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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0 11:42

닭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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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가 없어서 닭 우는 소리로 새날이 밝아옴을 가늠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다섯 식구가 한 이불속에서 잠을 자던 때다. 새벽녘이 되면 온돌이 식어 추워지니까 이불을 서로 끌어 당기며 잠을 어어갔다. 그때는 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따라서 밤이 길었다. 단잠을 잘 때는 겨울밤이 짧디 짧지만 간혹 한밤중에 깨어 긴긴 밤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새벽닭이 울어 제끼며 온 식구를 깨웠다. 첫닭이다. “아직도 두 번은 더 울어야 날이 샌다.”엄마는 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토닥여주셨다. 그 목소리가 지금도 가슴에 쟁쟁하다. 칠흙같은 어둠이 덮고 있을 때 닭은 운다. 밤과 아침의 경계에서 울려 퍼지는 그 울음은 단순한 생물학적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잠든 세상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인 동시에 인간의 양심을 건드리는 소리였다. 

 

 닭 울음은 이상한 소리다. 하루를 시작하는 신호이면서도 우리가 잠들어 있던 시간을 고발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닭 울음은 반갑기보다 불편하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밤을 지나온다. 스스로에게 타협한 밤, 침묵으로 진실을 넘긴 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 밤. 그 순간에는 별일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매일 그 시간에 울리던 닭 울음 같은 소리가 문득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이유 없는 공허가 밀려 온다. ‘이건 아닌데’라는 작지만 분명한 내적 울림이다. 

 

 흥미로운 점은 닭 울음이 밤의 한가운데서 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장 어두울 때가 아니라 어둠이 끝나갈 무렵에 울린다. 이 소리는 절망의 신호가 아니라 전환의 신호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선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서 들리는 알림이다. 우리는 종종 조용한 밤을 신앙의 평안으로 착각한다. 갈등이 없고, 불편함이 없고, 마음이 무덤덤하면 괜찮다고 여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닭 울음이 들리지 않는 삶이다. 

 

 내가 칼럼을 쓰는 이유도 어쩌면 닭 울음과 닮아있다. 바쁜 이민 생활이지만 내 글을 읽으며 잠시 삶의 흐름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어느 목사는 초청되어 간 교회에서 이렇게 말을 띄운다. “오늘 제 설교가 여러분에게 조금 불편하게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과감하다, 멋지다. 그렇다. 내 글이 위로와 삶의 힘을 주는 글이 되기를 바라지만 때로는 불편하고 질문을 던지며 생각을 흔드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닭 울음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려 울지 않는다. 더 늦기 전에 깨우기 위해 울 뿐이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닭은 운다. 그리고 그 울음은 여전히 사람을 살리는 소리다. 우리의 삶에도 닭 울음은 존재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 실패한 관계의 침묵일 수도 있다. 양심을 찌르는 작은 깨달음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쓴다. 

 

 흥미로운 것은 닭 울음이 밤의 끝을 알리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전환의 소리다. 성경은 베드로가 들었던 닭 울음 소리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그는 무너졌지만 버려지지 않았다. 부인했지만 포기되지 않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를 처음 만났던 갈릴리호숫가로 다시 찾아오셨다. 그리고 뜻밖에 질문을 던지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한마디에 베드로는 사명을 회복한다. 닭 울음은 실패의 마침표가 아니라 회복의 시작을 여는 쉼표였던 것이다. 

 

 닭 울음은 은혜의 소리이다. 결코 우리가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소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배신을 모르셔서 놀라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후의 선택을 보신다. 닭 울음 앞에서 통곡하며 돌아설 것인지, 아니면 귀를 막고 다시 잠들 것인지가 문제다.

 

 닭 울음을 듣고 싶다. 그것이 아프더라도, 부끄럽더라도 듣고 싶다. 닭 울음이 없는 밤은 편안할지 몰라도 결국 길을 잃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닭 울음이 있는 새벽은 눈물로 시작할지라도 빛으로 나아가게 한다. 오늘도 어둠의 끝자락에서 울리는 그 소리가 나를 다시 진실로 부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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