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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후반에 아내를 만나 뜨겁게 연애를 하고 서른 살이 되던 3월 따스한 봄날에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 둘만이 아니라 홀로되신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한 신혼이었다. 돌아보니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것이라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생각보다 빨리 첫아이가 들어섰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아야지”하며 좋아하셨다. 돌림자를 따라 “혁진”이라 태명을 짓고 기도하며 출산을 기다렸다. 출산 당일 산부인과 간호사가 아가를 안고 나오며 “축하합니다. 예쁜 공주님이예요.” 미소를 보냈다. 그렇게 첫 딸이 태어났다.

 

 당시는 남아선호사상이 극에 달하던 시절이었다. 서운했다. 3년 후 둘째 아이가 들어섰다. 이번에는 “요한”이라는 태명을 짓고 사내아이가 태어나길 기대했다. ‘둘째는 쉽게 낳는다’는 속설을 믿고 편안한 마음으로 달이 차기를 기다렸다. 출산 당일 다니던 병원에 가니 여의사가 당황하며 “아무래도 종합병원에 가셔야 하겠다”고 다급하게 말한다. 하늘이 노랬다. 부랴부랴 천호동 보훈병원으로 내달았다. 기나긴 시간이 걸리는 난산 끝에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에게 간호사가 전해주는 말 “따님입니다”

 

 와, 엄청 서운했다. ‘아들이 태어나면 이런저런 일을 함께하리라’ 많은 계획을 세우고 있었건만 또 딸이라니!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계단을 내려간다. 이상하게 다리가 후들거렸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사람이 맥이 빠지면 이런다더니? 집에서 큰아이를 보며 기다리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아기 낳았어? 아들이야? 딸이야?” 다그치는 어머니에게 힘없이 대답했다. “딸이래요”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딸이면 어떠니? 에미는 건강하고?” 물어오셨다.

 

 교회에 딸 넷을 가진 윤희상 장로님이 있었다. 주일에 마주치더니 하는 말 “이 목사님, 딸 넷 되는 것. 순간입니다.”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사실 평상시에 아주 가까이 지내는 정 집사가 있었다. 지난번 내게 낚시를 권하던 그분이다. 정방헌 집사와 김교선 집사 사이에는 딸이 둘 있었다. 아내 집사가 운영하는 양품점이 버스정류장 가는 길목에 있어서 오고 가며 종종 들러 기도도 해주고 음식도 대접받고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총각 때 항상 우스개 소리로 놀려댔다. “아니, 그래. 아들 하나를 못나요?” 그런데 내가 정작 두 딸의 아빠가 된 것이다. 세상일 모를 일이다. 남의 말 할 것이 못되는 것 같다. 친구들도 놀려댔다.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둔 친구는 만나면 내 목을 쓸어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는 “아들은 낳아야지”하며 다그치셨다. 어머니에게 손자를 안겨주지 못한 것이 당시는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른다.

 

 세월이 흘렀다.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역할이 커져가고 남자들의 영향력은 점점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가정에서도 아내의 발언권이 강해져가고 서서히 남자들이 움추러드는 흐름이 이어지게 되었다. 냉정히 돌아보라! 아들, 별무 소용이다. 이제는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세상이 되었다.

 

 노부모를 양로원에 모신 딸은 매일 시도때도 없이 드나든다. 하지만 아들은 sometime이다. 한국에서 미국을 방문하는 대부분이 딸을 둔 분들이다. 이런 일설이 있다. “아들 둘을 키운 엄마는 무슨 죄든지 용서받는다. 아들 셋을 키운 엄마는 무조건 천국에 간다” 웃자고 하는 말이다. 그만큼 아들을 키우는 것이 힘이 든다는 의미인 것 같다.

 

 젊은 날에 많은 서러움(?)을 받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두딸의 아빠라는 것이 그렇게 다행스럽고 고마울 수가 없다. 내 입장에서 해석을 하는 것 같지만 딸들과의 삶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일단 만나면 아빠를 안아주고 사랑을 표현해 주어 좋다. 안부 전화도 자주하고 만나면 “필요한 것 없느냐?”고 물으며 세세히 챙겨준다. 내가 누리고 소장하는 옷과 물건들은 거의 딸들이 사준 것이다. 이제는 아들만 둔 가정을 보면 안스러운 생각까지 든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역시 아들보다는 딸 있는 가정이 더 행복해 보인다. 편견일 수도 있다. 아들? 딸? 나이가 들어가며 이제는 자녀의 성비(性比) 앞에 인생길이 갈라지는 것이 현실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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