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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1 09:59

자발적 망명,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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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밀알은 매년 1월 단장컨퍼런스를 가진다. 한해동안 열심을 다해 분주히 사역을 하고 연말에 숨을 고른 후, 새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전미주 밀알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인드를 함께 하는 것이다. 처음 필라델피아 밀알 단장으로 부임했을때에 내 나이 40대 중반이었다. 세월이 왜 이리 빠른가? 이제는 단장중에 최고참이 되었다.

 

 지난 주간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분이 물어왔다. “목사님, 은퇴하셨지요?” ‘은퇴? 난 아직 그 나이가 아닌데’ “아니요. 아직 사역하고 있습니다.” 억지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하자 오히려 그분이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젊어보인다”고 하는데 그 말도 신빙성이 없는 것 같다. 벌써 은퇴를 물어오니 말이다.

 

 1월 13일(월)부터 중미 과테말라에서 단장 컨퍼런스가 열린다는 공문을 받고 제일 먼저 생각한 곳은 로스앤젤레스(L.A.)였다. 나는 처음 이민을 그곳으로 왔다. 이민자들은 안다. 처음 정착한 곳이 새로운 고향이라는 것을. 필라에서의 삶이 수십년이지만 항상 L.A.를 그리워하며 살고있다. 일단 날씨가 환상이고, 핫한 분위기, 어디가나 한인들이 많아 살기 편한 곳.

 

 그래서 컨퍼런스 일주일 전인 7일(화) 그리운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년만이었다. 저가 항공이어서 두 번이나 갈아타며 밤 9시가 넘어서야 L.A.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중나온 친구와 해후를 하고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가 이어졌다. 산불이 나서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생각보다는 안정적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한 주간을 오렌지카운티에서 코리아타운까지 분주히 다니며 일정을 감당했다.

 

 처음 L.A 땅을 밟던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 아내와 아직은 어린 두 아이를 대동하고 겁도없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먼저 와서 목회를 하고 있는 대학 동창 안 목사뿐이었다. “장애인 선교를 하자”는 친구의 권유에 무작정 이민을 왔다. 물론 아이들의 교육도 한몫을 했지만 말이다. 일단 한국에서 숨가쁘게 감당하던 목회를 쉴 수 있어 좋았다. 우리집 노르망디 11th Street에서 바라보는 다운타운의 하늘은 고발트 색깔로 높고 청명했다.

 

 아침에는 해무가 깃들다가 정오가 되면 습도가 사라진다.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날씨라고나 할까? 집밖을 나서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Up되면서 행복했다. 차를 몰고 20분만 나가면 말리브 해변이 펼쳐지고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페퍼다인 대학이 나타나는데 캠퍼스 잔디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실로 절경이었다. 그런 시간이 계속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민의 전설 “이민을 초청해 준 사람과 원수가 된다”는 가슴시리는 순간이 소리없이 엄습했다. 참 서러웠다. 이민자의 삶이 얼마나 냉혹한지 깨닫기 시작했다. 다행히 하나님이 돌파구를 여셔서 필라델피아로 이주하여 밀알사역을 맞닥뜨리며, 앞만 향해 달려야하는 분위기를 통해 가까스로 위기를 넘어갈 수 있었다. 서로의 기대치가 어그러지면서 가까웠던만큼 상실의 아픔이 큰 것이 이민자들이 겪어야 할 성장통인 것 같다.

 

 처음 공항에서 라이드를 해 준 사람을 하루 이틀 따르다가 평생 직장이 되는것이 두 번째 전설이다. 이민자들은 그렇게 신기함과 두려움 속에 시작하여 정신없이 수십년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근래에 온 사람들은 이해가 간다. 6, 70년대에 이민을 왔음에도 여전히 눈만 뜨면 고국 소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유튜브 실시간으로 다가오는 한국 소식을 접하며 입에 거품을 문다. 그 세월이면 이제 잊혀질만도 한데 말이다.

 

 실로 이민을 누가 권해서도, 강요해서도 아니다. 결국 자신이 선택한 자발적 망명이다. 서럽다서럽다해도 타향살이 만큼 서러운 여정이 있을까? 완벽한 한국말을 뒤로하고 아직도 우리는 영어의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고 있다.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상황을 꿋꿋히 견디고 이겨내며 오늘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다들 대단하다. 여기까지 감당해 온 당신은 진정한 영웅이다. 힘을 내고 오늘도 웃자! 웃다보면 저 멀리서 예기치 않았던 행운이 당신 가슴에 안겨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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