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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8 20:32

하숙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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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숙집.jpg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고 했던가? 내가 고교시절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학생들이 꽤 많았다. 집안 형편이 좋은 아이는 하숙을 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자취를 했다. 하숙집에는 많은 학생들이 함께 기거하기에 예절도 필요하고, 드나드는 시간이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자취를 하는 아이들보다 아이들의 행색은 항상 깔끔했다. 하숙비가 비싸기는 해도 그들에게서는 모든 면에 여유로움이 풍겨났다.

 

  홍릉교회에 출석을 하며 눈에 띈 것이 하숙집이었다. 당시 홍릉에는 과거 일본 사람들의 관사가 자리하던 곳이라 일본식 주택이 즐비했다. 2층은 다다미방라고 해서 두툼한 천을 겹으로 깔아 놓고 그 위에 지직(짚으로 엮은 깔판)을 덮은 것이 특징이었다. 친구 이강주는 본가가 경기도 금촌이었고 교회 바로 앞이 그의 하숙집이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우연히 그의 하숙집에 찾게 되었다. 강주와 집에 들어서자 주인집 아줌마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인자한 인상을 가지신 아줌마는 홍릉교회 여 집사님이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딸 셋이 있는데 큰딸은 직장 생활을 위해 회사 근처에 살고 있었고, 두 딸과 함께 하숙집을 경영하고 있었다. 둘째는 우리와 같은 학년이었고, 막내는 아직 어린 여중생이었다. 난 그때 충청도 사투리가 얼마나 정겨운지를 처음 듣고 느꼈다. 깔끔한 다다미 방과 정돈된 책상이 강주를 다시 보게 했다. 2층 창호지로 된 문을 여니 교회와 동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시원해 왔다. 이런 곳에서는 공부가 절로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당시 공부방이 없는 나로서는 강주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강주의 룸메이트는 근처 외국어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예리한 인상이어서 처음에는 경계를 하였지만 그는 장애가 있는 나를 보고선 여러 가지를 물으며 자상하게 다가왔다. 강주가 공부를 할 때면 곁에서 지도도 해준다고 했다. 하숙이라고 하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영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집 딸과 하숙생이 엮이는 사연은 강주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둘째 딸 선희는 우리와 금방 어울렸다. 같은 학년, 같은 교회 학생회였기도 했지만 선희는 거의 남자 성격이었다. 시원시원하고 얼굴의 선이 굵었다. 예쁘다는 인상보다는 잘생긴 여학생이었다. 조금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때리면서 웃어대기에 선희와 함께 있다 보면 부상당할 위험(?)이 항상 있었다. 선희 덕에 괜찮은 여학생들과도 자주 어울릴 수 있었음이 그 당시 행운이라면 행운이랄까? 따라서 어쩌다 강주 덕에 그의 하숙 집에서 식사를 할 때면 친구들은 때아닌 진수성찬을 대하는 횡재(?)를 하기도 하였다.

 

  하숙집에 둘러앉아 내가 이야기를 할 때면 주인 아줌마는 너무도 재미있게 들어주며 반응을 했다. 장애가 있는 내가 애처로웠는지 항상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이 그때는 부담스럽기도 하였다. 언제까지나 머무를 것만 같았던 고교 시절이 끝나고 친구들은 대학진학으로, 군대로 흩어졌다. 강주의 하숙 생활도 끝나고 세월은 흘러갔다.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을 듣고 나는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강주가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는데 하숙집 선희가 아니라 그의 동생 광희였다. 우리가 고교 시절에 광희는 어린 여중생이었다. 나이가 드니 나이 차이가 별것 아니지만 그때는 몇 학년 차이가 엄청났었다.

 

 결혼을 하면 선희랑 할 줄 알았는데 그 어리던 광희와 부부가 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렇게 강주는 우리 친구 중에 1등으로 결혼을 하여 지금도 광희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사람의 인연은 도시 모를 일이다. 하숙집 아줌마 유숙례 권사님. 그분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한국에서 목회 할때에도 든든한 후원자이셨고, 지금도 먼 타국 땅에 있는 나를 위해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는 기도의 어머니이다. 내가 담임하는 교회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봉투를 들고 찾아와 축하해 주셨다. 성도들 앞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이 목사님은 훌륭하게 될 줄 알았다고 하시며 웃으시던 주름진 얼굴의 미소가 기억이 생생하다. 하숙집의 정겨움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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