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5.11.25 07:14

교복을 벗고 2/2/2014

조회 수 7591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9206195_orig.jpg

 

 

한국에 갔을 때에 일이다. 친구가 꽃게탕을 잘하는 집이 있다며 굳이 “마장역 앞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사실 활어회는 몰라도 해물은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친구의 성의가 고마워 택시에 올랐다. 가다보니 신답십리 쪽이었고 장안대로에서 좌회전을 하면서 내가 외쳤다. “아니, 이건 우리 학교 쪽이네.” 택시기사가 물어온다. “혹시 한영고등학교 나오셨습니까?” “아니, 어떻게 아십니까?” “저도 그 학교 출신입니다.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나도 모르게 태도가 거만스러워지며 대답을 한다. “에이, 기사님보다는 한참 선배지?” “보기에는 제 또래처럼 보이는데요!” 그날 내 나이보다 젊어보였다는 것과 고교 후배를 만났다는 것이 얼마나 반갑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친구가 말한 “군산 꽃게탕”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자리 앞에 있었다. 이미 학교는 상일동으로 이사한 지 수 십년의 세월이 흘렀고 “한영외국어학교”는 이제 톱클래스에 올라있다. 고교시절에는 청계천 뚝방에 판잣집이 남루하게 자리를 잡고 오밀조밀 서민들이 부대끼며 살았던 동리였다. 학교 정문에는 “대성연탄”까지 버티고 있어 학교의 미관은 물론 건강까지 위협했었다. 그 옛날 학교터에는 럭셔리한 아파트가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4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전철 “마장”역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우리는 교복세대이다. 고교 3년의 학업을 마치고 교복을 벗던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어려운 시절이기에 학년마다 교복을 바꾸어 입는 일은 상상도 못하던 때였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날에 맞춰 입은 교복은 고3에 올라가며 타이트하게 몸을 죄어왔고 교복과 모자는 노르스름하게 퇴색되어 갔다. 발라드 가수 윤종신의 “교복을 벗고”라는 노래가 오늘따라 새롭게 다가선다. “♬ 오래전 그날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 그때가 너도 가끔 생각나니/ 뭐가 그렇게도 좋았었는지 우리들만 있으면 너의 집 데려다주던 길을 걸으며 수줍게 나눴던 많은 꿈/(중략) 새학기가 시작되는 학교에는 그 옛날 우리의 모습이 있지 뭔가 분주하게 약속이 많은 스무살의 설레임/ 너의 학교 그 앞을 난 가끔 거닐지 일상에 찌들어 갈때면 우리 슬픈 계산이 없었던 시절 난 만날 수 있을테니♪”

결국 이 노래는 두 사람의 결별로 끝이 나지만 교복을 벗던 그해 2월의 추억이 가슴에 저며 왔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지만 하얀 밀가루를 뿌려대고 교복을 찢는 풍경이 그 당시 졸업식에서는 흔하게 목격되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지긋지긋하던 교복을 벗어던졌다. 중학교부터 무려 6년이나 우리를 옥죄어왔던 교복이었다. 그렇게 기르고 싶었던 머리를 기르고 나타난 친구들의 모습은 학창시절과는 사뭇 달랐다. 고교를 졸업하고 만난 여자 친구 앞에서 너스레를 떨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 경계심 없이 찻집에서 담배를 피워 물며 불을 붙였다. 여친은 말했다. “야, 너무 폼 잡으려 하지 마. 너무 어색하다 얘.” 갑자기 겸연쩍어졌다. 그러지 않아도 이제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여친에게 확실히 보여 주고 싶었는데 담배를 피워 문 내 모습이 어설펐었나보다. 스무살의 초상은 그렇게 물들어 갔다.

요사이는 교복의 모양이 참 다양해졌다. 조카가 교복을 사왔는데 42만원을 줬단다. 우리 때는 교복이 검정색 일색이었다. 그 당시 알아주는 교복은 “엘리트”와 “스마트”가 대세였다. 엘리트교복은 천이 부드럽고 구김이 잘 가서 멋쟁이들의 차지였고 스마트는 구김이 별로 없어 나 같은 털털한 학생에게 제격이었다. 멋을 아는 아이들은 교복바지를 살짝 재단하여 변형을 해서 입고 다녔다. 한때는 바지 끝이 벌어지는 “나팔바지”가 유행하더니 나중에는 ‘짝’ 달라붙는 “쫄바지”가 유행을 탔다.

그때는 어서 속히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한껏 꿈을 펼치며 야생마처럼 달리고 싶었다. 그렇게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은퇴를 하고 스마트폰에 저장된 손자 사진을 자랑하는 친구를 보며 울음 섞인 헛웃음이 나온다. 불현듯 『高』자 뺏지가 새겨진 모자와 교복이 그리워진다. 잠시라도 그 시절로 돌아 갈수만 있다면 아, 옛날이여!


  1. 괜찮아! 9/26/2014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시골(양평)이어서 그랬는지 우리 학교에는 여자선생님들이 많은 편이었다. 그 중에서도 “한선희 선생님”은 절도 있는 태도에 실력파여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렇게 미인은 아니었지만 수더분한 생김새에 지적...
    Views78210
    Read More
  2. 교복을 벗고 2/2/2014

    한국에 갔을 때에 일이다. 친구가 꽃게탕을 잘하는 집이 있다며 굳이 “마장역 앞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사실 활어회는 몰라도 해물은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친구의 성의가 고마워 택시에 올랐다. 가다보니 신답십리 쪽이었고 장...
    Views75913
    Read More
  3. 구름 9/7/2010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아름다운 것은 하늘과 땅,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땅을 밟으며 우리는 인생 이야기를 엮어간다. 어쩌다가 만나는 지평선을 보며 저 땅 너머에 있는 세계를 그려본다. 그러다가 찾아가는 바다는 “지구의 ...
    Views79883
    Read More
  4. 구름을 품은 하늘

    처음 비행기를 탈 때에 앉고 싶은 좌석은 창문 쪽이었다. 날아오르는 비행기의 진동을 느끼며 저만치 멀어져 가는 땅과 이내 다가오는 하늘을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 작은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창 쪽에 앉은 사람을 부러워하며 목을 빼고 밖을 주...
    Views60119
    Read More
  5. No Image

    군밤

    모처럼 한국 친구 목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친구야, 용인에서 먹던 <묵밥>이 먹고 싶다.” 외쳤더니 한참을 웃다가 “너는 기억력도 좋다. 언제든지 와 사줄게.”하는 대답이 정겹게 가슴을 파고든다. 30대였을거다. 추운 겨울날에 친...
    Views7829
    Read More
  6. 군불

    새벽녘에 잠이 깨었다. 무서운 꿈을 꾼 것도 아닌데 갑자기 단잠이 달아나 버렸다. 추적거리며 내리는 겨울비가 금방 잠이 깬 내 의식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불현듯 고향 사랑방 아궁이가 화면처럼 다가왔다. 어린 시절, 나는 방학만 하면 고향으로 향했다. ...
    Views19172
    Read More
  7. 귀성 이별 10/7/2013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추석”이 지나갔다. 한국에 있었으면 고향에 가서 친척들을 만나고 끝없는 대화를 나누며 보름달의 장관을 감상했을 것이다. 성큼 커버린 조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고향 곳곳을 거닐며 세월의 흐름 속에 퇴색되...
    Views67940
    Read More
  8. No Image

    그 강 건너편

    사람마다 살아가며 잊지 못할 인연이 있다. 내 생애에 꼽으라면 단연 천정웅 목사님이다. 나를 오늘의 나로 가꾸어 준 멘토이다. 그분은 정말 건강했다. 20대 초반, 교회 청년부에서 ‘아야진’(동해 휴전선 근처 마을)으로 하기수련회를 갔던 때였...
    Views7077
    Read More
  9. 그 만남이 내 수준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남으로 생이 이어진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다. 같거나 비슷한 부류끼리 어울리는 것을 뜻한다.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어쩌면 그런그런 아이들끼리 그렇게 어우러지는 것을 보았다. 대화의 수준도 그랬다. 그래서 부모...
    Views17186
    Read More
  10. 그 분이 침묵 하실 때

    하이웨이에 차량들이 제 속도를 내며 원활하게 소통될 때 시원함을 느낀다. 누구와 하며 공감대를 느낄때에 통쾌함을 느낀다. 야구 경기의 흐름이 빨라지면 흥미진진함을 느낀다. 드라마를 볼 때도 스토리를 신속하게 풀어나가는 작가를 사람들은 좋아한다. ...
    Views51902
    Read More
  11. 그 소녀는 지금 어디에 4/24/15

    “소녀”(少女). 누구의 가슴에나 표현할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이다. ‘여학생, 처녀, 어린 여자아이.’라는 단어도 있지만 “소녀”란 말은 자연스럽게 눈을 감게 만든다. 우연히 가수 최백호의 “낭만에 대...
    Views69908
    Read More
  12. 그 애와 나랑은

    갑자기 그 애가 생각났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진학의 꿈을 향해 달리던 그때, 그 애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전근을 자주 다니던 아버지(경찰)는 4살 위 누이와 자취를 하게 했다. 그 시대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던...
    Views20804
    Read More
  13. No Image

    그 이름 그 사람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다. 사실 이름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붙여지는 고유명사이다. 이름은 태어나서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태에 잉태된 순간에 붙여지는 이름도 있다. 바로 ‘태명’(胎名)이다. 태명이 태명으로 끝나는 경...
    Views7068
    Read More
  14. 그 이름 그 사람  8/4/2011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다. 사실 이름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붙여지는 고유명사이다. 이름은 태어나서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태에 잉태된 순간에 붙여지는 이름도 있다. 바로 ‘태명’(胎名)이다. 태명이 태명으로 끝나는 경...
    Views73732
    Read More
  15. 그것만이 내 세상

    우리 밀알선교단에는 다수의 장애인들과 장애아동들이 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아울러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것도 삶이 평탄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18년 전, 밀알선교단 단장으로 부임하였을때에 전신마비 장애인이 ...
    Views20613
    Read More
  16. 그냥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반가웠다. 그러다가 꿈속에서도 스스로 되뇌였다. ‘엄마는 돌아가셨는데…’ 번뜩 잠이 깬 내 귀에 창문을 두드리는 봄비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나는 평생 그분을 “엄마”라고 불렀다. 한번도 &lsq...
    Views17415
    Read More
  17. 그냥 그랬으면 좋겠어

    미국에 처음 와서 이민선배들(?)로부터 많은 말을 들었다. 어떤 말은 “맞아!”하며 맞장구가 쳐지지만 선뜻 이해가 안가는 말 중에 하나는 “누구나 자신이 이민을 온 그 시점에 한국이 멈춰져 있다.”는 말이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
    Views74168
    Read More
  18. 그대 곁에 있는 사람 3/11/2013

    가정은 모든 행복의 근원이 되는 곳이다. 사업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꿈을 이루고 세상적인 지위를 높여가는 것도 인생에 있어서 놓쳐서는 안 되는 귀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가정은 놓치면 안 된다. 굉장한 일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가정을 잃으면 모든 ...
    Views75166
    Read More
  19. 그들의 우정이 빛나는 이유

    한 여고 점심시간, 두 학생이 식당에 들어선다. 한 학생은 휠체어를 타고 있다. “의자 당겨서, 앉아있어.” 한 여학생이 식판 2개를 들고 배식을 받는다. 뇌병변 장애로 두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친구 최주희 양을 위해 6년간 학교에서 최 양의...
    Views15820
    Read More
  20. 그때 그 소녀들의 함성 “밀알의 밤”

    밀알의 밤이 열네 번째 기적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스산한 가을기운을 헤치고 찾아온 수많은 동포들의 사랑을 가슴에 머금을 수 있었음이 행운이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갖가지 과일과 다양한 모양의 곡식이 저마다 풍성한 열매로 한해의 삶을 그려낸다...
    Views6179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6 Next
/ 36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