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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3 10:14

고향집에 들어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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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이다. 고국에서는 교통체증에 시달리면서도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고 있다. 처음 미국에 왔을때는 비디오 가게에 들러 VHS로 겨우 고향의 정취를 느껴야 했다. 이제는 유튜브가 있어 언제든지 향수를 머금을 수 있어 다행이다. 이민 생활 수십년이 명절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

 

 어린 시절에 추석을 기다린 이유는 “추석빔”(추석날에 입는 새 옷이나 신발 따위)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셨기에 가정형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꼼꼼한 성격의 어머니는 자녀들의 “추석빔”을 어김없이 챙겨주셨다. “추석빔”은 당일 아침에 입어야만 하였다. 밤마다 거울 앞에서 새옷을 입어보며 손꼽아 명절을 기다렸다. 당일 저마다 새옷과 새 신발을 신고 뽐내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또 하나는 제사 음식이었다. 우리 가문은 명절이 되면 마루부터 마당 그득히 온 집안이 늘어서서 제사를 지냈다. 가난한 시절이어서 제사상의 화려함은 어린 우리들의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제사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실감했다. 특히 알록달록 물감이 들여진 사탕은 최고 인기였고 ‘동그랑땡’등 전 종류가 군침을 삼키게 했다.

 

 엄숙한(?) 제사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아귀처럼 달려들어 먹고 싶은 음식을 낚아채 갔다. 까까 옷을 입고 모처럼 배부르게 맛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명절. 날씨까지 청명한 추석은 어린 가슴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온 집안이 고향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정겨운 덕담을 나누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그때는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따라서 보통 하루나 이틀 전에 고향을 찾는 것이 통례였다. 오랜만에 친척들이 며칠 동안 함께 어울리며 친족의 정을 쌓았다. 이제는 마이카 시대가 열려 다들 고향에 머무르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그때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았다. 어릴 때는 명절에 흔히 하는 놀이를 즐겼지만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우리 집안은 사촌, 육촌 간에 또래가 많았다. 어떤 해에는 어머니 동갑 여섯 동서들이 아이를 낳았다. 여아는 두명, 나머지는 다 사내아이였다. 모두 “재”字 돌림이라 이름도 다채롭고 재미있었다. 거기다가 사촌 형님과 나이 차가 워낙 커서 조카들이 거의 같은 또래였다. 서너살 차이인데 조카들이 “아저씨, 아저씨!”하며 따라다니는 것이 나는 싫었다. 형수님들이 “되련님”(도련님의 경기도 사투리)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이채로웠다.

 

 고향집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외양간이었다. 대문에 들어서면 커다란 눈망울에 암소가 “음메”하며 머리채를 휘둘러 댔다. 이어 코끝을 찔러오는 매케한 내음은 고향에 온 것이 실감 나는 시골 냄새였다. 뭔가 모를 기분 좋은 현기증을 일으켰다.

 

 큰 엄마(백모)는 구부러진 허리를 펴시며 다가와 내 엉덩이를 두드리셨다. “재철이 왔구나 잘 지냈니? 내 새끼!” 정감 어린 한마디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큰 아버지(백부)는 엄한 분이셨다. 큰절을 올리면 긴 담뱃대를 쇠재털이에 두드리며 기침 섞인 덕담을 들려주셨다.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면 사촌누이 “화순”을 찾아 나섰다. 형수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핑계로 부엌에 들어서면 “화순”은 부엌 한켠에서 수줍은 미소와 함께 눈웃음으로 나를 반겼다. 동갑내기인 “화순”은 어른스럽게 나의 고민을 모두 들어주었다.

 

 뒤뜰에서 어색하게 시작된 우리들의 대화는 코스모스가 만발한 행길(한길의 사투리)로 이어졌다. 그때 여자아이에게는 일이 많았다. 추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던 시간이 지나면 동갑내기 6명은 한자리에 모여 많은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 순수함이 많이 희석된지 오래지만 지금도 추석이 다가오면 생각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 몸은 미국에 있지만 마음은 고향집으로 들어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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