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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2 14:16

야학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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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jpg

 

 

  20대 초반 그러니까 신학대학 2학년 때였다. 같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김건영 전도사께서 주일 낮 예배 후 할 말이 있다.”며 다가왔다. 우리는 비어 있는 유년주일학교 예배 실 뒤편 탁자에 마주 앉았다. 용건은 나에게 야학 선생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매일 사당동까지(당시 우리 집은 청량리) 학교에 다니기도 버거운데 야학까지 담당하기에는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도사님의 너무도 간곡한 부탁이라 거절하기도 그렇고 생각 할 여유를 달라고 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전도사님의 부탁에 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야학이 열리는 곳은 월곡동이었다. 드디어 야학 첫 수업을 위해 출발하였다. 청량리에서 전철을 타고 성북역까지 갔다. 그곳에서 버스를 다시 타고 몇 정류장을 지나 내렸다. 당시 월곡동은 개발되기 전이라 허허벌판에 허술한 집들과 공장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풍경이었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그것도 캄캄한 밤중에 지정한 공장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드디어 높은 회색 담이 처진 공장에 당도했다. 기다리고 있던 선배 야학 선생의 인도를 따라 2층 교실로 들어섰다.

 

  자그마한 공간, 머리위에 켜져 있는 형광등 불빛, 그리고 책상에 앉아 있는 30여명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공원들이었고 대부분 여공들이었다. 이내 소개를 받고 단에 섰다. 모두다 이미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았다. “제 이름은 이재철 입니다. 지금 신학대학에 다니고 있는 신학생이구요. 오늘부터 여러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가 끝나자 그들은 박수로 환대 해 주었고, 웃으며 자기들끼리 무어라 속삭였다.

 

  당시는 70년대 후반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기에 시골에서 많은 10대들이 무작정 상경을 하는 때였다. 운이 좋아 친척이 있는 친구들은 보증을 서주어 공장에 취직을 했다. 일은 엄청나게 하면서도 대부분 낮은 임금을 받고 공장에서 일하는 그들의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공부에 대한 열의가 되살아나게 되었고, 그들의 장래를 위해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마련해 준 공간이 야간학교였다. 검정고시 과정을 공부시키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당시 야간학교에는 나이가 든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당시 나는 23세였다. 학생들은 대부분 16살에서 20살까지였고 어떤 학생은 나의 누이 나이 정도까지 보이기도 했다. 20대 초반의 내 외모는 꽤나 매력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거기다 음악을 가르쳤으니 학생들의 인기는 얼마안가 나에게 쏠려 버렸다. 1주일에 단 한번 찾아가는 야간학교였지만 행복했다. 처음 야간학교를 찾아갈 때 코에 스며들던 월곡동 골목의 풋풋한 풀 향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음악을 가르치다보면 그들은 이론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실기시간을 더 좋아했다.

 

  가끔 기타를 들고 가서 풍금과 맞춰 함께 노래를 불렀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기타를 치며 내가 독창을 했다. 음악시간은 그들의 삶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기쁨의 시간이었다. 음악책에 나와 있는 노래를 부르며 그들은 모두 아련한 꿈을 꾸고 있었다. 이제 세월이 지나 기억이 흐릿해 졌지만 많은 시간들을 그들과 함께 지내며 꿈을 심었다. 소설 상록수(작가 심훈)의 주인공 채영신의 심정으로 대화 속에서도 소망어린 단어를 많이 구사한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야학선생은 그해 가을, 10 · 26 사건이 터져 시국이 어수선해지면서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사람이 누리는 즐거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는 즐거움이고, 다른 하나는 배우는 즐거움이다. 그들은 노는 즐거움 대신 배우는 즐거움을 택했던 사람들이었다. 공부를 가르치는 동안 그들 중에는 눈으로 말하는 학생도 있었고, 노래로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어느 하늘아래에서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가고 있을 그들의 모습이 문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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