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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7 10:25

서라벌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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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설마 했는데, 결국 폐업 소식이 전해졌다. 얼마 전부터 “서라벌이 문을 닫는다는데”하는 입소문이 번져 갈 때도 “누가 그래? 서라벌이 그럴리가?”했다. 지난 3월. 지인과 그곳에서 식사하며 마침 서빙하는 가족에게 직접 물어도 보았다. “다 헛소문이예요”라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식당 문을 나서며 “아직 영업 중인데 문을 닫는다고 하겠어”라며 서로 웃었다.

 

 한인 상권이 좀 더 활성화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은듯 하다. 내가 처음 필라델피아에 왔을때만해도 젠킨타운에 영빈관이 있었고, 캐스터에도 삼원가든, 옛고을(중화요리점), 명동식당이 성업중이었다. 얼굴이 알려지면서 혼밥을 먹을때면 캐스터로 차를 몰아 옛고을에 들러 자장면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숲길이 너무도 정겨웠다. 5가에는 한촌설렁탕이 성시를 이루었다. 당시 아침식사까지 할 수 있어 손님을 접대하기에 편리하였다.

 

그 곁에는 판돌네 식당이 자리했다. 그중에서도 <사라벌식당>은 단연 Top이었다. 회합을 가지거나 경조사가 있을때에 단체 손님들을 모시기에 용이하기도 하였다. 음식 솜씨나 메뉴 또한 탁월해서 문전성시를 이루던 광경이 또렷하다. 당시 점심식사를 위해 그곳에 가면 꽤나 유명한 한인들은 거의 만날 수 있을 정도였다.

 

 처음 필라델피아 밀알선교단 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서라벌>에서 밀알 이사회가 열렸다. 당시 이사장은 고인이 되신 김학륜 장로님이었다. L.A.에 살다가 필라에 와서 처음 맞이하는 이사회는 기대감으로 설레이는 순간이었다. “서라벌?” 이름이 거창했다. 신라가 연상되며 무언가 고품격에 음식이 나올듯 한 업소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들어선 식당은 석가래와 조명이 어우러져 옛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이사들과 처음 마주한 시간. L.A. 수준(?)으로 음식 주문이 들어갈 줄 알았다. 첫 부임한 단장과 첫 상견례를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이사장이 입을 연다. “여기는 회덮밥이 맛있어요. 나는 그것을 먹겠습니다.” 이사장이 뒤를 잇는다. “나는 대구지리” 나는 그때 ‘지리’라는 음식명을 처음 들었다. ‘갈비나 회를 시킬 줄 알았는데?’ 내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엉겹결에 나도 회덮밥을 시켰고 근래까지 그 메뉴가 자동으로 내 앞에 당도하였다.

 

 서라벌 입구에 들어서면 시선을 끄는 것이 양옆에 전시해 놓은 한국 유명 인사들과 사장이 함께 찍은 액자들이다. ‘와, 저분들이 이곳을 방문했구나!’ 내로라하는 정치인, 스포츠, 연예인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인증샷을 남겼다. 대단한 마케팅이다. 그만큼 필라에서 지명도가 높은 식당이며, 음식맛이 좋음을 증명해 주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조규철 사장은 크리스천이다. 지금은 한국에 가 있지만 최 목사는 나와 신대원을 동문수학한 오랜 친구이자, 조 사장이 출석하는 교회 담임이었다. 거기다가 포천이 고향인 나와 근접한 동두천이 고향이라 동향지심이 있다. 나이도 한 살 차이. 어쩌다 들르면 한가할 때는 곁에 서서 사는 얘기를 나누는데. 짧지만 깊은 교감이 오가는 사이였다.

 

 어리던 두 아이가 장성하여 결혼하는 모습까지 지켜보며 세월이 무척이나 빠름을 실감한다. 동생이 합류하고 분위기는 아주 좋아보였다. 다행히 아들이 다운타운 13 Spruce에 음식점을 개점하여 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 위안을 준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유명한 인플루언서란 말도 듣기가 좋다. 어쩌다 마주쳐 서빙 해 주던 딸의 풋풋한 미소가 자식 농사를 잘 지는 조 사장의 초상화 같아 좋다.

 

 이제 31년 동안 필라 한인들의 애환을 담았던 서라벌 식당이 문을 닫았다. 주간 신문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글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듯 했는데, 언제라도 가면 “어, 목사님 오셨네요”하고 손을 내어밀 줄 알았는데. 추억이 가득 담긴 장소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절로 한숨을 나오게 한다. 지난 6월 2일 내가 몸 담고 있는 필라문인협회 정기 모임이 서라벌에서 있었다. 첫 설립 장소이자 마지막 문협 모임이 될 줄이야!

 

 조규철 사장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보고 싶을 때는 다운타운으로 찾아가렵니다. 그렇게 속절없이 세월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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