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 감독은 천재이다. 어떻게 말을 소재로 이런 감동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전쟁의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지금도 지구촌은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람들은 전쟁을 승리와 패배의 역사로 기억한다. 따라서 위대한 장군과 영웅의 이름을 기록한다. 그러나 전쟁을 통해 가장 깊은 상처를 입는 것은 언제나 이름 없는 민초들이다.
영화 〈War Horse〉(2012년)는 바로 그 이름 없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 ‘조이’는 한 마리의 말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한 마리에 말일 뿐이다. 누구를 미워할 이유도, 전쟁에서 승리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 곁에서 살아가고 싶어 하는 평범한 생명일 뿐이다.
그러나 전쟁은 조이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농장에서 앨버트와 함께 살아가던 조이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군대에 팔려 간다. 앨버트에게 조이는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친구였고 가족이었으며 삶의 어려움을 함께 견디는 동반자였다. 하지만 전쟁은 두 존재를 너무나 쉽게 갈라놓는다. 인생을 돌아보자. 언제나 함께 있을 것 같았던 친구가 있었다. 동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도 모르며 나름대로 생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다.
인생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리는 시간이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이별과 질병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과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그렇다. 조이에게 전쟁은 바로 그런 운명이었다. 인간들의 싸움 속에서 짐을 끌고 포탄을 피해 달리며 죽음과 공포를 견뎌야 했다.
이 모습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왜 인간은 자신의 갈등 때문에 죄 없는 생명들까지 고통받게 하는가? 전쟁은 언제나 거대한 명분으로 시작된다. 전쟁터에서는 적과 아군으로 나뉘지만 눈물을 흘리는 순간 인간의 슬픔은 서로 다르지 않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조이가 철조망에 걸리는 순간이다. 전쟁터를 달리던 조이는 철조망에 몸이 얽혀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된다. 피를 흘리며 죽음의 공포 속에 갇힌 조이를 바라본 것은 서로 총을 겨누고 있던 영국군과 독일군이었다. 말을 구하고 싶어하는 양측 두 병사가 과감하게 조이 곁으로 다가선다. 철조망을 끊어내고 가까스로 말을 구하는 장면은 긴박하면서도 압권이다.
전쟁은 인간에게 국경을 가르친다. 편을 가른다. 서로를 죽여야만 사는 전쟁은 끔찍하다. 그러나 고통받는 생명을 바라보는 순간 그 마음속의 국경은 잠시 사라진다. 어쩌면 평화는 내 앞에서 고통받는 존재를 외면하지 않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은 전쟁을 멈추게 한다.
말 ‘조이’와 앨버트의 관계가 영화의 가장 큰 감동이다. 전쟁은 두 존재를 갈라 놓았지만 서로에 대한 기억까지 빼앗아 갈 수는 없었다. 진정한 사랑은 거리와 시간을 초월한다. 얼마나 오래 함께했는가보다 서로의 삶에 얼마나 깊이 남았는가가 더 소중한 것이다. 결국 만나고야마는 그들의 운명에 박수를 보내게 한다.
〈워 호스〉는 우리에게 때로는 마음속의 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메시지를 전한다. 자존심,
편견, 미움, 분노라는 무기. 그리고 오래된 상처라는 무기를 말이다. 나도 모르게 가득 채운 무기를 내려놓을 때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소년과 말이 다시 만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다. 기억하는 것이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때로 철조망에 걸린 조이처럼 절박한 순간을 마주하는 것이 인생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문제는 풀리지 않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있다. 그렇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버텨보라! 절망 속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도움과 사랑이 찾아올 수 있다.
영화 〈워 호스〉는 한 마리의 말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사랑이 귀하다. 인간이 끝까지 인간다움을 지켜가는 한, 희망 역시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