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74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강물.jpg

 

 

  나는 어린 시절 남한강 줄기에서 자랐다. 강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과 느낌을 달리한다. 언덕 위에서 볼 때는 마냥 푸르고 잔잔해 보이지만 모래사장에 내려서면 잔잔히 출렁이는 물결이 건너편을 저만치 밀어낸다. 물가에서 보면 만만해 보이지만 일단 몸을 담그고 헤엄을 치기 시작하면 강폭은 넓어져만 간다. 아침 햇살에 반사되는 강물은 마치 물고기들의 향연처럼 보이고 한낮에 강물은 청춘처럼 푸르르다. 오후가 되면 짙은 감청색으로 변해가다가 노을이 지면 불꽃처럼 붉게 물들어 온다. 예쁘고 매끄러운 돌을 골라 비스듬이 던지면 지나가며 예쁜 포물선을 마냥 그려낸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샘물로 시작되었으리라. 샘물이 모여 내를 이루고 강물이 되어 묵직한 침묵 속에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강가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고 이름모를 풀잎을 낙아채 입에 문 채 자갈 위에 앉으면 바람 소리를 타고 들려오는 청아한 새들의 노래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때로는 두팔을 펴고 누운채 하늘을 본다. 저만치 떠가는 구름, 바쁘게 날아가는 비행기,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의 넉넉함이 어린 내 가슴에 동화처럼 스며들었다. 끊임없이 흘러들어오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세월도 쉼 없이 흘러 익숙해진 2020년을 저만치 흘려보내려 하고 있다.

 

  불혹의 나이가 훨씬 넘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그렇다. 언제까지 청춘으로 살 줄 알았다. 서른 살, 나는 아내와 결혼을 했다. 이듬해 태어난 아가. 나를 닮은 새생명과 함께 오로지 목회에 전념했다. 신학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실로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내게 서른은 어른이 되는 길목이었다. 나는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이 제일 부럽다. 하지만 세상을 마음껏 즐겼던 10~20대 초반의 삶이 결코 후회스럽지는 않다. 부끄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세월이 더디흐른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직장도, 갈 곳도 없어 오로지 기타와 라디오를 친구삼아 지내던 20대 초반, 세월은 안가는 듯 속도가 나질 않았다. 더벅머리를 하고 낮에는 다방에서 턴테이블을 돌리고,(DJ) 밤에는 언더그라운드에서 노래를 부르며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던 20대 초반. 내 시계는 멈춰있었다. 도대체 내가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앞이 보이질 않았다. 복음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시던 멘토목사님의 강력한 권고로 신학을 시작하면서 앞만 보고 달리며 세월의 속도가 붙었다.

 

  목사가 된지 어느새 35. 일반목회와 장애인목회를 하다보니 옛어른들이 말하듯 나이만큼 세월이 총알같이 달려가고 있다. 2020. 기대가 컸다. 숫자가 그랬고 내게 주어진 책무의 무게가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적어도 3월초까지는 그 기대대로 흘러가는 듯 하였다. 하지만 불어닥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그 모든 꿈들을 처참하게 짓밟아버렸다. 아무도 만날 수 없고, 아무 곳에도, 아무 음식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희한한 세상이 되었다. 한동안 세월이 정지한듯한 적막감이 내 뇌를 하얗게 만들었다. 하지만 세월은 쉬지 않고 있었다. 봄인가 했더니, 여름, 가을이 왔나 했더니 눈발이 쏟아지고 2020년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세월은 사람들의 느낌과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흐르고 있다. 바람처럼 들어와 바람따라 나간다. 세월따라 너도가고 나도 간다. 한세대가 가고 한세대가 온다. 학문은 배우고 익히면 되지만 연륜은 반드시 밥그릇을 비워내야 한다. 나이는 거저 먹은 것이 아니다. 손이 커도 베풀 줄 모른다면 미덕의 수치요. 발이 넓어도 머무를 곳이 없다면 부덕의 소치이다. 세월에 걸맞는 멋진 생각, 인격의 사람이 되자.

 

 한해동안 매주 글을 읽어준 애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듀, 2020!

 


  1. 군불

    새벽녘에 잠이 깨었다. 무서운 꿈을 꾼 것도 아닌데 갑자기 단잠이 달아나 버렸다. 추적거리며 내리는 겨울비가 금방 잠이 깬 내 의식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불현듯 고향 사랑방 아궁이가 화면처럼 다가왔다. 어린 시절, 나는 방학만 하면 고향으로 향했다. ...
    Views274
    Read More
  2. 시간을 “먹는다”와 “늙는다”

    새해가 밝은지 8일 째다. 비상시국이기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 새해맞이를 하였다. 이럴때는 내가 목사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 성찬식도 거행했다. “지난 한해동안 성찬을 전혀 대하지 못했다.”는 딸의 말이 마음에 걸렸...
    Views421
    Read More
  3. 2021년 첫칼럼 / 마라에서 엘림으로!

    새해가 밝았다. 듣도 보도 못한 역병이 창궐하며 지난해는 암흑으로 물들여졌었다. 사람들은 물론이요, 어느 장소, 물건을 가까이 할 수 없는 희한한 세월을 보냈다.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를 절박한 상황이 새해라는 희망...
    Views512
    Read More
  4. 세월은 쉬어가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 남한강 줄기에서 자랐다. 강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과 느낌을 달리한다. 언덕 위에서 볼 때는 마냥 푸르고 잔잔해 보이지만 모래사장에 내려서면 잔잔히 출렁이는 물결이 건너편을 저만치 밀어낸다. 물가에서 보면 만만해 보이지만 일단 몸...
    Views744
    Read More
  5. 테스형

    지난 추석 KBS는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라는 야심 찬 기획을 세운다. 무려 11년 동안 소식이 없던 그가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이슈였다. 이혼과 조폭 연루설로 인해 힘들어하던 시기 대중 앞에서 “바지를 내리겠다”고 외치며 ...
    Views819
    Read More
  6. It is not your fault!

    인생이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평생 그렇게 바쁘게 돌아치며 살고 있을까? 분명히 뭔가 잡으려고 그렇게 달려가는데 나중에는 ‘허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것을 원 없이 누렸던 솔로몬은 유언처럼 남긴 전도서에서 ...
    Views916
    Read More
  7. 지연이의 효심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도 고통스럽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가족들의 아픔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우연히 마트에서 손에 약봉지를 든 지인과 마주쳤다. “누가 아파요?” “제 아내가 루게릭병으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
    Views1161
    Read More
  8. 1회용

    바야흐로 1회용품이 상용화된 시대이다. 컵부터 시작하여 세면용품, 밴드, 도시락, 가운, 렌즈, 면도기, 카메라, 기저귀, 주사기, 다양한 모양의 그릇까지 요즘에는 일회용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 실로 1회용품 홍수시대이다. 1회용품 중에는 한번 쓰고 ...
    Views1250
    Read More
  9. 라떼는 말이야~

    나는 라떼를 좋아한다. 블랙은 매번 도전을 해 보지만 취향이 아니고 아직은 촌스러워서 달달한 커피가 좋다.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갈아서 만드는 라떼는 부드럽고 단맛이 혀 끝에 닿으며 기분을 up 시켜 주어 좋다. 지인들은 첨가물 없이 커피를 즐기며 한마...
    Views1304
    Read More
  10. 미묘한 결혼생활

    가정은 소중하다. 천지창조 시 하나님은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만드셨다. 그 속에는 가정이 첫 교회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참교회의 모습을 계시하셨고 파라다이스를 경험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신 후 “독처하는 것...
    Views1379
    Read More
  11. 그것만이 내 세상

    우리 밀알선교단에는 다수의 장애인들과 장애아동들이 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아울러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것도 삶이 평탄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18년 전, 밀알선교단 단장으로 부임하였을때에 전신마비 장애인이 ...
    Views1464
    Read More
  12. 그 애와 나랑은

    갑자기 그 애가 생각났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진학의 꿈을 향해 달리던 그때, 그 애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전근을 자주 다니던 아버지(경찰)는 4살 위 누이와 자취를 하게 했다. 그 시대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던...
    Views1470
    Read More
  13. 창문과 거울

    집의 경관을 창문이 좌우한다. 창문의 모양과 방향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장면은 시야로 흡수되고 느낌을 풍성히 움직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통유리가 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 창을 통해 시원하게 펼쳐진 정원을 바라보는 것이 ...
    Views1505
    Read More
  14. 나무야, 나무야

    초등학교 1학년. 당시 아버지는 경기도 양평 지제(지평)지서에 근무중이셨다. 이제 겨우 입학을 하고 학교생활에 흥미를 가지게 될 5월초였다. 방과 후 집에 돌아와 친구랑 자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셨다. 그 시간이면 한창 근무할 때인...
    Views1510
    Read More
  15. 컵라면 하나 때문에 파혼

    팬데믹으로 인해 결혼식을 당초 예정일보다 5개월 늦게 치르게 된 예비 신부와 신랑. 결혼식 한 달을 앞두고 두 사람은 신혼집에 거주하면서 가구와 짐을 정리하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에 신혼집을 찾은 예비 신부가 집 정리를 끝낸 시간은 자...
    Views1620
    Read More
  16. 우리 애가 장애래, 정말 낳을 거야?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것은 모든 부부의 바램이다. 임신소식을 접하며 당사자 부부는 물론이요,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이 다 축하하며 즐거워한다. 그런데 태아에게 장애가 발견되었을때에 부부는 당황하게 된다. ‘낳아야 하나? 아니면 다른 선택을 ...
    Views1649
    Read More
  17. 반 고흐의 자화상

    누구나 숨가쁘게 삶을 달려가다가 어느 한순간 묻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를 쓰며 살아왔을까?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화가들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자화상을 그린다. 뒤...
    Views1706
    Read More
  18. 버거운 이민의 삶

    교과서에서 처음 배운 미국, 스펙터클 한 허리우드 영화, ‘나성에 가면’이라는 노래로 그리던 L.A. ‘평생 한번 가볼 수나 있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뒹굴던 친구가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나버린 날, 강주와 나는 자취방에서 ...
    Views1877
    Read More
  19. 기찻길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자란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접하는 것이 있다.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면 푸른 바다와 그 위를 유유히 가르며 다니는 크고 작은 배들. 비행장 근처에 살았다면 헬리콥터로부터 갖가지 모양과 크기에 비행기를 보며 살게 된다. 나...
    Views2021
    Read More
  20. “안돼” 코로나가 만든 돌봄 감옥

    코로나 19-바이러스가 덮치면서 우리 밀알선교단은 물론이요, 장애학교, 특수기관까지 문을 열지 못함으로 장애아동을 둔 가정은 날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복지관과 보호센터가 문을 닫은 몇 달간 발달장애인 돌봄 공백이 생기면서 ...
    Views218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7 Next
/ 27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