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490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대 후반에 아내를 만나 뜨겁게 연애를 하고 서른 살이 되던 3월 따스한 봄날에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 둘만이 아니라 홀로되신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한 신혼이었다. 돌아보니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것이라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생각보다 빨리 첫아이가 들어섰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아야지”하며 좋아하셨다. 돌림자를 따라 “혁진”이라 태명을 짓고 기도하며 출산을 기다렸다. 출산 당일 산부인과 간호사가 아가를 안고 나오며 “축하합니다. 예쁜 공주님이예요.” 미소를 보냈다. 그렇게 첫 딸이 태어났다.

 

 당시는 남아선호사상이 극에 달하던 시절이었다. 서운했다. 3년 후 둘째 아이가 들어섰다. 이번에는 “요한”이라는 태명을 짓고 사내아이가 태어나길 기대했다. ‘둘째는 쉽게 낳는다’는 속설을 믿고 편안한 마음으로 달이 차기를 기다렸다. 출산 당일 다니던 병원에 가니 여의사가 당황하며 “아무래도 종합병원에 가셔야 하겠다”고 다급하게 말한다. 하늘이 노랬다. 부랴부랴 천호동 보훈병원으로 내달았다. 기나긴 시간이 걸리는 난산 끝에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에게 간호사가 전해주는 말 “따님입니다”

 

 와, 엄청 서운했다. ‘아들이 태어나면 이런저런 일을 함께하리라’ 많은 계획을 세우고 있었건만 또 딸이라니!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계단을 내려간다. 이상하게 다리가 후들거렸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사람이 맥이 빠지면 이런다더니? 집에서 큰아이를 보며 기다리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아기 낳았어? 아들이야? 딸이야?” 다그치는 어머니에게 힘없이 대답했다. “딸이래요”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딸이면 어떠니? 에미는 건강하고?” 물어오셨다.

 

 교회에 딸 넷을 가진 윤희상 장로님이 있었다. 주일에 마주치더니 하는 말 “이 목사님, 딸 넷 되는 것. 순간입니다.”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사실 평상시에 아주 가까이 지내는 정 집사가 있었다. 지난번 내게 낚시를 권하던 그분이다. 정방헌 집사와 김교선 집사 사이에는 딸이 둘 있었다. 아내 집사가 운영하는 양품점이 버스정류장 가는 길목에 있어서 오고 가며 종종 들러 기도도 해주고 음식도 대접받고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총각 때 항상 우스개 소리로 놀려댔다. “아니, 그래. 아들 하나를 못나요?” 그런데 내가 정작 두 딸의 아빠가 된 것이다. 세상일 모를 일이다. 남의 말 할 것이 못되는 것 같다. 친구들도 놀려댔다.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둔 친구는 만나면 내 목을 쓸어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는 “아들은 낳아야지”하며 다그치셨다. 어머니에게 손자를 안겨주지 못한 것이 당시는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른다.

 

 세월이 흘렀다.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역할이 커져가고 남자들의 영향력은 점점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가정에서도 아내의 발언권이 강해져가고 서서히 남자들이 움추러드는 흐름이 이어지게 되었다. 냉정히 돌아보라! 아들, 별무 소용이다. 이제는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세상이 되었다.

 

 노부모를 양로원에 모신 딸은 매일 시도때도 없이 드나든다. 하지만 아들은 sometime이다. 한국에서 미국을 방문하는 대부분이 딸을 둔 분들이다. 이런 일설이 있다. “아들 둘을 키운 엄마는 무슨 죄든지 용서받는다. 아들 셋을 키운 엄마는 무조건 천국에 간다” 웃자고 하는 말이다. 그만큼 아들을 키우는 것이 힘이 든다는 의미인 것 같다.

 

 젊은 날에 많은 서러움(?)을 받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두딸의 아빠라는 것이 그렇게 다행스럽고 고마울 수가 없다. 내 입장에서 해석을 하는 것 같지만 딸들과의 삶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일단 만나면 아빠를 안아주고 사랑을 표현해 주어 좋다. 안부 전화도 자주하고 만나면 “필요한 것 없느냐?”고 물으며 세세히 챙겨준다. 내가 누리고 소장하는 옷과 물건들은 거의 딸들이 사준 것이다. 이제는 아들만 둔 가정을 보면 안스러운 생각까지 든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역시 아들보다는 딸 있는 가정이 더 행복해 보인다. 편견일 수도 있다. 아들? 딸? 나이가 들어가며 이제는 자녀의 성비(性比) 앞에 인생길이 갈라지는 것이 현실인 듯 하다.


  1. No Image

    이름이 무엇인고?

    첫 손자의 산일이 가까워지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 오래전 이미 내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준 경험이 있어 수월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태어날 아이의 부모의 결정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장시...
    Views1713
    Read More
  2. No Image

    젖은 베개

    한국에는 34개의 “밀알선교단”이 활동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괄목할 만한 일은 대학마다 “밀알 동아리”가 만들어진 사실이다. 젊은이들의 가슴에 장애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는 것처럼 귀한 일도 없다. 오늘은 『이화여대 밀알선...
    Views1621
    Read More
  3. No Image

    신비한 눈의 세계

    나이가 들어가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신체가 눈이다. 갑자기 눈이 부시고 야간 운전이 어려워지면 대개 백내장이 온 신호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눈 수술은 이제 일반화되어 있다. 20분이면 수술이 끝나고 다들 “시력이 너무 좋아졌다” 말들을 ...
    Views1721
    Read More
  4. No Image

    행복은 어디에?

    마트 푸드코트에 들러 음식을 주문했다. 메뉴가 다양했다. “어떤 것이 맛이 있습니까?” 넌지시 물었다. 퉁명스러운 대답이 흘러 나왔다. 기분이 상했다. 찾아온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돈을 지불하며 한마디 했다. “조금만 부드럽...
    Views1689
    Read More
  5. No Image

    봄비

    비가 내린다. 겨울의 찬 기운에 지쳐버린 나뭇가지를 녹여내며 봄비가 내린다.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를 달래듯 타고 내린다. 살아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꽃나무를 차분히 적셔간다. 이제 막 깨어나 기쁨에 겨워 잔기침을 하는 나무들...
    Views1800
    Read More
  6. No Image

    불꽃 같은 삶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생을 건강하고 평안하게 살고 싶은 소원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태어날때부터 그 소박한 꿈을 접고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 이해한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산다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Views2606
    Read More
  7. No Image

    야구의 묘미

    바야흐로 야구의 계절이 왔다. 몹시도 춥고 지루했던 겨울이어서일까? 한국 프로야구는 개막전부터 만석에 구름 관중이 몰려 성황을 이루고 있다. 나는 장애가 있어 그라운드를 누비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구기종목을 좋아한다. 축구, 배구, 탁구 무엇...
    Views2140
    Read More
  8. No Image

    돈이 곧 그 사람이다

    몇 해전, 한국에 갔을 때 일이다. 지인이 별식을 대접한다며 차에 나를 태웠다. ‘도대체 무슨 음식을 사주려나?’ 호기심과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서울을 벗어나 가평쪽으로 달리던 차는 큰길을 벗어나 논길로 접어들었다. 허름해 보이는 ...
    Views2237
    Read More
  9. No Image

    모닥불과 개미

    러시아의 소설가이며,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솔제니친이 어느날 산보를 하다가 모닥불을 발견한다. 무심코 모닥불 옆에 뒹굴고 있는 썩은 통나무 하나를 불속에 집어넣었다. 안타깝게도 거기에 개미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처음에는 개미들이 뜨거움...
    Views2501
    Read More
  10. No Image

    앓음에서 알음으로

    인생을 아름답게 보고 아름답게 사는 것, 이보다 더한 축복은 없을 것이다.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명성을 날리던 ‘강수진 발레리나’의 영상을 접한 적이 있다. 그녀는 매일 새벽 5:30분에 기상하여 스트레칭을 두 시간씩 하고 걸어서 5...
    Views2480
    Read More
  11. No Image

    계란 하나면 행복했던 그때

    지금은 흔하디 흔하지만 내가 어린시절에는 계란이 참 귀했다. 어머니가 5일장에 다녀올 때면 달걀 열 두개가 짚으로 엮은 길다란 꾸러미 속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계란은 주로 찜을 해 먹었다. 그래야 온 식구가 고루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노르...
    Views2563
    Read More
  12. No Image

    자발적 망명, 이민

    미주밀알은 매년 1월 단장컨퍼런스를 가진다. 한해동안 열심을 다해 분주히 사역을 하고 연말에 숨을 고른 후, 새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전미주 밀알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인드를 함께 하는 것이다. 처음 필라델피아 밀알 단장으로 부임했을때에 내 ...
    Views3531
    Read More
  13. No Image

    이런 목사도 있다

    70년대만 해도 목회자가 교회 수에 비해 현저히 모자랐다.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목양자체가 힘든 사역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어디에가든 목사를 존경하는 사회 분위기였다. 하지만 현실은 목회자가 존경받지 못하고 있는 세태가 서글프다. 교회...
    Views3329
    Read More
  14. No Image

    “희망”은 기적을 만들어 낸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종합병원의 중환자 병동에 아주 심한 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는 십대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처음 자원 봉사를 나온 대학생 중에 한명이 중환자 병동에 들어오게 된다. 대학생은 이 소년의 기록을 보고 나이를 확인한다. 그리고는...
    Views4530
    Read More
  15. No Image

    자식이란 묘한 존재 앞에서

    20대 후반에 아내를 만나 뜨겁게 연애를 하고 서른 살이 되던 3월 따스한 봄날에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 둘만이 아니라 홀로되신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한 신혼이었다. 돌아보니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것이라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생각보다 빨리 첫아이가 ...
    Views4902
    Read More
  16. No Image

    약속

    역사는 약속의 줄기를 타고 이어져 오고 있다. 약속은 다양하며 그 범위는 한없이 넓다. 개인끼리의 약속이 있다. 크게는 국가 간의 약속이 있다. 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 나에게는 약속에 대한 독특한 철학이 있다...
    Views4681
    Read More
  17. No Image

    연륜의 부부

    결혼 적령이 되면서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나 교제가 깊어지고 혼인을 한다. 비혼주의자들도 있지만 사실 결혼은 삶의 필연이 아닐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남 · 녀로 만드셨다면 짝을 이루어 한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은 자연스럽고 복된 일...
    Views5746
    Read More
  18. No Image

    세월을 낚자

    새해가 되어 인사와 덕담을 나누느라 바쁘다. 매년 같은 멘트이지만 건네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러고 보면 시기에 맞는 말이 따로 있는 듯 하다. 아침에 만나면 외국 사람들은 ‘Good Morning’ 한국인들은 ‘좋은 아...
    Views5729
    Read More
  19. 2025 첫 칼럼 "장애와영성(spirituality)"

    하나님은 전능하시며(omnipotent), 전지하시며(omniscient), 무소부재하시며(omnipresent), 선하신(good) 분이다. 삶에 나타나는 일은 우연이 없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들(attributes)과 역...
    Views6057
    Read More
  20. No Image

    세월아 너만 가지!

    세월의 흐름은 나이, 인종, 문화를 초월하여 누구나 빠름을 인정한다. 세월의 흐름을 두려워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음이 아닐까? 70년대를 풍미한 지성파 포크 가수 박인희. 그녀의 음색은 매우 청아하다. 감정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는 듯하나...
    Views651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9 Next
/ 39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