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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5 20:10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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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남을 통해 인생은 인연을 맺고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모든 만남이 같은 깊이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만남이 있는 반면 영혼 깊은 곳까지 흔들어 놓는 만남이 있다. 오랜 세월 만났음에도 여전히 낯선 사람이 있다. 자주 만나고 함께 웃고 대화를 나누지만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들어가 보지 못한 경우다. 

 

 반대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열리는 사람이 있다. 이상하리만큼 편안하고 오래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는 느낌이 있다. 상처를 조심스럽게 받아주는 사람 앞에서는 속마음까지 열리게 된다. 그때 깨닫는다. 만남의 깊이는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부부도 그렇다. “일심동체”라 하지만 한집에 살아도 서로 다른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사랑은 시간이 지나며 책임으로 바뀐다. 그러다가 삶을 함께 버티는 동료가 되기도 한다. 공원에서 다정히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를 본다. 자연스럽게 실눈을 뜨고 두분을 보게 된다. 그들의 뒷모습에 긴 세월이 담겨 있다. 때로는 불편한 몸을 지닌 배우자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 안에서 깨닫는다. 부부란 감정이 아니라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관계라는 사실이다.

 

 관계의 핵심은 대화다. 부부가 된지 오랜 사이임에도 집중하며 대화하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지난번에 말했잖아.” “언제?” 어느 순간 대화는 줄고 전화 톡이 오고 간다. 편리하지만 마음은 멀어진다. 사람은 정보가 아니라 체온으로 연결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내 맘대로 되던가? 정성껏 키워도 기대와는 다른 길을 간다. 그래서 “절망 자녀, 희망 자녀”라는 말이 나왔다. “절대 망하지 않는 자녀, 희한하게 망하지 않는 자녀” 인생은 결국 해석이다. 같은 현실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전쟁 이후의 가난 속에서 태어났다. 한 교실에 수십 명이 빽빽이 앉아 공부했고 대학 시절은 최루가스로 얼룩졌다. 민주화의 격랑을 지나야 했고 겨우 삶의 자리를 잡을 때 IMF라는 거대한 위기를 만났다. 숨 막히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로 오늘을 견디고 있다. 그것 자체가 은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자녀를 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 “Let it be.” 포기가 아니라 신뢰이다. 부모가 자녀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남았듯 자녀도 자기 방식으로 길을 찾아간다. 겉으로는 미숙해 보여도 그 안에는 생각보다 강한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은 만나야 변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결혼도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상대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성장과 상처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치심을 만나지 못하면 존재로 나아가는 길은 없다. 슬픔을 만나지 못하면 정화할 길은 없다. 두려움을 만나지 못하면 새로워질 길이 없다. 분노를 만나주지 않고서는 창조로 나아갈 길이 없다. 변화에는 압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쌀이 압력을 받아 맛난 밥이 되듯이 지적 동의나 정보 수준의 앎이 아닌 몸과 영으로 만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휘젓는 거룩한 작업이 필요하다. 

 

 삶의 압력은 피할 수 없다. 사람은 삶의 압력을 통해 성숙한다. 중요한 것은 그 압력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이다. 그래서 사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 변화된다. 혼자서는 자신을 끝까지 볼 수 없다. 누군가와 부딪히고 흔들리고 이해받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드러난다. 그 과정이 때로는 아프지만 그 아픔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깊이 만나면 사람이 달리 보인다. 미움은 이해로 바뀌고 이해는 다시 사랑으로 이어진다. 관계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통과하는 과정이다. 문득 이런 시구가 떠오른다. “너 다해서 살지 못하면 고향 못 들어가.” 결국 인생은 자신을 끝까지 살아내는 여정이다. 만나야 한다. 사람을 만나고 아픔을 만나고 자기 자신을 만나야 한다. 더 깊이 더 진실하게 만날 때 인생은 비로소 한 편의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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