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겨울. 우리 집에 예쁜 강아지가 찾아왔다. ‘요크 샤테리아’(♂) 처음 병원에서 발행한 족보를 보면서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마치 사람 주민등록 등본처럼 강아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적혀있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고심 끝에 “쵸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쵸콜릿”에 준말이었다.
낯선 환경에 겁을 먹던 쵸코는 서서히 분위기에 젖어들며 재롱을 떨기 시작했다. 어찌나 영리하고 약은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쵸코”는 온 가족들이 눈을 뜨자마자 불러대는 최고 인기 대상이 되었다. 아내가 “쵸코군!”하고 부르면 말귀를 알아듣는 듯 꼬리를 살랑거리며 따라나선다. 강아지도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나보다.
잘못을 저질러 벌을 세울라치면 사람처럼 꼿꼿이 벽에 붙어서서 놀란 눈으로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풀어 놓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장난을 치며 돌아간다.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동물의 본능인가? 미안할 정도로 눈을 맞추는 쵸코의 열심에 감동을 받게 된다. 식구들 모르게 포도를 주었다가 이상 반응이 와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다. 나중에야 알았다. 요크 사테리아에게 포도는 독약이라는 것을.
거세를 하고 신음하던 녀석이 너무도 힘겨워보여 어루만지며 새벽기도를 드리던 기억이 새롭다. 제일 좋아하는 막내 고교 졸업식에도 함께 갔다. 우리 가족이 가는 곳에 웬만하면 동행을 했다. 가끔 밀알에 데리고 가서 뛰어노는 광경을 보며 일한 적도 있다. 아이들의 결혼을 앞두고 집에서 웨딩드레스를 감상하던 “쵸코”의 표정이 인상에 남는다.
그렇게 “쵸코”는 우리 가족과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갔다. 그 세월이 18년이다. 사랑을 많이 받아서 장수하는 것일까? “아빠, 쵸코를 사람으로 치면 80이 넘은거예요. 아빠보다 나이가 더 든거라니까” 아이들의 말에 한참을 웃었다. 언제까지나 항상 활기차게 뛰놀며 살 줄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 건강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마치 노쇠해 가는 노인처럼. 둥우리에만 엎어져 있고, 뜰에 나가도 뛰지를 못한다. 즐겨 오르내리던 계단 밑에서 서성대기만 하고 음식물도 소화를 제대로 시키지 못한다. 뒷다리에 문제가 생겨 휘청거리다가 주저앉기도 한다.
배변에 문제가 생겨 나이든 우리 부부가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 찾아왔다. 아내는 손주들을 돌보느라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나도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에나 귀가한다. 하루 종일 집에 강아지를 홀로 두는 것이 안스럽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점점 쇠약 해져가고 몇주전부터 상태는 심각하게 돌아갔다.
이내 일주일 전부터 음식물을 전혀 먹지 못했다. 아니 안 먹는 것 같았다. 통통하던 몸이 야의어 가는 것을 안을수록 실감했다. 아이들이 들이닥쳤다. “쵸코”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많은 말들을 하며 쓰다듬었다. 갑자기 쵸코가 눈을 뜨더니 고개를 두리번 거린다. 신기했다. 사람도 운명하기 전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린다더니? 어렵게 발걸음을 떼며 아이들이 떠났다.
20일(금) 밤, 가녀린 숨을 쉬며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쵸코를 바라보며 잠자리에 누었다. 토요일 새벽. 기도를 드리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둥지를 찾았다. 가지런히 누워있는 쵸코의 몸을 만졌다. 싸늘했다. 숨을 거둔 것이다. 갑자기 속에서 울음이 복받쳐 올라왔다. 함께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통곡을 하고서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아내는 놀란 눈으로 나를 지켜본다. 이렇게 슬플 줄은 몰랐다.
그렇게 쵸코는 우리 곁을 떠났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나거나, 지나가는 개만 보아도 쵸코가 생각난다. 지금이라도 꼬리를 흔들며 한켠에서 뛰쳐 나올 것만 같다. 무려 18년 동안 우리 가족과 고락을 함께하던 반려견은 저만치 사라져갔다.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들이 추운 날씨와 함께 가슴 속 구석구석을 후벼파고 있다. 이것을 펫로스 증후군이라고 한단다. 시간이 흐르며 쵸코에 대한 그리움은 나를 더욱 성숙하게 하는 아름다운 이별이 되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