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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5 15:08

광화문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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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세대가 드러난다. 나이가 들면 트로트를 즐겨 듣는 것 같다. 나는 희한하게 그 음악이 부담스럽다. 어렸을때는 남진 흉내를 곧잘 내기도 했건만 이상하게 트로트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요즘 아이돌 가수들의 무대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노래에서 풍기는 젊음의 활력, 에너지 넘치는 퍼포먼스는 정말 대단하다. 때론 혀를 내두를 정도다. 사람의 몸이 이렇게까지 유연할 수 있나 싶을 만큼 몸짓 하나하나가 놀랍다.

 

 현대의 대중가요는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정교하다. 곡 구성, 리듬감, 편곡, 보컬의 완성도까지 모든 면에서 수준이 높다. 하지만 그 완벽함 속에서 허전함이 느껴오는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들여다봐도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나는 젊다, 고로 표현할 뿐이다”라고 해야 할까? 직설적인 감정 분출만 보인다. 랩은 쉬지 않고 감정을 쏟아내고, 가사는 점점 더 감각적이고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 할 틈을 주지 않는다.

 

 내 청춘의 노래에는 정감이 있었다. 원하는 음악을 구해 듣는 것도 힘들었기에 음악 한곡에 실눈을 뜨고 행복해 하던 시절이 있었다. 전파사에서 틀어 놓은 음악이 너무 좋아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서성이며 감상하던 때가 있었다. 귀를 울리는 멜로디와 들을수록 마음을 적시는 매력이 있었다. 노래는 단순히 흘러가는 배경음악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을 두드리는 어떤 힘이 있었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는 그의 히트곡이자 추억을 음미하게 만드는 마성이 있다. 몇 해 전인가? 임마누엘교회에 이문세가 나타나 교인들이 놀란 일이 있었다. 알고보니 청년중에 그의 아들이 있었던 것이다. 교회에 다녀온 아이들이 전해주는 말을 듣고 내가 보인 반응은 “정말, 이문세가 예배에 참석했어? 크리스천이었어? 혹시 밀알의 밤에 초청할 수 있을까?”였다. 그래서 가사에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 등장한 것일까?

 

 지금 중년에서 노년에 접어드는 세대에게 그는 진정 우상이었다. 미성에 워낙 음악성이 탁월한 정상의 가수였고, MBC 라디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무려 11년이나 진행한 베테랑 DJ이기도 하였다. “별밤지기”는 그의 또 다른 별명이었다. 그러기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그의 노래가 주 OST로 깔렸다. 이 시기 라디오는 청소년과 청년층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쳤고, 이문세는 특유의 감성적인 진행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기회가 될 때면 나는 <광화문 연가>를 즐겨 부른다. 고교 시절 <광화문>은 우리 10대들에게 무한한 꿈을 안기는 장(場)였다. 국제극장의 위용은 처음 서울에 올라온 나를 압도했다. 처음 접하는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의 화면은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노래 <광화문 연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담고 있다. 광화문과 정동길을 배경으로 젊은 날의 사랑과 아련한 향수를 노래한다.

 

 광화문을 지나 정동길로 타고 돌면 MBC가 드러나고 체육관도 만난다. 사잇길로 들어서면 정동교회와 마주치고 이화 여고를 만난다. 도심이지만 갑자기 적막해지고 기분 좋은 고요함이 밀려온다. 그렇게 여친과 정감 어린 대화를 나누며 한바퀴를 돌아치면 덕수궁 돌담길을 만나고 4계절마다 변해가는 광화문의 정취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중학교까지 경기도 양평에서 살았다. 고교를 서울로 진학하면서 서울과 친근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년을 살다가 이민을 왔다. <광화문>이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내 젊은 날의 추억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추억은 장소에 국한하지 않는다. 노래이다. 노래에는 그 시절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매력이 숨어있다. 한 곡의 멜로디만 들어도 잊고 있던 장면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그것은 시대의 초상화이고, 삶의 한 조각이며, 한국 사회의 감정이자 정서이다. 오래된 기억을 끌어올리며, 잊고 있던 감정을 되살리는 힘이 노래에 있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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