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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_끝자락.jpg

 

 

한해가 조용히 저물어 가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사람은 누구나 회상에 젖는다. 이민생활이 워낙 각박해서 그럴 여유조차 없는 분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해의 높이가 낮아진 만큼 햇빛이 방안 깊숙이 파고 들어와 좋다. 반면 그 낮아진 햇빛에 비친 산 그림자가 마당까지 들어온다. 집 주위에 선 나무 그림자도 길게 져서 둘러싼 공간은 명암이 분명하면서도 빛은 옅어졌다. 한여름 하늘을 붉고 찬란하게 물들이던 석양도 겨울기운에 생기를 잃은 듯하다. 

때 이른 폭설이 흰백색의 세계를 연출하고 특유의 찬 공기가 엄습하면서 겨울의 한복판에 들어왔음을 실감나게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느끼는 것은 그날이 그날 같은 무료함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1년 열두 달, 삼백예순닷새 하루라도 의미 없는 날은 없었던 것 같다. 둥근 고리에 처음과 끝이 어디 있으랴? 365일 돌아가는 나달에 처음과 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기준이 없으면 나달에 매듭을 지을 수 없고, 삶의 순환과 주기를 가늠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날짜와 요일을 확인하고 그렇게 한해를 달리다가 끝자락에 당도하면 묵은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다가올 새해에 대한 뜻 모를 설레임을 가지며 보내게 된다. 따지고 보면 새해가 어디 있으며 새날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해가 바뀌며 어느 것 하나라도 맺고 끊고 새로 이어갈 수 있음이 다행스럽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해와 달이 참 가깝게 느껴졌다. 달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에 민감했고 달이 찼다 이지러졌다 하는 모양으로 날을 헤아리고 철을 가늠하였다. 아무런 볼 것, 들을 것도 없었지만 그때 밤은 너무도 흥미 있는 일들이 많았다.

볏 짚단 속에 들어가 ‘킥킥’거리고, 담벼락에 기대어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찾아 들어간 친구 집 건넌방에서 우리는 소박한 추억을 만들었다. 그즈음에 먹는 간식은 ‘무우’아니면 ‘고구마’가 전부였다. 창호지로 만들어진 문풍지가 조금만 틈을 내주어도 겨울바람은 매섭게 파고 들어왔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래서 더 정겨웠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무엇이 그리 재미있었는지 괘종시계가 열한번을 울려대고야 우리는 떠밀리듯 일어섰다.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잡을 수 없는 바람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어쩌다 마주치는 분들이 멈춰서서 인사를 건네온다. “목사님, 칼럼 잘 읽고 있어요.” “예, 예”하고 돌아서지만 힘이 난다. 지난주에는 해리스버그에 설교를 하러갔다. 예배 후에 인상 좋은 집사님 한분이 다가온다. “목사님, 제가 목사님 칼럼 팬이예요. 이렇게 만나뵈니 너무 반갑네요.” “아니 어떻게 이 먼 곳에서 제 글을 읽으세요?” “마트에 나가면 신문을 꼭 챙겨오거든요.” “와!” 고마웠다. 그러면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올라왔다.

누구나 가슴 한켠에 아스라한 그리움 하나쯤은 있다. 그것은 향수 같은 것 일수도 있고 그리움 일 수도 있다. 애틋한 사랑 일수도 있고 저만치 떠나버린 연인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내 칼럼을 읽으며 사람들이 추억에 젖었으면 좋겠다. “그래 그때는 그랬지. 그래 맞아!”

까맣게 잊혀졌던 그리움을 다시 퍼 올려 주는 그런 글을 계속 쓰고 싶다. 그리움을 오래 간직한 사람일수록 맑고 깨끗한 심성을 지니고 있는 분들이 많기 마련이다. 당장 살아가는데 있어 그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그리움과 심성을 소유한 분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아름답고 마음까지 따사로와 질 것 같다. 그리움이 번져 추억이 되고 추억을 그리다 그리움으로 사무쳐오는 것을 보면 그리움과 추억은 서로 오래된 기억으로 부터 오는가보다.

새해에는 그 머무르고 싶은 이야기 속으로 더 들어가련다. 세세한 부분까지 보고 거기에 이야기와 생각을 담고 감정까지 담아 많은 분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 한 해 동안 부족한 종의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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