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5.11.25 03:51

달빛 3/9/2011

조회 수 7616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b0002697.jpg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집안에 들어서려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 휘영청 밝은 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 오늘이 보름이구나!” 크고 둥그런 달이 하늘 중앙에 떠있다. 똑같은 달인데 머나먼 타국에서 바라보는 달은 그 느낌이 다르다. 벌써 오랜 세월 달을 만나고 달을 바라보며 꿈을 꾸었는데 그 달을 바라보고 있어도 옛정감이 살아나지 않는 것은 내가 변질된 때문일까? 역시 달은 고요 속에서 바라보아야 정감이 넘치는가보다. 하얀 눈이 쌓인 추운 겨울밤에 시골 들판을 “뽀드득”소리를 내며 걷다가 잠시 멈추어 서서 달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그때 만난 달은 ‘신비’ 그 자체였다.

전기가 없이 자라던 어린 시절에는 둥근 보름달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다른 때는 “귀신이 나온다.”고 겁을 먹고 지나던 곳도 달빛이 비취이면 포부도 당당하게 거들먹거리며 걸어간다. 다리가 불편한 나를 어머니는 자주 업고 다니셨다. 어두운 밤길에는 어머니 등이 나의 유일한 자가용이었다. 엄마 등에서 바라보는 달은 더없이 정겨웠다. 그런데 이상하다. 달이 나를 자꾸 따라온다. 천천히 걸으면 그 속도에 맞추어서 따라오고 빨리 걸으면 달도 빨리 달려온다. “엄마, 달이 나를 쫓아오네! 엄마가 빨리 걸으면 빨리 따라오고 천천히 걸으면 속도가 느려진다.” “달이 재철이를 좋아하는가보다.” 나는 그 말이 진짜인줄 알고 엄마 등을 두드리며 웃었다.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7살이 되던 정월 보름날. 엄마는 나와 누이를 이끌고 벌판으로 나갔다. 이미 동네 형들은 깡통에 불을 담아 “쥐불놀이”를 하고 있었고 짚단에 붙은 불은 볼만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를 세워 놓고 내 둘레를 어머니가 불로 휘감고 지나가셨다. “달님, 달님. 우리 재철이 병이 다 낫게 하시고 복을 주옵소서!” 무서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하나님을 모르던 어머니는 불기운으로라도 아들의 장애를 치료하고 싶으셨나보다. 달을 한참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한국에서 보던 달과 같은 달인데 고국은 정말 멀구나” 갑자기 어린 시절에 바라보던 달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둥근 보름달만 운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수줍은 새색시에 눈썹마냥 가느다란 초생달은 저만치 숨어있는 인생사를 아는 듯 피어오른다. 반달은 수많은 동요를 탄생시켰고, 서서히 형체를 찾아가던 달은 정월 대보름이 되면 둥그런 얼굴을 드러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계수나무아래에서 절구방아를 찧는 옥토끼네 부부의 변함없는 사랑노래도 저 달빛을 타고 내려앉는다. 달이 지고 또다시 달을 채워가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은 달빛아래에서 사랑을 나누고 추억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그 옛날 손에 손잡고 빙빙 돌면서 “강강술래”를 부르던 해안처녀들의 자주댕기와 하얀 치마저고리, 외씨보선도 달빛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달빛은 차가우면서도 따스하다. 싸늘한 듯 냉정하면서도 포근하고, 도도한 듯 새침하다가도 때로는 수수한 입김으로 만물을 어루만진다. 달빛은 그래서 신비로운가보다. 해는 바라보기가 힘겨워 포기하고 말지만 달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같은 달이지만 달빛에서 받는 느낌은 그 사람의 경험이나 감정에 따라 다르다. 살아가면서 가끔은 달빛 앞에 서보자. 휘황찬란한 오색의 간판과 네온들로 하여금 밤이 더 산만하고 거칠어진 시대에 살지만 때로는 두고 온 내 고향 언덕에서 바라보던 그 달빛 앞에 다시 서보자. 진달래가 달빛타고 피는 봄밤을, 풀벌레가 달빛피리를 부는 여름밤을, 억새꽃과 기러기가 만월 속에서 서걱이거나 날아가는 가을밤을, 그리고 나목이 추운 밤, 산등성을 따라 민그림자를 뜨겁게 뜨겁게 그어내는 겨울 달빛 앞에 우리 모두 서 보자!

달빛은 또 다른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어 줄 것이다. 달빛은 오늘밤도 그대의 지치고 노곤한 몸을 잠시나마 편안하고 그윽하게 비추어 주리라!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박목월>님의 “나그네”이다. 이런 시도 있다. “달이 아직도 지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지구에 달맞이꽃이 피기 때문입니다/ 도시인들이 이렇게 까지 삭막해진 것은 달빛을 받지 못하고 살아서 그렇습니다.”
달빛이 가슴에 내려앉는다.


  1. 산다는 건 그런거지  5/28/2011

    감동 없이 사는 삶은 형벌이다. 사람들은 만나면 습관적으로 묻는다. “요즈음 재미가 어떠세요?” 혹은 “신수가 훤한 것을 보니 재미가 좋으신가봐요?” 재미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삶은 모름지기 재미가 있고 감동이 있어야 한다. ...
    Views78131
    Read More
  2. 미치겄쥬? 나는 환장하겄슈! 5/28/2011

    인생은 초보부터 시작한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설퍼서 마음에 안 들고 우습게 보이지만 나도 초보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초보」하면 생각나는 것이 운전이다. 내가 운전면허를 딴것은 1991년이었다. 장애인이기에 운...
    Views65932
    Read More
  3. 자녀는 선물이다 5/28/2011

    지금은 장애인사역에 전념하느라 가정 사역은 한켠으로 밀어놓은 상태이지만 가정을 살리는 일처럼 소중한 우선순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내적치유를 인도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가정의 달에 갑자기 뇌리를 스친 사람은 2번이나 자연 유산을 한 30...
    Views76858
    Read More
  4. 지금은 천국에 계시겠지요  5/9/2011

    '공교롭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집회 인도 차 한국에 간 사이에 밀알 가족들 중에 두 분이 유명을 달리하셨다. 아내의 전화를 통해 두 분의 소천소식을 들었을 때에 애통한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이미 암과 투병 중이셨...
    Views77356
    Read More
  5. 남자도 울고 싶을 때가 있다 5/9/2011

    통계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8년 정도를 더 장수한다고 한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감정표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희노애락의 정서가 있는데 여자들은 그 표현을 아주 자연스럽고도 풍부하게 한다. 반면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 어릴 때부터 들어 ...
    Views75249
    Read More
  6. 아! 청계천  4/29/2011

    금번 한국 방문 목적 중에 하나는 나의 모교인 총신대학교 “장애인의 날 기념 예배”에서 설교를 하는 일이었다. 13일(수) 정오가 가까워오면서 총신대학교 대강당에는 신학생들과 교직원 들이 자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대강당에 운집한 학생들의 ...
    Views78740
    Read More
  7. 안동 영명학교  4/29/2011

    날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집회를 인도하며 분주하게 한국에서의 일정을 감당하고 있다. 8일(금) 그리운 한 가족을 향해 안동으로 길을 재촉했다. 한국 밀알 총단장 성경선 목사님은 나를 안동까지 친절하게 라이드 해 주었다. 내가 안동으로 향하는 이유는...
    Views77214
    Read More
  8. 진중세례식  4/10/2011

    오랜만에 맡아보는 한국의 봄 냄새가 싱그럽다. 봄은 신비롭다. 신기하다. 다 죽은 것 같던 만물이 기지개를 켜며 살아나니 말이다. 개나리가 노오란 꽃망울로 봄소식을 전하더니 이내 목련이 매력이 넘치는 하이얀 목덜미를 드러내며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Views72042
    Read More
  9. 개나리 꽃이 피었습니다! 4/5/2011

    금년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눈도 엄청나게 쏟아졌다. 그 지리한 겨울의 한복판에서 “언젠가는 봄이 오겠지. 아마 금년에는 봄이 다른 때보다 더 빨리 올거야!”하는 기대감에 살았다. ‘썸머 타임’이 시행된 지 일주일 만에 정확히 지...
    Views89708
    Read More
  10. 달빛 3/9/2011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집안에 들어서려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 휘영청 밝은 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 오늘이 보름이구나!” 크고 둥그런 달이 하늘 중앙에 떠있다. 똑같은 달인데 머나먼 타국에서 바라보는 달은 그 느낌이 ...
    Views76161
    Read More
  11. 졸업 기념 - 타임캡슐 3/9/2011

    한국은 지금 졸업시즌이다. 초등학교부터 중, 고등학교를 거쳐 요사이는 대학졸업식이 한창이다. 날을 잘 만나면 따스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쌀쌀한 중에 졸업식을 거행하고 있다. 미국은 가을학기이기에 거의 초여름에 졸업식을 한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
    Views81672
    Read More
  12. 순수야, 푼수야? 2/23/2011

    나는 순수한 사람이 좋다. 순수한 사람을 만나면 살맛이 나고 삶의 도전을 받는다. ‘순진’과 ‘순수’는 다르다. ‘순진’은 사실 경험하지 않음에서 오는 풋풋함이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어린...
    Views83438
    Read More
  13. 멕시코 땅 “엔세나다” 2/11/2011

    지난 1월 12일(수) 폭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나는 L.A.행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었다. 밀알선교단 행사와 집회인도를 위해서였다. 혹한의 겨울날씨가 맹위를 떨치는 필라델피아와는 달리 L.A.는 코발트색깔의 하늘과 매일 75˚를 유지하는 쾌적한 날씨가 이어...
    Views64706
    Read More
  14. 눈 속에서 피워낸 찬양의 향기  2/11/2011

    <대학합창단 초청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밀알 가족들의 마음은 몹시 설레었다. 대학합창단의 청아한 찬양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멀리서 필라델피아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비행기 운항비를 절감하기 위해서였는지 ...
    Views68833
    Read More
  15. 음악은 인생의 친구 1/28/2011

    사람마다 취미가 다르고 추구하는 성향이 다르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음악이다. 좋아하는 장르는 다양하겠지만 음악은 인류역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삶의 조미료 역할을 감당하며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아가가 엄마 뱃속에...
    Views70407
    Read More
  16. 끊고 시작하고 1/28/2011

    중학교를 시골(양평)에서 다닌 후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나는 그리운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기차역까지 배웅을 나와 떠나가는 나를 향해 플랫 홈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친구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린 날에 정들었던 친구들과...
    Views74503
    Read More
  17. 장애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 1/13/2011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비단 당사자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 형을 둔 어떤 분이 어린 시절 “형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가 운적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 필자의 가슴은 아려왔다. 사람들은 필자를 만나기만하면 물었다. 아주 조심스...
    Views74854
    Read More
  18. 동정이 아닌 사랑으로! 1/1/2011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힘들지만 언니 집으로는 절대 가고 싶지 않아요” 장애를 가진 자매의 하소연이다. 자매는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맘 편히 머물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뇌성마비 1급 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자...
    Views75446
    Read More
  19. Merry Christmas!!! 12/24/2010

    아내와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고 차에 올랐다. 섭씨 영하 5°로 체감온도는 상상을 초월할 매서운 추위가 등줄기를 식혀버렸다. 차가 움직이면서 혼자 말처럼 중얼 거렸다. “나만 그런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성탄절이 가까워져도, 캐롤송을 불러도 성...
    Views69882
    Read More
  20. 통제하지 마세요! 12/18/2010

    사람은 누구나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꾼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결국 사랑을 위해서이고 행복해 지는 지름길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어른만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다. 소꿉놀이를 하는 어린아이들에게도 사랑의 흐름이 있다. 남녀...
    Views8088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