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사람이 된다. 처음 필라델피아에 왔을 때 외로울까 봐 걱정이 앞섰다. L.A로 이민을 와서 경험한 감정은 홀가분이었다. 숨가쁘게 목회에 매진하다 불현듯 찾아온 휴식의 시간은 꿀맛 같았다. 언제나 한가위 같은 캘리포니아 날씨는 고국에 대한 향수를 날려줄 만큼 황홀했다. 한편 낯선 이국땅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내야 한다는 가장의 무게도 간간이 나를 눌러왔다.
밀알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본부에서 필라델피아 밀알 단장 발령을 냈다. LA에 정이 들려고 하는 순간 또다시 동부라니? 그해 5월 필라델피아를 처음 방문했다. 모처럼 마주한 울창한 숲과 꽃이 어우러진 필라의 봄에 금방 매료되었다. 다시 돌아간 LA에서 우리 가족은 회의를 거듭했다. 7월 필라델피아를 비행기로 갈 것인지? 아니면 대륙 횡단을 할 것인지?
아이들이 너무 어렸다. 다 여성이다. 영어도 서툴다. 결국 평범한 방법으로 늦은 밤 필라 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들러 먹던 한촌 설렁탕과 깍두기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후회는 안 하지만 그때 과감하게 대륙 횡단을 했다면 우리 가족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추억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조금 있다.
필라에서 첫 밀알 사역을 시작하며 놀란 것은 여기저기 아는 사람이 숨어있었다는 것이다. 먼저는 신학 동창들이 네 명이나 있었다. 그것도 밀알선교단이 사용하는 교회 담임 목사가 친구였다. 3년 동안 신대원에서 동문수학하고 같은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함께 받은 바로 그 친구가 있어 얼마나 힘이 되어주었는지 모른다.
인생의 노정에서 가장 정감을 주는 단어는 친구이다. 친구가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생각나면 “지금 뭐 해? 오늘 점심 함께 할래?” 건넬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대는 보화를 가진 사람이다. 이민 생활이 참 척박하다. 하는 일도 없는 듯 한데 왜 그리 바쁜지? 정신없이 한 주간이 지나가고 새해라고 했는데 어느새 3월 막바지이다. 만남은 두가지인 듯 싶다. 에너지를 받는 관계인가? 만나면 지치는 사람인가?
친구 역시 그렇다. 정말 친해서 친구가 된 사이가 있다. 반면 어쩌다 보니 방향이 맞아 친구처럼 된 사람도 있다. 같은 동네, 같은 학교, 같은 반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관계이다. 특별한 계기 없이 이어져 온 시간 속에서 우리는 그들을 친구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한 친구라고 하기에는 잠시 망설이게 되는 순간도 있다.
그런 관계는 묘하다. 만나면 대화가 맴돌고 어딘가 공허하다. 깊이 닿지 못한 채 표면을 떠도는 이야기들. 그런데 또 만나지 않으면 이상하게 허전하다. 익숙함이 만들어낸 빈자리 때문이다. 진짜 친구는 다르다. 함께 있을 때 편안하고 즐거움이 있다. 대화를 나눈 뒤에는 작게라도 깨달음이 남는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마음을 살리는 관계가 진짜 친구이다.
친구 사이에도 존경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의 삶을 바라보며 배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야 한다. 진짜 친구는 많을 필요가 없다. 아니 많을 수가 없다. 몇 번의 계절을 함께 지나며 서로의 기쁨과 아픔을 나누고, 때로는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 기도 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름 하나. 그 한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의 중요한 순간마다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지는 않았지만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었다. 고교시절, 무거운 내 책가방을 들어주던 친구. 나를 전혀 부담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다가와 준 친구. 미국 이민을 적극적으로 권하며 이끌어준 친구. 그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벗을 한자로 지기(知己)라고 한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 안의 사람이다. 채근담은 말한다. 交友須帶三分俠氣. 벗을 사귈 때에는 반드시 3할의 의협심을 가져야 하며 반드시 한 점의 순수한 본연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