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인생을 산다. 그 과정을 꽃에 비유하고 싶다. 일단 꽃은 어린싹부터 시작한다. 추운 겨울을 지나고 그 단단한 동토를 비집고 나오는 새싹의 생동감은 신비롭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은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샘솟게 한다. 지루하고 추웠던 겨울의 냉기를 잊게 만들어 준다. 그 싹은 무서운 속도로 자란다. 풀은 번져나가 이내 꽃을 피워낸다. 작다, 귀엽다. 오밀조밀하다.
자그마한 꽃들이 어우러져 꽃망울을 터뜨린다. 장관이다. 어떤 싹은 나무로 성장해 간다. 첫해의 꽃은 초라하지만 해가 더해갈수록 수목은 우거지고 화려한 꽃이 나뭇가지의 위상을 드러내 준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꽃을 보며 인상을 쓰는 사람도 없다. 그 꽃들이 사계절 피어나며, 지구 곳곳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인다.
화려하고 웅장한 꽃이 있다. 사람들의 눈길을 한눈에 사로잡는다. 자그마하지만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꽃도 있다. 색깔, 모양, 크기, 위치를 달리하며 꽃은 오늘도 피어나고 자기 자리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피는 꽃이 있다. 사람들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꽃의 아름다움에 심취한다. 들과 나지막한 산에서 피어나는 꽃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들의 군무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깊은 산속에 피어나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피었다 지는 꽃들도 있다. 아마 지저귀는 새들이, 지나가는 짐승들이 그 꽃에게 한마디씩 찬사의 말을 던져줄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고 바로 들어선 아이가 태어나고 3년 후 둘째가 세상에 나오고 우리 부부는 더욱 분주해 졌다. 그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렇게 아이들이 금방 자라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세월의 흐름이 빠를 줄이야. 예쁘고 앙증맞고 언제나 아빠, 엄마만 찾는 그 모습으로 영원히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짝을 만나고 훨훨 집을 떠나갔다. 북적대던 집안은 오로지 조용한 부부의 공간으로 변한 지 오래이다. 진정 자식은 손님인가?
그러다가 아가가 태어났다. 요사이 실로 손자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 그러면서 깨닫는 것은 한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지다는 것을 실감한다. 내 아이들을 키울 때는 너무도 바빴다. 새벽에 일어나 교회에 가면 심방하고 수요, 금요일은 예배 인도하고 집에 돌아와 잠든 아이들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손자는 달랐다. 노년의 내 삶에 한 생명이 찾아온 것을 날마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산다.
저만치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노인도 그런 아가의 모습으로 이 땅에 찾아왔다. 느끼지도 못한 채 인생은 깊어갔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화려하고 웅장한 꽃처럼 꿈을 성취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꼬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았지만 깊은 숲속에 피어난 꽃처럼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비교의식에서 자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송화는 채송화다. 백합이 아름답다고 해도 채송화의 매력을 과소평가하면 안된다. 우리는 다 열심히 살았다. 꼭 박수갈채를 받는 인생이 성공했다고 해서는 안 된다. 누구는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을까? 명성을 얻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내 자식이 나보다 월등한 생을 사는 것을 바라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내가 마음 먹은대로, 내가 땀 흘린 만큼 결과물이 창출되지 않는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가던 인생의 발걸음을 멈추고 반추의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분은 열정을 불사르면 된다. 나이가 들었다면 꽃이 향기를 풍기듯 나이에 걸맞는 스탭을 밟아야 한다. 체념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면 당당해야 한다. 사람의 생긴 모양이 다르듯, 꽃이 그 모양과 크기, 향기라 다르듯이 인생은 다양하고 다채로움에 그 매력이 있다. 오늘까지 최선을 다해 온 당신은 그래서 누구보다, 세상에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