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7.03.11 20:19

까까 사먹어라!

조회 수 6870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밭매기.jpg

 

 

 어린 시절. 방학만 하면 나는 포천 고향집으로 향했다. 지금은 너무도 쉽게 가는 길이지만 그때만 해도 비포장 자갈길을 ‘덜컹’거리며 버스로 2시간은 족히 달려야했다. 때문에 승객들은 거의 차멀미에 시달렸다. 버스에는 항상 차멀미하는 사람들을 위해 묘한 모양의 비닐봉지가 배치되어 있었다. 다행히 나는 멀미가 없었다. 한참을 달려 ‘강구남’에 내리면 버스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음 정류장인 일동을 향해 내달린다. 그곳에서 오리 길(2Km)을 걸어 들어가야 고향집이다. 가족들과 함께 갈 때면 등에 업혀가는 행운이 주어지지만 학년이 올라가며 홀로 가야만 하였다.

 

 굽이굽이 시냇물을 끼고 돌아 황소들의 꼬리 짓과 멍멍이들의 짖는 소리를 뒤로하고 언덕에 올라서면 커다란 큰댁이 눈에 들어온다. 그때만 해도 동네에 낯선 사람이 오기만하면 관심을 가지던 시절이다. 내 걸음걸이가 예사롭지 않아서인지 큰댁 누이들에게 “재철이가 온다.”는 전갈이 전해지면 누이들은 논둑을 달려 나를 반겼다. 마치 릴레이 경기를 하듯이 달려 나오던 누이들의 모습은 그림 같은 옛 추억이다. “영순이, 양순이” 누나. 그리고 동갑내기 “화순”이 까지. 그렇게 시작된 방학은 꿈같은 시간이었다.

 

 여름방학은 뒷산으로 헤매며 딸기랑, 머루랑 따먹고 다니고, 앞 개천 뚝방에서 ‘멱’을 감으며 놀았다. 겨울방학에는 사랑방 아랫목에서 친척 또래들과 놀이를 하고 눈싸움과 썰매, 그리고 팽이치기, 비석치기, 다마(구슬)치기를 하느라 하루가 모자랐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던지? 무엇을 하느라 방학숙제는 다락에 쳐 밖아 놓고 그렇게 놀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밤에 먹던 ‘참’은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작은댁에는 형들이 많았다. 한참을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가 “재철아, ‘다식’ 먹을래?” 물어오며 다락에서 꺼내온 엿과 주점불이를 먹다보면 겨울밤은 달달하게 깊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집으로 돌아올라치면 언제나 큰엄마(백모님)는 떠나려는 나를 멈춰세우시고는 용돈을 쥐어주셨다. 바로주시는 것이 아니다. 돌아서서 적삼을 걷어 올려 한참을 걸려 꺼낸 쌈지 돈을 내 손에 쥐어주며 말씀하셨다. “재철아, 가다가 ‘까까’ 사먹어라!” 그 목소리가 얼마나 구성지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그 돈이 어떤 돈일까? 지난 가을 추수를 하신 후 따로 보관해 놓은 비상금일까? 아니면 면사무소에 다니는 큰 형님이 주신 용돈이었을까? 아니면 조카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 놓으신 돈이었을까?

 

 가다가 ‘까까’ 사먹어라!”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정겨웠던지. ‘까까’란 그냥 흘려들으면 ‘과자’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큰엄마가 돈을 주실 때는 항상 즉흥적인 모습이었음을 기억한다. 미리 준비했다가 주는 것이라면 꺼내기 쉬운 곳에 두었다가 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잘 가라!”며 손을 흔들고는 돌아서서 적삼을 들춰 올려 속곳에서 꺼내 주셨다. 그냥 보내기는 서운하고 안쓰럽고 떠나려는 조카를 멈춰 세우고 고이 간직했던 비상금을 주셨던 것 같다.

 

 그것은 단지 돈이 아니었다. 정, 사랑, 헌신, 희생이었다. 큰엄마는 정이 많은 분이었다. 저녁밥을 지을 때면 중무장을 한 군인들이 양식을 얻으러 민가에 찾아 들었다. 지금처럼 군 식량이 넉넉한 때가 아닌 시대였다. 군인들이 나타나면 어린 우리들은 겁이 나서 몸을 숨긴다. 그런 군인들을 큰엄마는 그냥 보내는 일이 없었다. 방금 지은 따뜻한 가마솥 밥을 군인이 준비해온 “반합”에 ‘꾹꾹’ 눌러 담아주셨다. 숨어서 나는 그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러기에 나는 큰엄마가 쥐어주는 ‘까까’ 사먹을 돈을 주머니에 넣으며 그 사랑도 함께 가슴에 담았다. 그것이 지나보니 내 재산이었다.

 

 그 사랑을 먹고 내가 장성했다. 큰엄마의 쪽머리, 억척스러우리만큼 밭일을 하시던 모습. 그러면서도 방학 때 찾아온 나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시던 그분의 사랑이 내 가슴에 녹아있다. 그 받은 사랑을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1.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5/17/2013

    지난 2월 명지대학교 합창단을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었다. 공연을 마치고 우리 집 거실에 둘러앉아 공연 후감을 나누며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밖에는 얄궂은 함박눈이 대지를 덮어가고 있었다. 진지하게 혹은 스스럼없이 토론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젊은 ...
    Views71803
    Read More
  2. No Image

    그래도 가야만 한다<송년>

    밀알선교단 자원봉사자 9학년 남학생에게 물었다. “세월이 참 빠르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란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그렇구나, 세월이 안간다’고 느끼는 세대도 있구나! 그러면서 그 나이에 나를 생각해 보았다. 경기도 양평...
    Views8752
    Read More
  3. 그래도 살아야 한다

    지난 14일. 배우 겸 가수인 설리(최진리)가 자택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녀의 나이 겨우 25살.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청춘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청순하고 빼어난 미모, 평소 밝은 성격의 그녀가 자살한 것은 커다란 충...
    Views32708
    Read More
  4. 그러려니하고 사시게

    대구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절친 목사에게 짧은 톡이 들어왔다. “그려려니하고 사시게”라는 글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형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부친 목사님의 연세가 금년 98세이다. “혹 무슨 화들짝 놀랄만한 일이 생기더라도...
    Views21457
    Read More
  5. 그렇게 父女는 떠났다

    2002년 남가주(L.A.)밀알선교단 부단장으로 사역할 때에 일이다. L.A.는 워낙 한인들이 많아 유력하게 움직이는 장애인선교 단체만 7개 정도이고, 교회마다 사랑부(장애인부서)가 있어서 그 숫자를 합하면 규모가 크다. 감사하게도 선교기관들이 서로 협력관...
    Views11007
    Read More
  6. 그렇게 놀았기에 3/13/15

    인생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즐거움이다. 갓 태어난 아가들도 어느새 편안하고 즐거운 것을 알아차리며 성장한다. 사람이 추구하는 즐거움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먼저는 “배우는 즐거움”이다. 지식이든 기술이든 악기든지 처음 그것을 배...
    Views69383
    Read More
  7. 그렇고 그런 얘기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딸이 소리친다. “아빠, 송중기, 송혜교가 결혼한대요. 그것도 10월이라네.” “그래? 와!” 온 가족이 갑자기 두 사람 결혼소식에 수선을 떤다. 아니, 두 사람과 인연은커녕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는데 말이...
    Views59068
    Read More
  8. 그쟈?

    철없던 시절에 친구들끼리 어울려다니며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다가 끝에 던지는 말이 있었다. “그쟈?” 무척이나 정겨움을 안기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더딘 듯 한데 빠르게 지나는 것 같다. 지루한 듯한데 돌아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있...
    Views11667
    Read More
  9. 글씨 쓰기가 싫다

    한국에서의 일이다. 1984년, 한 모임에서 백인 대학생을 만났다. 남 · 여 두 학생은 백인 특유의 또렷한 이목구비와 훤칠한 키로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이 연인사이였는지, 아니면 그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다정다감하고 ...
    Views74379
    Read More
  10. 금수저의 수난

    지난 2월 5일. 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 당사자로 나서게 되었다. 김희국 의원이 물었다. “지금 버스 · 택시 요금이 얼마입니까?” 장관이 즉각 답변을 못하면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나중에는 “카...
    Views19155
    Read More
  11. 기다려 주는 사랑

    누구나 눈을 뜨면 외출을 한다. 사업이나 직장으로, 혹은 사적인 일을 감당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누군가 출입문을 나설때면 배웅을 해준다. 덕담을 곁들여서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깍듯이 인사를 하고 등교를...
    Views8817
    Read More
  12. 기다림(忍耐)

    현대인들은 빠른 것을 좋아한다. 무엇이든지 짧은 시간에 큰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스피드가 아니라 기다림이다. 왜냐하면 기다림은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절대 조급하지 않으시다. 하나님의 백성...
    Views162593
    Read More
  13. 기분 좋은 긴장감 8/31/2013

    사람들은 모두 삶의 긴장감에 대해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좀 더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구나 원한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 ‘호락호락’하던가? 평안이 계속 될 것만 같던 삶에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고 긴장감 속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
    Views74339
    Read More
  14. 기분 좋은 상상 12/9/2013

    평생 건강하게 사는 사람은 장애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장애인에게는 모든 것이 꿈이요, 기적이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들을 장애인들은 평생 꿈으로 바라보며 산다. 삼중고(시각, 청각, 언어장애)의 고통을 끌어안고 살았던 헬렌켈러의 ...
    Views66249
    Read More
  15. 기적은 있다 12/15/2011

    인생을 살다보면 벼라별 일들을 다 만나게 된다. 나에게는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에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좋은 일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극한 고난을 만날 때에 사람은 당황한다. &ldquo...
    Views69502
    Read More
  16. 기찻길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자란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접하는 것이 있다.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면 푸른 바다와 그 위를 유유히 가르며 다니는 크고 작은 배들. 비행장 근처에 살았다면 헬리콥터로부터 갖가지 모양과 크기에 비행기를 보며 살게 된다. 나...
    Views27596
    Read More
  17. No Image

    기회를 잡는 감각

    인생은 어쩌면 기회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신은 평생 사람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세 번 허락한다고 한다. 가만히 내 인생을 돌아보라! 기회가 많았다. 기회를 기회로 잡지 못하면 흘러간 시간이 되고 만다. 매사에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 희한한 사...
    Views48588
    Read More
  18. 길은 여기에 3/6/15

    삶의 깊은 고독과 번민이 밀려오던 젊은 날이 있었다. 고통이 심해지다 보니 신앙의 회의마저 밀려오고 장애의 무게는 내 청춘을 짓눌러댔다. 그때 누군가가 내어민 책이 “길은 여기에”였다.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의 자전적 소설인 “길...
    Views76310
    Read More
  19. 깊은 물 7/29/2013

    무더운 여름, 집 앞 시냇가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피해 살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을 따라 다리 밑으로 향하고 물에 뛰어들며 수영을 배웠다. 물먹기를 반복하고 아이들의 놀림을 받으며 수영실력은 늘어갔다. 수영을 익히면서 물과 친근해 졌다. 물에 몸을 맡...
    Views77187
    Read More
  20. 까까 사먹어라!

    어린 시절. 방학만 하면 나는 포천 고향집으로 향했다. 지금은 너무도 쉽게 가는 길이지만 그때만 해도 비포장 자갈길을 ‘덜컹’거리며 버스로 2시간은 족히 달려야했다. 때문에 승객들은 거의 차멀미에 시달렸다. 버스에는 항상 차멀미하는 사람...
    Views6870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36 Next
/ 36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