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6423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세월의_끝자락.jpg

 

 

한해가 조용히 저물어 가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사람은 누구나 회상에 젖는다. 이민생활이 워낙 각박해서 그럴 여유조차 없는 분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해의 높이가 낮아진 만큼 햇빛이 방안 깊숙이 파고 들어와 좋다. 반면 그 낮아진 햇빛에 비친 산 그림자가 마당까지 들어온다. 집 주위에 선 나무 그림자도 길게 져서 둘러싼 공간은 명암이 분명하면서도 빛은 옅어졌다. 한여름 하늘을 붉고 찬란하게 물들이던 석양도 겨울기운에 생기를 잃은 듯하다. 

때 이른 폭설이 흰백색의 세계를 연출하고 특유의 찬 공기가 엄습하면서 겨울의 한복판에 들어왔음을 실감나게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느끼는 것은 그날이 그날 같은 무료함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1년 열두 달, 삼백예순닷새 하루라도 의미 없는 날은 없었던 것 같다. 둥근 고리에 처음과 끝이 어디 있으랴? 365일 돌아가는 나달에 처음과 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기준이 없으면 나달에 매듭을 지을 수 없고, 삶의 순환과 주기를 가늠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날짜와 요일을 확인하고 그렇게 한해를 달리다가 끝자락에 당도하면 묵은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다가올 새해에 대한 뜻 모를 설레임을 가지며 보내게 된다. 따지고 보면 새해가 어디 있으며 새날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해가 바뀌며 어느 것 하나라도 맺고 끊고 새로 이어갈 수 있음이 다행스럽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해와 달이 참 가깝게 느껴졌다. 달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에 민감했고 달이 찼다 이지러졌다 하는 모양으로 날을 헤아리고 철을 가늠하였다. 아무런 볼 것, 들을 것도 없었지만 그때 밤은 너무도 흥미 있는 일들이 많았다.

볏 짚단 속에 들어가 ‘킥킥’거리고, 담벼락에 기대어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찾아 들어간 친구 집 건넌방에서 우리는 소박한 추억을 만들었다. 그즈음에 먹는 간식은 ‘무우’아니면 ‘고구마’가 전부였다. 창호지로 만들어진 문풍지가 조금만 틈을 내주어도 겨울바람은 매섭게 파고 들어왔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래서 더 정겨웠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무엇이 그리 재미있었는지 괘종시계가 열한번을 울려대고야 우리는 떠밀리듯 일어섰다.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잡을 수 없는 바람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어쩌다 마주치는 분들이 멈춰서서 인사를 건네온다. “목사님, 칼럼 잘 읽고 있어요.” “예, 예”하고 돌아서지만 힘이 난다. 지난주에는 해리스버그에 설교를 하러갔다. 예배 후에 인상 좋은 집사님 한분이 다가온다. “목사님, 제가 목사님 칼럼 팬이예요. 이렇게 만나뵈니 너무 반갑네요.” “아니 어떻게 이 먼 곳에서 제 글을 읽으세요?” “마트에 나가면 신문을 꼭 챙겨오거든요.” “와!” 고마웠다. 그러면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올라왔다.

누구나 가슴 한켠에 아스라한 그리움 하나쯤은 있다. 그것은 향수 같은 것 일수도 있고 그리움 일 수도 있다. 애틋한 사랑 일수도 있고 저만치 떠나버린 연인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내 칼럼을 읽으며 사람들이 추억에 젖었으면 좋겠다. “그래 그때는 그랬지. 그래 맞아!”

까맣게 잊혀졌던 그리움을 다시 퍼 올려 주는 그런 글을 계속 쓰고 싶다. 그리움을 오래 간직한 사람일수록 맑고 깨끗한 심성을 지니고 있는 분들이 많기 마련이다. 당장 살아가는데 있어 그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그리움과 심성을 소유한 분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아름답고 마음까지 따사로와 질 것 같다. 그리움이 번져 추억이 되고 추억을 그리다 그리움으로 사무쳐오는 것을 보면 그리움과 추억은 서로 오래된 기억으로 부터 오는가보다.

새해에는 그 머무르고 싶은 이야기 속으로 더 들어가련다. 세세한 부분까지 보고 거기에 이야기와 생각을 담고 감정까지 담아 많은 분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 한 해 동안 부족한 종의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1. 소아마비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지던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은 어디나 가기를 좋아하던 나를 언제나 데리고 다니셨다. 몸이 온전치 못한 아들, ‘기우뚱’거리며 걸어 다니는 아들이 그분들에게는 조금도 어색하거나 부끄럽지 않으셨나 보다. &lsq...
    Views26356
    Read More
  2. 소박한 행복 기억하기

    “엄마, 오늘은 제발 보리밥 싸지 마세요.”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열면 널브러져 나를 바라보는 보리밥이 너무 미웠다. 거기다가 단골 반찬은 무말랭이와 콩장이었다. 내 짝꿍 근웅이는 약국집 아들이라 그런지 항상 밥 위에는 노오란 계란이 덮여...
    Views44540
    Read More
  3. No Image

    소나무야, 소나무야

    작년 봄의 일이다. 집회 인도 차 한국을 방문하였다. 처음 행선지는 경기도 용인이었다. 운전하는 친구 곁에서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봄의 정취에 빠져들고 있었다. 길목을 돌아서는 순간,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이 다가왔다. 마치 눈을 뿌려 놓은 듯 하얀 꽃...
    Views853
    Read More
  4. 소금인형

    인도의 엔소니 드 멜로 신부가 쓴 ‘소금 인형’이야기가 있다. 소금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하나 있었다. 인형은 어느 날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곳’을 향해 소금 인형은 무작정 길...
    Views72062
    Read More
  5. 세월이 가면 10/31/2014

    초등학교 졸업이 가까워지며 “사은회”가 열렸다. 짧게는 1년 동안 길게는 6년을 한결 같이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을 모셔 놓고 다채로운 행사로 감사를 표하는 자리였다. 따라서 “사은회비”가 졸업경비에 포함이 되어 있었고 소박하...
    Views64381
    Read More
  6. 세월은 쉬어가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 남한강 줄기에서 자랐다. 강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과 느낌을 달리한다. 언덕 위에서 볼 때는 마냥 푸르고 잔잔해 보이지만 모래사장에 내려서면 잔잔히 출렁이는 물결이 건너편을 저만치 밀어낸다. 물가에서 보면 만만해 보이지만 일단 몸...
    Views19424
    Read More
  7.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가?

    카메라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도 소중하고 귀했다. 사진관에 가서 카메라를 빌리고 촬영한 필름을 다시 맡겼다가 나온 사진을 찾으러 가는 날은 가슴이 퉁탕거렸다. 흑백사진이었지만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기에 정말 행복...
    Views14652
    Read More
  8. 세월아 너만 가지 9/23/2013

    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그렇게도 무덥던 날들이 이렇게 맥없이 꺾일 줄이야. 새벽에 창문을 열면 신선한 바람이 상쾌함을 안겨 준다. 그렇게 영적인 시간을 가지며 하루를 연다. 9월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아마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젊은 날...
    Views69649
    Read More
  9. 세월, 바람 그리고 가슴으로 보낸다 12/30/2013

    한해가 조용히 저물어 가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사람은 누구나 회상에 젖는다. 이민생활이 워낙 각박해서 그럴 여유조차 없는 분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해의 높이가 낮아진 만큼 햇빛이 방안 깊숙이 파고 들어와 좋다. 반면 그 낮아진 햇빛에 비친 산 그림자...
    Views64230
    Read More
  1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케이크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케이크. ‘I ♡ YOU’! 빨간 초가 인상적인 이 케이크는 내로라하는 파티쉐가 만든 것보다 더 먹음직스럽고 아름답다.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남다른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케이크를 만든 주인공은 ...
    Views17641
    Read More
  11.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원 11/6/15

    영화 <말아톤>을 보면 장애우 “초원”이 엄마와 마라톤 감독 간에 대화가 주목을 끈다. 감독이 초원이 엄마(김미숙 분)에게 묻는다. “아줌마 소원이 무엇입니까?” 망설이듯 하던 초원 엄마가 대답한다. “내 소원은 초원이보다 ...
    Views74830
    Read More
  12. 성탄의 축복이 온누리에! 12/26/2011

    어린 시절에 성탄절은 꿈의 날이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았으면서도 성탄이 가까워오면 이상하게 가슴이 설레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리며 그날을 기다리고 첫눈이 휘날리는 한가운데에 서서 그날을 바라보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밤늦게까지 버티다가 눈...
    Views80385
    Read More
  13. 성도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2/25/2014

    목사님 한분이 상기된 얼굴로 설교 CD를 내게 보여주며 격앙된 어조로 넋두리를 한다. 이야기인 즉슨 교인 한사람이 이 CD를 주면서 “목사님도 이렇게 설교하실 수 없어요.” 하더라는 것이다. 순간 ‘오죽하면 그런 어필을 했을까?’라...
    Views70268
    Read More
  14. 섬집 아기 7/10/2012

    한국인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동요가 있다. 동요는 말 그대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섬집아이”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처음 학교 음악시간에 “섬집아이&rdquo...
    Views67556
    Read More
  15. 선생님 5/28/2012

    언제나 부르면 가슴이 뭉클 해 지는 이름이다. 내가 여기까지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의 교육과 사랑이 있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어딘가에 살고 계실 그분들이 그래서 그립고 고맙다. 선생님이 되려면 사대나 교대를 나와야 한다. 그런데 나는 20...
    Views65870
    Read More
  16. 서부에서 동부를 바라보며 1/2/2013

    『밀알 송년의 밤』을 마친 후 나는 19일(수) 필라 공항으로 내달았다. 연말에 잡힌 로스엔젤레스(L.A.)와 샌프란시스코 집회 일정을 감당하기 위해서였다. 역시 서부는 따뜻했다. L.A.에 유학을 와있는 딸이 마중을 나왔다. 아이를 보며 마냥 행복해 하는 나...
    Views66007
    Read More
  17. 서른 아홉

    요사이 흠뻑 빠져 몰입하는 드라마가 있다. <<서른. 아홉>>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의 자연스럽고도 정감어린 연기와 우정에 흥미를 더해간다. 언뜻 보면 철없던 어린 시절에 만나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여친들의 이야기 같지만 노련한 유영아 작가는 심오한...
    Views10130
    Read More
  18. 서로 다르기에 12/16/2013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사람들이 TV 영상을 시청하는 방법이 다양화 되고 있다. 이민생활이 얼마가 되었든지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고국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드라마나 영상 속에서 저만치 사라져가는 옛 정취를 더듬으려 한다. 문제는 TV 매...
    Views64401
    Read More
  19. No Image

    생일이 뭐길래?

    평범한 주부의 고백이다. 며칠 전에 생일을 지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고 했다. 하필 전날이 작은 딸의 생일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딸 친구들을 초대하여 자그마한 파티도 열어주었다. 즐겁고도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Views7246
    Read More
  20. 생방송

    나는 화요일마다 필라 기독교방송국에서 생방송을 진행한다. 방송명은 “밀알의 소리”. 사람들은 생방송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생방송이 체질이다. 방송을 진행한지가 어언 14년에 접어드는 것을 보면 스스로 대견함을 느낀다. 방...
    Views6563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6 Next
/ 36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