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장애인을 보는 시각은 다양한 것 같다. 나보다 못한 사람 정도로 보는 것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장애인을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집안에 장애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여러 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하고 나면 친근하게 다가오는 분들이 있다. “저희 오빠도 장애인이예요, 제 동생이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건네 올 때에 마주 잡는 손에 힘이 주어진다.
워싱턴 메릴랜드 ‘세계로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중에 한 휠체어 장애인이 다가왔다. 중년의 얼굴은 아주 밝았다. 허리를 굽혀 악수를 나누며 “힘드셨지요?” 말을 건네었다. “목사님 제가 방송실에 있느라 이제야 내려왔습니다. 오늘 설교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마주치는 눈동자에서 장애인들끼리만 느끼는 친근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만나면 편안 해 진다. 머나먼 타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것은 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밀알이 좋은 것은 장애를 가진 분들이 설움과 아픔을 안고 함께 모이기 때문이다. 기나긴 세월 동안 장애를 안고 사는 나는 어디서나 장애인들을 만나면 편안함을 느낀다. 장애인을 만나면 할 말도 많다.
장애인들을 보는 시각이 아주 부정적인 사람들이 간혹 있다. 마치 외계인처럼 취급하는 사람부터 징그러운 벌레를 보듯이 인상을 찡그리기도 한다. 우리는 ‘정상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고 통칭한다. 사람은 누구나 장애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불의의 사고부터 나이가 들어 노환으로 장애를 입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장애인은 나와 상관없는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다. 장애인은 분명히 내 이웃이다.
사람들은 잘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조금은 모자란 듯한 사람을 만나면 위안이 되는가보다. 예나 지금이나 소위 “바보” 연기로 스타덤에 오른 예능인들이 많다. 특히 코미디언중에 “배삼룡”씨부터 “심형래”가 대표적인 연예인이다. 그들이 흉내 내는 분들은 다 “지적 장애인(정신지체)”이다. 그들의 연기를 보며 사람들은 박장대소한다. 장애인들을 웃음의 대상으로 비하하고 짖궂게 놀려대는 장면은 얼마나 잔인한 짓인가? 한때는 ‘병신춤“으로 유명해진 분도 있었다.
맥클린장로교회(VA)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이다. 설교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렀다. 마주친 성도가 갑자기 앞을 가로막으며 입을 열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당황하며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이십니까?” 대답한다. “목사님, 제가 학창시절에 제 짝이 장애인이었는데 많이 놀리고 괴롭혔습니다. 목사님을 뵙고 설교를 듣다보니 그 친구가 생각나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집사님, 정말 회개하셔야 하겠네요. 그 친구가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말이 튀어나왔다. 직선적인 말에 상대는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집사님, 이제라도 장애인들을 만나면 그 친구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십시오. 오래전 이야기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구요” 그 말에 표정이 풀리더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주 손을 잡았다. 답해오는 그분이 참 순박해 보였다.
장난으로 연못에 돌을 던지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는 치명적이 될 수 있다. 자신은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장애인들을 무시하고 따돌린다. 나는 2살 때에 소아마비로 지체장애인 되었다. 하교길에 지나가는 동리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견디기 힘든 놀림을 받았다. 걸음걸이를 흉내내며 아이들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그 순간에 느꼈던 수치심과 고통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등뒤를 서늘하게 만든다.
이 나약한 자에게 하나님은 “밀알선교단”을 만나게 하시고 그 사역의 중심에 서도록 강권적으로 인도해 주셨다. 지적장애인들은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간다.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선진국이다. 지능이 낮고 ‘생활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해서는 안된다. 장애인들을 감싸주며 따뜻한 동행을 해 주는 사람들이 늘어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