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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07:35

괜찮아! 9/26/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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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시골(양평)이어서 그랬는지 우리 학교에는 여자선생님들이 많은 편이었다. 그 중에서도 “한선희 선생님”은 절도 있는 태도에 실력파여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렇게 미인은 아니었지만 수더분한 생김새에 지적인 이미지가 남학생들에게 어필하였다고나 할까? 한 선생님은 항상 나에게 살갑게 다가오셨다. 무슨 심부름 할 일이 있으면 항상 내 이름을 불러 일을 시키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쉬는 시간은 교실이 몹시 소란스러웠다.

하얀 백묵이 묻은 지우개가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개구 진 아이들은 책상을 휘젖고 다니며 장난을 쳤다. 지금 생각해도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이었다. 이윽고 수업재개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누군가 외쳤다. “선생님 오신다.” 동시에 아이들은 자리에 좌정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교실은 조용해 졌다. 이윽고 들어선 선생님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교단에 서셨다. 반장의 구령에 맞춰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세요!” 당시 그게 흔한 풍경이다.

한 선생님이 입을 여셨다. “너희들 얼마 전에 김현무 선생님이 전근을 가셔서 서운했지? 다음 주에 새로운 선생님이 오시게 되었다. 그런데 예쁜 여자 선생님이시란다.”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어떤 아이들은 발을 구르고 책상까지 두드려 댔다. 선생님이 다시 묻는다. “너희들,왜 여자 선생님이 그렇게 좋으냐?” 누군가 뒤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갖고 놀기 좋잖아요?” 흥분한 나는 그 말을 받아 외쳤다. “갖고 놀려구요.” 아이들은 “까르르” 웃어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 선생님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러면서 “자, 수업하자”를 외치셨고 교실 분위기는 순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나는 “웃자”고 던진 말인데 선생님의 마음이 많이 상한 모양이었다. 아마 여선생님을 비하하는 말로 받아들이신 듯 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마음이 편하질 못했다. 선생님과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죄송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선생님이 기분 나빠 하시는 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 날 나는 하루 종일 아주 ‘찜찜’한 마음으로 지내야만 하였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갔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때 나는 누이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교문을 통해 가면 먼 거리이지만 사실은 학교 철조망을 쳐들면 바로 내 자취집이었다. 학교 교정이 바로 내려 다 보이는 그런 방이었다. 방에 들어앉았지만 불안했다.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렸다.’는 사실이 나를 못 견디게 했다. 다시 학교로 향했다. 학교 스탠드에서 선생님이 퇴근하시길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선희 선생님이 본관을 나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에게 다가가 앞을 가로막았다. 선생님이 저으기 당황하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셨다. “선생님, 낮에는 제가 말을 잘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때였다.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으셨다. “재철아, 괜찮아.” 그리고는 선생님은 이후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나를 아껴주셨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간 지금도 “괜찮아!”라는 한 선생님의 따뜻한 한마디가 잊혀 지질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고 선생님께 다가간 나의 용기가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 대견하다. 또한 용서를 빌어오는 제자의 허물을 감싸주시던 한 선생님의 사랑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랑이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되게 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다. 넘어질 때가 있다. 몰라서 아니 알면서도 약해서 쓰러질 때가 있다. 그때 누군가가 “괜찮아!”하며 위로의 말을 해 준다면 그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가족, 친구, 공동체의 일원일 수도 있다.

내가 슬퍼할 때에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 자신에게 실망하고 힘들어 할 때에 다가와 손 내어밀어주는 한사람만 있어도 그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누구나 그런 사람을 목말라하며 살고 있다. 참, 지금 “한선희 선생님”은 어느 하늘아래에 살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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