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이렇게 오래 글을 쓰셨는데. 책 한권 내세요” 만나는 사람마다 무심코 내뱉던 말이다. 그러고 보니 <주간필라>에 글을 실은 세월이 20년이 넘었다. 언뜻 헤아려 보아도 수필 천편이 넘는다. 하지만 정작 나는 굳이 책을 내야 하는 것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글을 썼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보기로 하였다. 나이 탓일 수도 있다. 무언가는 남겨 놓고 싶은 인간의 작은 본능이랄까?
지난 1월. L.A.를 방문했다가 <하늘향기> 강 대표를 만나고 책 출간에 대한 조언을 듣게 되었다. 그는 아주 친절하게 책을 발간해야 하는 연유와 단계를 세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래요, 한번 깊이 생각해 볼께요” 답을 하고는 잊고 살았다. 가을에 접어들며 그 만남이 새롭게 떠올랐다. 책을 내기로 결단한 것이다.
머리말을 써서 보내고 나니 추천사를 받으라고 연락이 왔다. 먼저 밀알 총재인 이재서 박사에게 연락을 드렸고, 나에게 상담의 눈을 뜨게 한 멘토 정태기 박사, 내가 흔들릴 때마다 너털 웃음으로 다가와 붙들어주는 밥퍼 최일도 목사. 어떤 일도 허물이 안되는 40년 막역한 지기. 삼일교회 담임 송태근 목사에게 톡을 보내자마자 한주간 상간으로 글이 도착하였다.
희한할 정도로 속전속결 순탄하게 진행되었고. 이내 10월 중순 첫 수필집이 내 가슴에 안겼다. 그 감격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첫 손자를 품에 안았을 때에 감격이랄까? 흐뭇한 미소로 책을 안고 쓰다듬어 보았다. 꿈만 같다. 기적적으로 책이 출간된 것이다. 책 이름을 무엇이라 지을까? 책 표지는 어떻게 디자인하라고 할까? 고심을 거듭한 끝에 제목은 “나는 춤추면서 걷는다”로 정했고, 표지에는 활짝 웃는 내 얼굴을 담았다.
나는 생후 2살 때 홍역을 앓으며 소아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오른쪽 다리에 심한 장애가 있어 힘겨운 생을 살아야 했다. 기우뚱거리며 걷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게섰거라!’하는 폼으로 왼쪽 팔을 휘저으며 걸어 다녔다. 2002년 9월 L.A. <글렌데일연합감리교회> 초청을 받아 기타를 치며 찬양을 불렀다. 예배 후 거동이 불편한 한 분이 내게 면담을 요청했다. 이권재 집사였다. 마침 그분도 소아마비 장애인이었고. 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보조기구를 만드는 회사 사장이었다.
동병상련이랄까? 그분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생애 처음으로 보조기를 차게 되었다. 적응하느라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느새 23년째 보조기를 통해 전보다는 조금은 덜 요동치며 걸음을 걷고 있다. 어릴 때부터 불편한 다리가 창피했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많은 놀림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체육 시간에는 오로지 홀로 교실에 남아 지켜야만 하였다.
20대 초반에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나에게 영적 깨달음이 왔다. 나는 저는 것이 아니라 ‘춤추는 것’이라고. 나는 뒤뚱거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으신 땅을 날마다 ‘춤추며 걷는다’는 것을. 희열이 올라왔다. ‘그래, 나는 특별한 옷을 입혀 이 땅에 보내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춤을 추라고 장애가 왔다’라는 깨달음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임을 깨닫고 난 후 나는 진취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후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당당한 삶을 살게 만들었다. 내 책은 신앙 서적이 아니다. 일상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들을 소소히 글로 엮어가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마치 오랜 친구가 마주 앉아 긴 이야기를 나누듯 부담이 없고, 읽을수록 빠져드는 글맛이 충만할 것이다.
읽다 보면 눈물도 날것이고, 웃음도 터지리라! 깊이 읽다 보면 어디선가 예수님의 향기가 가슴으로 스며들게 될 것이다.
16일(주일) 오후 5시. 몽고메리 교회에서 북콘서트가 열린다. 오랜만에 직접 기타를 치며 장르를 초월한 노래로 찾아오는 분들을 위로하리라! 저녁 식사까지 거나하게 준비해 놓고 책 출간의 기쁨을 나눌 분들을 찾고 있다. 진정 나는 오늘도 춤추면서 걷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밤. 이 귀한 자리에 정중히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