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5.04.10 15:34

봄비

조회 수 1020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비가 내린다. 겨울의 찬 기운에 지쳐버린 나뭇가지를 녹여내며 봄비가 내린다.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를 달래듯 타고 내린다. 살아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꽃나무를 차분히 적셔간다. 이제 막 깨어나 기쁨에 겨워 잔기침을 하는 나무들을 보듬어 준다. 봄비는 이제 막 꽃몽우리를 터뜨린 꽃잎을 정성스레 쓰다듬는다. 가느다란 봄비의 몸매는 옛 추억 속으로 생각을 몰아간다.

 

 비는 그 모양이 다양하다 못해 신기하다. 장마철에 퍼붓는 소나기는 아이들 손가락만하다. 마당에 자취를 남기며 쏟아지는 빗줄기는 시원하게 대지를 적신다. 반면에 봄비는 가냘퍼 보여서 좋다. 더운 여름에 쏟아지는 비는 가슴을 시원하게 쓰려 내려서 좋지만 봄비는 무엇인가 생각나게 해서 좋다.

 

 어린 시절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꽃밭에 들어가 나팔꽃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다. 기다랗고 아름다운 나팔꽃 속으로 비가 스며든다. 그래도 물이 넘치지 않는 것이 그렇게 신기했다. 봄비는 조리로 뿌리듯이 내리지만 결국은 옷깃을 적셔내고 만다. 봄비가 많이 내릴수록 따스한 기운이 대지를 덮어오기 시작한다. 봄비가 내리는 날 들판에 서 본 일이 있는가! 생명의 소리가 어우러져 합창하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어머니는 실비가 오면 그렇게 읖조리셨다. “님이 가려고 가랑비가 오는구나” “님보고 있으라고 이슬비가 오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어릴 때는 전혀 몰랐다. 아버지는 경찰업무에 잦은 야근을 하셨다. 나이가 들어가며 어머니의 허전했던 가슴을 엿보게 되었다.

 

 비가 오면 친구들과 뒷동산에 올랐다. 우리가 아지트처럼 확보한 바위에 오르면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고 비를 맞으며 우리는 총싸움을 하였다. 이제는 늙어가고 있을 친구들의 얼굴이 빗줄기와 함께 웃고 있다. 시골 들녘을 적시는 봄비는 어린 가슴에 꿈을 주었다. 소리를 치면 대꾸하듯 들려오던 메아리가 그리워진다. 우리가 외치는 소리에 놀라 달아나던 산토끼의 모습도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봄비가 내리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버스를 타고 경기도 광릉 쪽으로 향하다보면 자그마한 유원지가 나온다. ‘졸졸’소리가 흐르는 시냇물을 지나면 섬처럼 꾸며진 유원지에는 다양한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저만치 그네도 있고, 뚝을 막아 만들어 놓은 호수에는 오리 모양의 배들도 떠있다. 한켠에는 유격 훈련장 같은 분위기가 나는 코스도 준비되어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처음 그곳을 찾아갔다. 조금 지나서는 여자 친구와 갔다. “노를 잘 젓는다”고 큰소리를 치며 배를 빌려 마주 앉아 노를 저어 보지만 배는 그 자리만 ‘뱅뱅’ 돌아 이내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고 말았다. 배는 마음처럼 나아가질 않았다. 그 모습이 안스러워 웃지도 못하는 그 아이의 표정을 읽었다.

 

 생각이 많았던 청년시절, 가슴이 답답할 때면 그곳을 찾았다. 숲속에 가만히 앉아 빗소리를 들으면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 졌다. 나중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을 찾았다. 그러면서 처음 만났던 그곳에 대한 첫인상은 점점 더 희석되어 갔다.

 

 봄비는 ‘초인종’이다. ‘띵동, 띵동’ 하는 시끄러운 소리 대신 “똑똑. 주룩 주룩” 창문을 조심스레 두드리며 봄이 왔음을 알린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빗소리가 평범한 행복으로 이끌어 간다. 봄비는 시계 바늘이다. 아무도 기다리는 이 없어도 불평불만 한마디 없이 때가 되면 우리 곁에 와서 사랑을 뿌린다. 봄비는 자동 청소기이다. 겨울동안 부서지고 깨진 것들을 모두 쓸어가 주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 준다.

 

 「봄비」-고정희 作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1. No Image

    봄비

    비가 내린다. 겨울의 찬 기운에 지쳐버린 나뭇가지를 녹여내며 봄비가 내린다.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를 달래듯 타고 내린다. 살아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꽃나무를 차분히 적셔간다. 이제 막 깨어나 기쁨에 겨워 잔기침을 하는 나무들...
    Views10204
    Read More
  2. No Image

    불꽃 같은 삶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생을 건강하고 평안하게 살고 싶은 소원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태어날때부터 그 소박한 꿈을 접고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 이해한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산다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Views10473
    Read More
  3. No Image

    야구의 묘미

    바야흐로 야구의 계절이 왔다. 몹시도 춥고 지루했던 겨울이어서일까? 한국 프로야구는 개막전부터 만석에 구름 관중이 몰려 성황을 이루고 있다. 나는 장애가 있어 그라운드를 누비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구기종목을 좋아한다. 축구, 배구, 탁구 무엇...
    Views10065
    Read More
  4. No Image

    돈이 곧 그 사람이다

    몇 해전, 한국에 갔을 때 일이다. 지인이 별식을 대접한다며 차에 나를 태웠다. ‘도대체 무슨 음식을 사주려나?’ 호기심과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서울을 벗어나 가평쪽으로 달리던 차는 큰길을 벗어나 논길로 접어들었다. 허름해 보이는 ...
    Views10504
    Read More
  5. No Image

    모닥불과 개미

    러시아의 소설가이며,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솔제니친이 어느날 산보를 하다가 모닥불을 발견한다. 무심코 모닥불 옆에 뒹굴고 있는 썩은 통나무 하나를 불속에 집어넣었다. 안타깝게도 거기에 개미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처음에는 개미들이 뜨거움...
    Views10631
    Read More
  6. No Image

    앓음에서 알음으로

    인생을 아름답게 보고 아름답게 사는 것, 이보다 더한 축복은 없을 것이다.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명성을 날리던 ‘강수진 발레리나’의 영상을 접한 적이 있다. 그녀는 매일 새벽 5:30분에 기상하여 스트레칭을 두 시간씩 하고 걸어서 5...
    Views11049
    Read More
  7. No Image

    계란 하나면 행복했던 그때

    지금은 흔하디 흔하지만 내가 어린시절에는 계란이 참 귀했다. 어머니가 5일장에 다녀올 때면 달걀 열 두개가 짚으로 엮은 길다란 꾸러미 속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계란은 주로 찜을 해 먹었다. 그래야 온 식구가 고루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노르...
    Views10634
    Read More
  8. No Image

    자발적 망명, 이민

    미주밀알은 매년 1월 단장컨퍼런스를 가진다. 한해동안 열심을 다해 분주히 사역을 하고 연말에 숨을 고른 후, 새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전미주 밀알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인드를 함께 하는 것이다. 처음 필라델피아 밀알 단장으로 부임했을때에 내 ...
    Views11266
    Read More
  9. No Image

    이런 목사도 있다

    70년대만 해도 목회자가 교회 수에 비해 현저히 모자랐다.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목양자체가 힘든 사역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어디에가든 목사를 존경하는 사회 분위기였다. 하지만 현실은 목회자가 존경받지 못하고 있는 세태가 서글프다. 교회...
    Views11469
    Read More
  10. No Image

    “희망”은 기적을 만들어 낸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종합병원의 중환자 병동에 아주 심한 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는 십대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처음 자원 봉사를 나온 대학생 중에 한명이 중환자 병동에 들어오게 된다. 대학생은 이 소년의 기록을 보고 나이를 확인한다. 그리고는...
    Views12428
    Read More
  11. No Image

    자식이란 묘한 존재 앞에서

    20대 후반에 아내를 만나 뜨겁게 연애를 하고 서른 살이 되던 3월 따스한 봄날에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 둘만이 아니라 홀로되신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한 신혼이었다. 돌아보니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것이라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생각보다 빨리 첫아이가 ...
    Views13134
    Read More
  12. No Image

    약속

    역사는 약속의 줄기를 타고 이어져 오고 있다. 약속은 다양하며 그 범위는 한없이 넓다. 개인끼리의 약속이 있다. 크게는 국가 간의 약속이 있다. 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 나에게는 약속에 대한 독특한 철학이 있다...
    Views12881
    Read More
  13. No Image

    연륜의 부부

    결혼 적령이 되면서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나 교제가 깊어지고 혼인을 한다. 비혼주의자들도 있지만 사실 결혼은 삶의 필연이 아닐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남 · 녀로 만드셨다면 짝을 이루어 한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은 자연스럽고 복된 일...
    Views13825
    Read More
  14. No Image

    세월을 낚자

    새해가 되어 인사와 덕담을 나누느라 바쁘다. 매년 같은 멘트이지만 건네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러고 보면 시기에 맞는 말이 따로 있는 듯 하다. 아침에 만나면 외국 사람들은 ‘Good Morning’ 한국인들은 ‘좋은 아...
    Views13445
    Read More
  15. 2025 첫 칼럼 "장애와영성(spirituality)"

    하나님은 전능하시며(omnipotent), 전지하시며(omniscient), 무소부재하시며(omnipresent), 선하신(good) 분이다. 삶에 나타나는 일은 우연이 없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들(attributes)과 역...
    Views14481
    Read More
  16. No Image

    세월아 너만 가지!

    세월의 흐름은 나이, 인종, 문화를 초월하여 누구나 빠름을 인정한다. 세월의 흐름을 두려워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음이 아닐까? 70년대를 풍미한 지성파 포크 가수 박인희. 그녀의 음색은 매우 청아하다. 감정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는 듯하나...
    Views14480
    Read More
  17. No Image

    운동한다고 건강해?

    만나는 사람마다 화두가 건강이다. 누구나 건강하고 싶고, 건강을 위해 애쓰며 살고 있다. 나에게는 45년 지기 절친 목사가 있다. 나는 성격이 직선적이고 급한 반면, 그 친구는 수줍고 침착하고 느긋하다. 상반된 성격의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기억...
    Views15699
    Read More
  18. No Image

    보물 지도

    언제부터인가? ‘금수저, 흙수저’란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모두가 안다. ‘어떤 가정 분위기에서 성장하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꿈”이다. 이미 ...
    Views15057
    Read More
  19. No Image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다

    어느덧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12월에 접어들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평탄한 길만 가는 것은 아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운 일을 만나 고뇌하는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만날 때 사람들은 좌절한다. “이제는 끝이라”고...
    Views16335
    Read More
  20. No Image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 사람일수록 “행복지수”가 높아진다고 한다. 그중에 편지에 대한 애틋한 추억은 내 인생의 가장 값진 재산이다. 돌아보니 그때 열심히 편지를 쓴 덕분에 문장력과 표현력이 늘어간 것 같다. 무엇이든 세세히 보는 감성도 그...
    Views1879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1 Next
/ 41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