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희 자매. 그녀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다. 그녀는 경남 진해의 어느 시골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는 힘겹게 딸을 키웠다. 진희의 어머니는 미용 가방을 들고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머릿일’을 하셨다. 새벽에 나가면 날이 캄캄해서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어머니를 진희는 하루 종일 마루 끝에 앉아 기다렸다.
늦은 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다 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는 딸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눈물 짓는 날이 많았다. 결국 어머니는 7살이 된 진희를 장애인 시설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진희는 어머니에 대한 섭섭함과 배신감이 밀려와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곧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적응에 들어갔다.
주일에 교회 가는 것과 월요일에 “밀알선교단”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외출이었다. 그런 틈새에서 진희 자매는 한 남자를 만난다. 친구의 권유로 인터넷 동호회 모임인 『장애우 첫걸음』이라는 봉사단체에 참석을 하게 된 것이다. 여러 사연을 쌓아가며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져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삶이 행복했다. 남편의 부모들이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남편은 2남 1녀의 장남이었다. 시골에서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사는 부모에게는 참으로 귀한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교회 장로, 어머니는 권사였다. 하지만 아들이 장애인과 결혼하는 것에는 극구 반대를 했다. 멀리 경북에서 ‘이틀이 멀다’하고 달려와 두 사람을 윽박질렀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낫을 들고 “둘 다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이성을 잃은 행동을 했고, 어머니는 하루 종일 방안에서 통곡만 했다.
나중에는 회유에 들어갔다. “지금이라도 내 아들을 포기하면 평생 공부를 시켜주고, 생계비를 대 주겠다”고. 장애의 몸을 가누기도 힘든 진희 자매가 견뎌내기에는 가혹한 시간이었다. 결국 부모와 자식의 연은 조금씩 끊어져 갔고 삶은 다시 평온을 찾아갔다. 행복했지만 가슴 한켠에는 부모에 대한 죄스러움과 자식으로서 ‘천륜을 저버렸다’는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한다. 남편은 청첩장을 들고 부모님이 계신 봉화로 향한다. 완강하기만 하던 아버지는 체념을 한 듯 아무 말 없이 아들을 앞에 앉혔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후 아버지가 입을 연다. “너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니?” “예” “그래 좋다. 대신 한 가지만 약속을 해라. 네가 선택한 만큼 그 사람을 평생 책임져라. 중간에 무슨 일이 있다고 버리는 날에는 내가 너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이후 진희 자매의 어머니와 시부모들의 상견례가 이어졌다. 어머니들은 만나자마자 두 손을 꼭 잡은 채 눈물만 흘리셨다. 시어머니는 “서러움의 눈물”을 친정어머니는 “죄스러움의 눈물”을.
결혼식 당일.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시부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예배당에는 교회 성도들, 친구들, 친정 친척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지만 시댁 자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역시, 안 오시는 구나’ 체념하고 있을 무렵에 관광버스 2대가 예식장에 도착한다. 시아버지가 진희 자매에게 다가간다. 며느리의 손을 꼭 잡아주며 “차가 밀려 늦게 도착하였다”고. “아가야, 미안하다”고 말을 건넨다. 결혼식은 그때부터 눈물바다를 이루었지만 양가의 축복 속에 꿈에 그리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세월이 흘러 진희 자매는 소중한 두 딸을 낳았다. 그렇게 반대하던 시부모에게도 기대하지 못했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얼마 전 남편이 사다 준 “스쿠터”는 진희 자매의 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돌아다니는 자유인이 되었다. 장애를 넘어선 한 남자의 사랑이 상처투성이로 살아온 한 여인을 살려냈다. 장애. 그것이 사랑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영혼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희 자매는 참사랑 앞에서 자유로운 한 마리 새로 다시 태어났다. 그녀는 고백한다. “나는 행복한 여자”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