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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6 12:21

엄마와 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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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jpg

 

 

  엄마는 경기도 포천 명덕리에서 태어나셨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경우가 바른 엄마의 성품은 시대가 어려운 때이지만 조금은 여유가 있는 외가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가에 산세는 수려했다. 우아한 뒷산의 정취로부터 산을 휘감아 돌아치는 시냇물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누에를 많이 키웠다. 외가도 그중에 하나였다. 봄이 되면 뽕을 따느라 분주한 아낙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친구와 몰래 잠입해 들어간 잠사(蠶舍)의 모습은 신기하기만 하였다.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냄새와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는 마치 잔잔한 봄비같았다. 누에가 성장하면 소낙비가 내리는 듯 소리는 강렬해져 갔다.

 

  나이가 들어가며 엄마는 홍시를 즐겨드셨다. 아버지는 치아가 튼튼한 반면, 엄마는 그렇지 못해 나중에는 틀니를 해 넣으셔야만 하였다. 그래서인지 유독 엄마는 홍시를 좋아했다. 한국의 늦가을은 홍시가 장식한다. 무성하던 잎파리가 다 떨어지고 나면 탐스럽고 뽀얀 분홍색의 감만 가지 끝에 남게 된다. 어느 때던가? 대둔산 골짜기를 차로 달리다 마주친 감나무의 도열에 탄성을 지른 적이 있다. 청명한 가을하늘과 감들이 조화를 이루며 가을의 정취를 더하고 있었다.

 

  서종 초등학교 5학년 가을이었다. 학교에서 군 대회에 나갈 글짓기 팀을 구성했다. 문예반에 소속한 아이들이 다들 꿈을 가지고 도전을 했지만 다행스럽게 내가 대표로 뽑히게 되었다. 문예반 지도 선생님의 인도로 갈대가 우거진 북한강변에서 매일 하늘을 바라보며 글을 써댔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에 가을하늘과 강변풍경은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당일 아침 일찍 인솔교사와 그림 그리기 대표 여학생과 함께 양평행 버스에 올랐다. 경연이 벌어지는 교실에 들어가니 각 면 소재 학교를 대표하는 아이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책상에 앉아있었다.

 

  드디어 감독이 들어서고 글제를 표 들었다. “이었다. 나는 무언가의 씐 듯 글을 써내려갔다. 까마득한 어린 시절이지만 그때 쓴 글 내용을 기억한다. ‘철수는 내일 학교를 오가며 감이 익어가는 모습을 본다. 어느날 하도 감이 먹고 싶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장돌을 집어 감나무를 향해 던진다. 아뿔싸! 감은 안 떨어지고 그 집 장독대에 올려놓은 항아리에 날아가 요절을 낸다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그날 장원을 받아 그토록 갖고 싶었던 <왕자표 크레파스 12>을 상으로 받는다. 그러고 보니 그때부터 글솜씨는 있었던 모양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누구나 감나무 끝에 대롱대롱 매어달린 빠알간 홍시의 추억이 있다. 긴 대나무 작대기 끝에 철사를 동그랗게 만들어 홍시를 따던 기억도 새로울 것이다. 감꼭지만 따고는 말캉한 속을 그대로 쪼옥 빨아먹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엄마는 가을이면 당신이 잘 아시는 지식에 따라 감을 사다 홍시가 되도록 두었다가 떫은 기가 사라진 때를 잘 맞추어 잡수시곤 했다. 홍시를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76세 초여름 작별의 인사도 없이 떠나버리셨다. 생각지도 못했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친구 영진 어머니도 홍시를 그리 좋아하셨단다. 노쇠하여 양로원에 들어가신 어머니. 기력이 쇠하여 가던 어머니를 위해 그리 좋아하는 홍시를 사갔는데 침대에 누워계시던 어머니가 홍시를 보시더니 눈이 번쩍 뜨이셨단다. 숟가락으로 떠 먹여드리는 홍시를,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이 맛있다. 아이 맛있다하면서 다 드시더란다. 그게 마지막 엄마의 모습이었다.

 

 한 시인은 삶이 아무리 떫어도 홍시처럼 익어간다고 했다. 떫은 감이 홍시로 서서히 무르익어 가는 과정이 한 인간의 성숙이나 삶의 원숙함으로 그의 눈에 비췬 것이다. 맞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나훈아의 홍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깊어가는 가을. 홍시를 보며 엄마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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