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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 사람일수록 “행복지수”가 높아진다고 한다. 그중에 편지에 대한 애틋한 추억은 내 인생의 가장 값진 재산이다. 돌아보니 그때 열심히 편지를 쓴 덕분에 문장력과 표현력이 늘어간 것 같다. 무엇이든 세세히 보는 감성도 그때 살아났다.

 

 고등학교 2학년,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면서 나와 친구들의 주머니에는 수상한 쪽지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다름 아닌 간단한 자기 소개서와 주소가 적힌 종이였다. 버스가 달리다보면 가끔 속도가 늦춰지는 경우가 있다. 그때를 맞추어 차창을 열고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얼굴을 가르키며 준비한 “쪽지”를 떨군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고 낙후된 방법이지만 그렇게 펜팔을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몇 번의 편지가 오가면서 사진이 교환되고 10대의 사랑은 점점 깊어만 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 편지 왔어?”가 첫 번째 질문이었다. 건네주는 편지를 개봉하며 가슴은 요동쳤다.

 

 청춘! 사랑하는 이로부터 편지를 받을 때 가슴에 파동치는 절절한 사랑의 느낌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쓴 사랑의 글들을 읽으면서 얼마나 그리움에 사무쳤던가? 그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고 답장을 쓸 때면 가슴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쌓여진 편지를 틈 날 때마다 열어보고 그 아이를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나이 들어감이 서러운 것이 아니고 그런 청춘의 설레임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 안타깝다. 현대의 비극은 글을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90년대 후반부터 마우스가 등장하며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시대가 열렸다. 쑥스러웠지만 구청에서 개설한 “컴퓨터 교실”에 등록하여 컴퓨터를 배웠다. 신기했다. 자판을 두드리고 이윽고 프린터로 출력되는 과정이 놀라웠다.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를 준비하는 일이다. 전도사 시절부터 필사로 설교를 준비했기에 그것이 편하고 익숙했다. 직접 펜으로 써야 내 설교 같았기 때문이다. 오랜 날 그렇게 버티다가 결국 컴퓨터로 설교를 준비하는 단계로 전환하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뭔가 어색하고 남이 준비한 것을 설교하는 듯하였지만 문명의 이기는 내 감정까지 집어 삼키고 말았다.

 

 인터넷 채팅이 시작되더니 이제는 톡방이 생겨서 사람들마다 핸드폰으로 소통을 한다. 모임, 세미나, 이제는 가족, 친구들까지 핸드폰 톡으로 사람을 모으고 대화를 나눈다. 따라서 긴 문장은 필요없다. 의사전달과 명확한 답변이 있을 뿐이다. 직접 펜을 붙잡고 생각에 생각을 해가며 글을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어떤 때는 운전중에도 쉬엄쉬엄 핸드폰 문자를 두드린다. 편리해서 좋기는 한데 점점 사람 사는 냄새가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서운하다.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 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편지”의 가사이다.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파악은 못하겠지만 가슴에서 무언가가 우러나오게 하는 노래가 아닌가?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사람마다 필체가 다르다. 필체 속에서 그 사람의 냄새를 맡고 그 사람의 음성을 듣는다.

 

 나뭇잎을 주워 두꺼운 책 속에 오랜 시간 끼워 놓았다가 편지와 함께 동봉하여 보내본 경험이 있는가? 약간 벌레 먹은 낙엽은 최고의 가치를 드러내었다. 노오란 은행잎, 청순하게 피어있는 코스모스, 다양한 색깔의 나뭇잎이 가슴의 말을 담고 상대에게 전달되었다.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설레임. 드디어 날아온 편지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어 읽어 내려가던 한줄, 한줄. 자신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가며 진한 미소가 번진다. 처음에는 평범한 편지 봉투가 오고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봉투와 편지지는 다양해져 간다. 가을이 떠나가고 있다. 날리는 낙엽이 묘한 한숨을 내뱉게 한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시인 류시화의 시집이다. 곁에 있지만 말로가 아닌 글로 애틋한 마음을 전해보면 어떨까? 추억, 낭만, 그리움, 첫 만남, 첫 스킨쉽, 진정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이 사무치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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