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하자 학생부에서 자그마한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내 사진과 함께 <지체부자유자 증명서>라고 써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 카드가 나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 시절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지체부자유자’ 혹은 ‘몸이 불편한 사람’으로 불렀다. 더 심한 표현은 이미 다들 알고 있다.
장애자라는 말이 처음 나왔다. 하지만 ‘자(者)’가 사람을 낮춰 부르는 느낌을 준다는 지적이 있었다. 1989년부터 공식 명칭을 “장애인”이라고 부르게 된다. 사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인(人)’ 사용하게 된 것이다. 한때 장애우(友)라고도 했지만 나이가 많은 분을 지칭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제는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권장하고 있다.
김지우. 그녀는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운영하는 작가이다. 뇌병변장애를 가진 인권 크리에이터이자 인플루언서로 휠체어를 타는 일상과 사회의 시선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전하며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있다. 장애 여성으로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는 톡 쏘는 탄산수처럼 시원하면서도 오래도록 마음에 울림을 준다.
사람들은 장애를 이야기할 때 쉽게 동정과 연민, 또는 극복이라는 익숙한 틀 안에 가두곤 한다. 나 역시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던 소리가 혀를 차는 소리였다. 특히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라는 말을 덧붙이곤 했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만나면 먼저 안쓰러워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한 반응인 줄 알고 살아간다.
미국에 살면서 깨닫는 것은 미국인들은 장애를 비하하거나 특별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하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고 문을 잡아 주며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준다. 특별한 친절이라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예의처럼 행동한다.
반면 가끔 마주치는 동양 사람들 가운데는 문을 잡아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한번은 마트에서 앞사람을 따라 들어가다가 닫히는 문에 머리를 크게 다칠 뻔한 적도 있었다. 문화가 무섭다. 장애인의 대한 인식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 문화는 사람을 만든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그 사회의 문화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곧 그 사회의 품격이며 국격이다.
김지우는 늘 휠체어와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그의 삶은 결코 회색빛이 아니다. 그는 휠체어를 아름답게 꾸미는 ‘휠꾸’ 프로젝트를 통해 한복과 꽃가마, 웨딩드레스 등 다양한 콘셉트의 화보를 선보였다. 휠체어는 더 이상 장애의 상징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무대가 된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짧은 영상에서도 자신의 장애를 숨기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쾌하고 당당하게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경계를 뛰어넘으며 장애인의 일상이 얼마나 풍성하고 생생한지를 보여 준다.
일본과 대만, 홍콩등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그 여행은 단순한 휴가가 아니라 각나라의 이동권을 직접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일본 공항에서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에스컬레이터 계단이 휠체어용 발판으로 바뀌었고 버스 기사들은 휠체어를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경사로를 내려주었다. 대만 지하철에서는 한 객차 안에 휠체어 이용자가 세 명이나 함께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만큼 거리로 나오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장애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와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 모두 지금은 '미(未)장애인'일 뿐이다. 노화와 질병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고 앞에서 누구나 장애를 경험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장애는 결국 우리 모두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오드리 로드는 말했다. “우리의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침묵이다.” 장애인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세상. 휠체어가 어느곳에서나 막힘없이 구를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추구하며 오늘도 밀알은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휠체어의 바퀴도 희망을 싣고 힘차게 구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