래 가사가 실감이 난다.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을 입구에서 보면 길어 보이지만 출구에 서보면 너무나도 짧다” 기가 막힌 말이다. 젊을 때는 길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선배들이 은퇴하는 모습을 보며 아쉬움이 다가선다.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시도해 볼 용기가 날 텐데.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나 자신의 현주소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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