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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반 가을이었다. 다일 영성수련원(원장:최일도 목사) 경축전 ‘특송’을 부탁받고 경기도 양평 옥천을 거쳐 설악 뒷산을 차로 질주하고 있었다. 산마다 물감을 뿌려 놓은 듯 각양각색의 영롱한 단풍이 가을이 깊어감을 실감케 했다. 차창에 부딪쳐오는 낙엽을 바라보며 CD 플레이어의 버튼을 눌렀다. 양희은의 “한계령”이 흘러나왔다. 특유의 정감어린 목소리와 가사가 가슴 한복판을 휘감아왔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뜻 모를 눈물줄기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서른을 넘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회한일까?

그 해 가을은 잔인하지만 달달하게 내 곁에 찾아왔다. 바람은 거리낌이 없다. 불고 싶은데로 방향을 잡는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살고 싶은 욕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물어왔다. “바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머뭇거리는 나에게 그는 조용히 한권의 책을 내어밀었다. 책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연두색바탕에 짙은 글씨로 “바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책을 펼쳤다. “바람이 되려면, 너의 색깔이 없어져야 한다.” ‘헉’하고 숨이 막혀왔다. 궁금한 마음으로 그 다음 장을 펼쳤다. “바람이 되려면, 가벼워 져야한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 졌다. 아! 정말 그렇구나.

바람이 되려면? 자기만의 색이 없어져야 한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복잡한 일을 만나면 넋두리처럼 말한다. “아, 바람처럼 살고 싶어!” 하지만 내 색깔이 짙어지면 바람처럼 살 수가 없다. 바람이 되려면 가벼워져야 한다. 그래야 불려간다. 하지만 너무 무겁다. 삶의 무게가 버겁고 만가지 생각이 눌러오기 때문이다. 바람이 되기는커녕 무거워서 땅을 파고 기어 들어가야 할 지경인지도 모른다.

바람이 되고 싶다하고선 금방 의견이 안 맞는다고 다툼을 벌인다. 어느새 삶의 색깔은 까맣게 변해버린다. 오늘도 우리는 사건 속에 살아간다. 사건을 사건일 뿐 사실 행, 불행은 시간이 결정해 준다. 그런데 우리는 사건을 만나는 즉시 판단을 해 버린다. 일어난 일에 대해 나만의 해석, 나만의 생각으로 까맣게 무거운 마음을 만들어 놓고 지고 다닌다. 그래서 마음은 무겁고, 세상은 까맣다.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예”하며 받아들이자. 마음의 색깔이 까맣다면 “예”하면 그뿐이다. “예”할 때 모든 시름이 사라진다. “예”할 때 가벼워지고 바람이 된다. 그렇게 무거운 까만색인 자신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하, 지금 내 마음이 까맣구나!’하고 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람이다.

바람은 세기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뺨을 어루만지듯 불어오면 저절로 눈을 감는다. 그러다가 드러눕는 풀밭은 엄마의 품처럼 아늑하다. 머리칼을 흩날리며 불어오는 바람이 있다. 그럴 때는 바람에 모든 것을 맡겨야만 한다. 바람을 거스릴 필요가 없다. 바람 부는 대로 몸을 맡기면 바람이 내게 말하는 소리가 있다. 누군가 바닷가에서 주운 커다란 소라껍질을 주며 말했다. “그거 귀에 대고 있으면 파도 소리가 난다.” 정말 바람은 소라껍질을 타고 내게 파도소리를 들려주었다. 산위에서 바람을 대하면 가슴이 뚫린다. 친구가 말했다. “사람 몸에 좋은 것이 있는데 ‘삼림욕’, ‘일광욕’,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것이 ‘풍욕’이라”고.

까만 밤에는 별이 더 잘 보인다. “조금 있으면 까만 하늘에 별이 총총 예쁘게 뜨겠네.”하며 만사를 희망으로 보는 사람이 바람이다. 그렇게 뜨고 지며 도착하는 동네가 있다. 바로 “감사동네.”이다. 길 끝에 마을이 있다. 그때 만나는 마을이 “감사 마을”이다. 바람이 되어 가다보면 산을 만나고 꽃을 만난다. 들판을 지나 산을 마주하면 나무들을 쓰다듬고 지나간다. 오늘도 ‘두렵다, 불안하다, 슬프다, 부끄럽다, 아프다, 눈물이 난다.’ 그렇게 표현하고 살 수 있어 감사하다. 그 마음 바라보며 안아주는 내가 있어 고맙다. 아! 바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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