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5.11.25 07:52

길은 여기에 3/6/15

조회 수 7797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빛의_인도.jpg

 

 

삶의 깊은 고독과 번민이 밀려오던 젊은 날이 있었다. 고통이 심해지다 보니 신앙의 회의마저 밀려오고 장애의 무게는 내 청춘을 짓눌러댔다. 그때 누군가가 내어민 책이 “길은 여기에”였다.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의 자전적 소설인 “길은 여기에”는 그 당시 나에게 엄청난 감동과 위로를 주었다. 마치 누이처럼 다가온 그녀의 글이 내 심장에 생수처럼 스며들었다. 그녀는 세계2차 대전 당시 일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패전의 소용돌이가 일본열도를 휩싸며 지나갈 때,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교사직에서 물러난다. ‘자신이 옳다고 가르쳤던 일들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가치관에 혼란을 겪으며 삶의 의미를 상실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도 모른 채 여러 남자들을 생각 없이 만난다. 그러다가 미우라 아야꼬는 ‘덜컥’ 결핵에 걸린다. 책은 이렇게 이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고열로 쓰러졌다. 폐결핵으로 인한 발병이었다. 스토마이라든가 파스도 없는 시대여서 결핵요양소에서 요양 중이던 친구들은 마구 죽어갔다. 병은 끊임없이 내게 다가와 나를 괴롭게 했다.

‘심장병, 척추카리에스, 대상포진....’ ‘대상포진’은 정말 견딜 수 없는 끔찍한 질병이었다. 온몸에 물집 모양의 발진이 생기더니 얼굴에까지 번져갔고 의사는 내가 ‘실명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이 병은 고통이 사라지지 않고 암세포를 동반하고 있어서 암으로 번지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의사의 말과는 달리 더 이상 아픔은 없었다. 눈도 실명되지 않았다. 다만 직장에 암세포가 자랐을 뿐. 생각해 보니 병으로 잃게 된 것은 건강뿐이었다.”

목숨을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 속에서 그녀는 ‘다다시’라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를 위해 매일 편지를 보내고 추운 겨울밤에도 남몰래 병실 아래에서 그녀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해 주었던 ‘마에카 다다시’의 헌신적인 사랑과 전도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건강을 회복한 것이 그녀의 나이 37세 때이다. ‘다다시’는 사랑하는 여인을 보호해주기 위해 늑골 여덟 개를 없애는 대수술을 시도한다. 하지만 수술 결과는 좋지 못했다. 결국 ‘다다시’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에 이르고야 만다. 아야꼬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비통한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녀는 이전과 달리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는다. 그녀의 심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신앙은 그녀에게 삶의 용기와 힘을 안겨 주었다. 그녀는 드디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깊은 고통을 통과한 그녀의 글은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삶의 의미를 돋워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길은 여기에”를 읽으며 나는 자주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책을 읽던 시기는 지금처럼 혹독한 겨울이었다. 두 사람의 청순하고도 진실한 사랑. 상대를 배려해주는 너그러움. 결국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지만 그런 중에도 신앙으로 의연히 일어서는 아야꼬의 삶을 통해 내 아픔의 작음을 보았고 내가 살아야할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본 아사히신문 창사 85주년 기념 1천만 엔 현상 장편소설에 응모한 그녀는 ‘빙점’을 통해 당선 통보를 받고 기쁨과 흥분에 휩싸인다. 그녀의 나이 당시 42세였다. 그녀는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그만큼 그녀의 사고와 신앙은 성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기도, 말씀이 그녀를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빛이 되어 주었다. “자, 하나님 쪽을 보세요! 당신은 이제 고민할 것도 눈물을 흘릴 일도 없답니다.” 그녀의 한결같은 메시지이다.

‘아비큘래대(Abiculedae)’라고 하는 조개 속살로 어쩌다가 작은 모래 하나가 파고들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된다. 조개는 이 모래를 빼내려고 이리저리 뒹굴고 몸을 비틀고 뒤척이면서 계속 자기 안에 있는 분비물 ‘나카’(Naca)를 뿜어내게 된다. 그 아픔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 영롱한 진주이다. 그렇다. 아픔은 견디기 힘든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주처럼 소중한 열매를 토해내게 된다. 미우라 아야코는 우리들에게 “구름은 지나가지만 태양은 떠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1999년 10월 12일 오후에 평온한 모습으로 천국에 입성했다.


  1.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8/4/2012

    칼럼 제목만 보고는 그 옛날에 보았던 영화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듯싶다. ‘비비안리’와 ‘마론 브란도’가 스타덤에 올라섰던 그 영화 말이다. 영화에는 뉴올리언즈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로 다른 세인물의 인생철학이 뚜렷하게 드...
    Views77437
    Read More
  2. 교복을 벗고 2/2/2014

    한국에 갔을 때에 일이다. 친구가 꽃게탕을 잘하는 집이 있다며 굳이 “마장역 앞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사실 활어회는 몰라도 해물은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친구의 성의가 고마워 택시에 올랐다. 가다보니 신답십리 쪽이었고 장...
    Views77463
    Read More
  3. 혹시 고집불통 아니세요?<2월 27일>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고집이 별로 없어!” 그런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 사람 고집이 쇠 힘줄이야!”라고 한다. 하도 오래되어서 이젠 우리 부부가 ‘가정사역자’라고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부부들에게 물어보면 &ldquo...
    Views77609
    Read More
  4.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4/10/15

    가정의 전권을 쥐고 살던 남편들이 힘을 잃어가면서 희한한 유모어가 나돌기 시작했다. “간 큰 남자 시리즈, 고개 숙인 남자”는 옛이야기이고 급기야 “맞사모”(맞고 사는 남편들의 모임)가 결성되기에 이르른다. 요사이 드라마를 보...
    Views77693
    Read More
  5. 가을 그림 11/22/2012

    태풍이 할퀴고 지나간 상처는 너무도 깊은 것 같다. 불행 중 다행히도 필라델피아는 극한 상황을 넘기며 전기사정이 회복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미주 동부지역은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부 뉴저지 지역은 전기는 고사하고 주유소에 기름이 없...
    Views77746
    Read More
  6. 아내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나이가 들어가는 부부가 행복해 질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감정과 대화가 통할 때에 행복지수는 높아진다.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에너지가 입으로 간다.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문제는 할 말과 안할 말의 경계가 나이가 들수록 ...
    Views77788
    Read More
  7. 길은 여기에 3/6/15

    삶의 깊은 고독과 번민이 밀려오던 젊은 날이 있었다. 고통이 심해지다 보니 신앙의 회의마저 밀려오고 장애의 무게는 내 청춘을 짓눌러댔다. 그때 누군가가 내어민 책이 “길은 여기에”였다.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의 자전적 소설인 “길...
    Views77979
    Read More
  8. 장애인을 어떻게 불러야 하나요? 8/7/15

    장애인 호칭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혼돈을 일으킨다. 내가 어릴 때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장애자”에서 다듬어진 호칭은 이제는 “장애인”이라는 말로 정착을 했다. 한때는 “장애우”라는 말을 ...
    Views78095
    Read More
  9. 독일제 백금 샤프 3/25/2013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미제> 학용품 하나만 가지면 아이들의 시선을 독차지 할 수 있었다. 진노오랑 색깔의 미제연필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질이 좋아 선망의 대상이었다. 연필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U.S.A>는 아이들의 탄성...
    Views78150
    Read More
  10. 겨울 낭만 2/18/2013

    우리는 지금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겨울은 춥다. 눈이 많이 온다. 사람뿐 아니라 생물세계에서도 활동이 무뎌지는 계절이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작년에 이어 폭설이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서부에서 살다가 처음 필라델피아에 와서...
    Views78250
    Read More
  11. 가슴으로 만나야 한다 2/25/2012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만남”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먼저 “숙명적 만남”을 갖는다. 그것이 가족이고 집안이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 보니 그런 분들이 나의 부모님이셨다. ...
    Views78506
    Read More
  12. 천원식당 6/23/2013

    세상이 많이 삭막해졌다고들 한다. 과거보다 살기가 풍요로워졌다면 당연히 사람들의 마음도 넉넉해져야 할 텐데 민심은 점점 싸늘해져만 간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여기 가슴 훈훈한 식당이 있다. “해 뜨는 식당”(광주 대인시장). 이름만 들어...
    Views78577
    Read More
  13. 친구가 되어주세요!10/2/15

    <팔 없는 친구에게 3년간 우정의 팔.> 오래 전, 한국 신문 기사에 난 타이틀이다. 양팔이 전혀 없는 친구를 위해 3년 동안 헌신한 우정에 대한 기사였다. “김영태”군은 6살 때 불의의 감전사고로 양팔을 잃게 되었다. 팔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
    Views78606
    Read More
  14. 누군들 자장가가 그립지 않으리 3/18/2013

    그는 시인이다. 필체가 날카롭고 예리하다. 서른이 훨씬 넘어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태중에 아이를 갖게 된다. 아내가 임신 6주차에 접어들었을 때에 ‘양귀비 씨앗만하다’는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게 된다....
    Views78643
    Read More
  15. 향수병(鄕愁病) 12/6/2010

    사람은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많은 곳을 떠돌며 인생을 엮어간다. 우리는 모두 한국 사람이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외국에 나가 살게 될 줄을 예측한 사람이 있을까?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오신 분들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대부분 어쩌다가 미국에 ...
    Views78645
    Read More
  16. 젊은날의 푸르름 12/31/2011

    또 한해가 떠나려고 손을 흔들고 있다. “2011년”이라는 어색한 이름을 부르며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정든 한해가 내 곁을 떠나려 하고 있다. 세월을 흘려보내는 일에 이골이 날만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이맘때 찾아오는 서운함은 감출길이 없...
    Views78677
    Read More
  17. 캠프에서 만난 사람 8/31/2011

    장애인들이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랑의 캠프”가 막을 올렸다. 동부에 있는 밀알선교단이 연합하여 개최하는 사랑의 캠프는 금년으로 19회 째를 맞이한다. 필라델피아 밀알 단장으로 와서 어느새 아홉 번째 참석하고 있으니 실로 세월이 유수이...
    Views78693
    Read More
  18. 깊은 물 7/29/2013

    무더운 여름, 집 앞 시냇가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피해 살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을 따라 다리 밑으로 향하고 물에 뛰어들며 수영을 배웠다. 물먹기를 반복하고 아이들의 놀림을 받으며 수영실력은 늘어갔다. 수영을 익히면서 물과 친근해 졌다. 물에 몸을 맡...
    Views78744
    Read More
  19. “1박 2일” 마지막 여행 3/7/2012

    세상의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그것을 알고는 있지만 막상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에 밀려오는 서운함은 감당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나는 초등학교를 5군데나 다녔다. 순경아버지를 둔 덕분(?)에 일어났던 일이다. 가장 오래 다녔던 ...
    Views78901
    Read More
  20. 얄미운 12월의 손짓 12/18/2012

    12월이다. 세월이 왜 이리 빠른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이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우연히 집에 들른 사촌형이 “지금은 세월이 안가지? 나이 들어봐라. 세월이 점점 빨라진단다.”고 말할때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무료한 날들이 많았기에 어서 세...
    Views7930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Next
/ 36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