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생각만으로 인생을 완성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함께 걸어갈 동반자를 허락하셨다. 부부는 단순히 한집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인생을 함께 짊어지고 걸어가는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에게 “돕는 배필”로 보내주신다.
돕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약점을 커버해 줄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세상에는 3가지 타입의 사람이 있다. 손익을 계산하지 않고 베푸는 ‘기버(Giver)’, 상대방으로 부터 이득을 취하기만 하려는 ‘테이커(Taker)’, 준 만큼 받아야 하는 ‘매처’(Matcher)이다. 부부는 모든 것을 떠나 서로 보충하며 살아야 행복해 진다.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부부간의 대화이다. 우스개 소리처럼 들리지만 식당에 가서 부부인지 묘한 관계(?)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너무도 쉽다. 부부는 묵묵히 밥만 먹고 간다. 흔히 목격되는 장면이다. 결혼의 햇수가 깊어지면 이상하게 부부는 대화가 현저히 줄어든다. 무덤덤해 진다. 연애할 때는 할 말이 그리 많았는데.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는데 말이다.
부부는 자신의 일에 대하여, 앞으로의 계획도 모두 이야기해야 한다. 아내가 남편의 직업이나 사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듯한 아내의 한마디가 남편에게 결정적인 조언이 될 수 있다.
부부간의 문제는 통보하는 경우이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따라오기만 해” 남편이 직장에서 성공하면 아내도 함께 기뻐한다. 남편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아내 역시 그 결과에 영향을 받는다. 남편의 인생과 아내의 인생은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일심동체라고 하는 것이다.
부부가 되는 과정은 신비스럽다. 전혀 몰랐던 남녀가 희한한 인연으로 만나 사랑을 나눈다. 서로 함께 있고 싶어서, 저 사람과 영원히 있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 결단하고 부부가 된다. 그때부터 한 이불을 덮고, 한 식탁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홀가분한 복장을 해도 편안한 사이가 된다. 아이가 태어나며 자연스럽게 아빠, 엄마가 된다. 신기하지 않은가? 이처럼 숭고하고 아름다운 만남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간곡히 강조한다. 여자들은 반드시 교회를 다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누구 엄마’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미혼일 때 그렇게 자주 불려지던 내 이름이 사라지는 서러움을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새롭게 되살아 난다. ○○ 성도님, 집사님, ○○권사님!
남편이 경계해야 하는 생각은 당연이다. ‘다 그렇게 사는 것 아닌가? 나와 결혼을 하였으면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부터 부부는 어그러지게 된다. 당연이 아니라 기적이라고, 은총이라고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분명히 남편은 성공하고 있는데 아내는 외로워질 수 있다. 남편에게는 자랑스러운 성공이지만 아내에게는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성공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성공이 부부를 하나로 묶을까? 돈이 많아진다고 사랑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집에 산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사회적인 명예가 높아진다고 부부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세한 일까지 나누는 부부가 진짜 돕는 배필이다. 대화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바라는 배필은 어느 순간 피곤 해 진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돕는 배필”이어야 한다. 인생은 길고 때로는 험하다. 혼자 걸으면 지치지만 함께 걸으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 서로를 소유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관계가 부부이다. 오늘도 아내의 손을 잡아야 한다. “당신과 함께여서 내 인생이 참 감사합니다.” 고백해야 한다. 아내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