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내 칼럼은 이렇게 시작된다. “드라마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걸까?” 바로 <응답하라 1988>(이후 응팔)을 지칭한 말이다. 당시 드라마는 재미와 감동, 추억, 신세대들의 당돌함이 어우러져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세월이 10년이란다. 아니, 벌써? 그렇게 소리 없이 세월은 우리의 곁은 스쳐 지나갔다.
해당 방송사가 10년 만에 <응답하라 10주년>을 내놓았다. 반가움과 호기심이 동시에 밀려왔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여전히 그 골목의 온기를 간직하고 있을까? 10년 만에 다시 만난 주인공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분명히 성장해 있었다. 외모도, 말투도, 삶의 무게도 달라졌지만 묘하게도 카메라 앞에 모이자 예전 쌍문동 가족의 공기가 되살아났다.
응팔의 서사는 사실 단순하다. 쌍문동에 사는 다섯 가정의 일상을 차분히 들여다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도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흥미진진하다. 매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삶의 가장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 공감을 길어 올리는 힘, 그것이 응팔의 진짜 저력이었다.
왜 하필 “쌍문동”일까? 서울에 오래 살아온 나는 쌍문동이 지닌 독특한 정서를 안다. 완전히 낡지도 지나치게 번화되지도 않은 동네. 서민적이면서도 서울의 중심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 골목에는 사람 냄새가 나고 이웃의 삶이 담장을 넘어 이어지던 공간. 응팔은 바로 그 쌍문동이라는 장소의 기억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쌍문동에서 태어난 “덕선, 정환, 선우, 택, 동룡”이 스스럼없이 사춘기를 함께 보내며 엮어가며 좌충우돌한다. 선머슴 같은 “덕선”(혜리)의 연기는 드라마의 흐름을 주도한다. “혜리”의 연기는 계산된 것이라기보다 센스 그 자체이다. 들여다보기만 해도 풋풋한 그들의 우정. “덕선”을 둘러싼 “정환, 택”이의 순수한 삼각관계 짝사랑은 실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사랑”이다. “덕선과 결국 누가 결혼을 하느냐?”에 대하여 안달하게 만드는 승부욕(?)까지 자극하며 빠져들게 한다.
10년이 흘렀다. 혜리가 31살이 되었다. “아니, 저렇게 잘 생겨도 되?”하며 여성들의 탄식을 자아내게 하던 “택” 박보검은 이제 월드 스타가 되었다. 이제 그 나이 32. 외모, 인성, 신앙 좋고. 피아노 연주는 수준급이고, 노래까지 잘하니 사람인 성 싶다.
부모로 나왔던 탤런트들은 10년의 세월동안 변한 것이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당시 선우(고경표) 동생으로 나왔던 진주(김설)의 등장은 놀라웠다. 당시 5살 아기. 갑자기 등장한 진주의 모습에 당시 엄마와 오빠로 분했던 선영과 경표는 연신 흐르는 눈물을 훔쳐낼 수 밖에 없었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 이제 중 2(15살) 영재라나!
드라마 10주년 재회는 가족 MT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가족끼리 만나 게임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MT 장소로 이동하는 컨셉이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재회하며 함께 음식을 나누고 대화하는 모습이 몹시도 정겨웠다. 당장 한국에 가서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 휴게소에서 라면, 떡볶이, 오뎅. 그리고 호두과자를 먹고 싶은 열망이 솟아올랐다.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혜리와 류준열의 재회 여부였다. 드라마 이후 실제 연인이 되었다가 2023년 결별한 두 사람이기에 시청자의 시선은 더욱 집중됐다. 결국 두 사람의 동반 출연은 없었고, 그 선택에는 묘한 배려와 존중이 느껴졌다.
응팔 10주년의 진짜 케미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쌍문동 가족 전체의 우정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모여 웃고 떠드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추억을 보았고 각자의 과거를 마주했다. 응팔은 결국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였다.
가족과 우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무엇인지 조용히 일깨워준 드라마였다. 드라마 속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가족처럼 자연스럽게 버무려진 귀한 추억 덩어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