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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7 21:15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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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jpg

 

 

  날마다 출근하는 아내가 오늘따라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조금 더 기다리다보니 현관문이 열리고 아내가 무언가 잔뜩 담긴 용기를 내어민다. “이거 드셔!” “뭔데?” 들여다보니 오디였다. “와우, 어느새 오디가?” 한 움큼 입에 넣으니 특유의 향이 번지며 달콤하게 적셔온다. 그렇게 아내는 철을 따라 생각지도 못했던 과실을 제공한다. 어디에서 뽕나무를 발견하고 이 더운날 오디를 따온 것인지? 신기하고 고맙기 그지없다. 가을이면 밤을 따오고, 은행을 주워 구운 은행알을 입에 넣어준다. 한국에서부터 있던일이라 낯설지는 않지만 미국에 와서도 이런 호강을 누리게 해주는 아내가 고마울 뿐이다.

 

  그래, 6월에는 오디가 열린다. 아내는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뽕나무가 많았다. 길가에, 그리고 넓은 논둑에 뽕나무가 있었다. 삭개오가 올라갔던 만큼은 아니지만 때로는 큼지막한 나무도 있었다. 나무에 걸터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디를 따 먹었다. 이제 막 모판에서 옮겨 모종한 어린 벼싹들의 약동을 감상하며 말이다. 오디를 따먹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만한 나무는 올라타야 했는데 뽕나무는 미끄러운 편이라 상처를 감수하고 올라야 했다. 게다가 거미줄이 많았고 온갖 벌레들이 들러붙어 있어 발라내어 따먹는 일은 고된 노동이었다. 하지만 별로 먹을 것이 없던 그 시절에는 번거로움을 친구삼아 오디를 따먹으며 다녔다.

 

  어디에 담아 먹을 겨를도 없이 손으로 딴 오디는 입으로 직행을 했다. 그러다보니 손과 입술, 얼굴까지 보라색으로 물들 수밖에. 자신의 모습은 알아차리지도 못한채 친구의 얼굴에 검게 번져가는 즙을 보며 우스워 깔깔거리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당시에 뽕나무가 많았던 것은 집집마다 부업으로 누에를 쳤던 까닭이었다. 석원이네는 누에가 많았다. 석원 어머니는 이른 봄이 되면 까만 누에씨를 작은 상자에서 부화시켰다. 까만색에서 하루하루 색을 달리하는 누에씨를 정성스럽게 보살폈다. 보석이라도 보듬듯 아침저녁으로 누에씨의 색깔을 살폈다. 어느 날 상자 안에는 꼬물꼬물 개미 같은 누에가 움직였다.

 

  누에 방에는 싸리나무 침대 위에 층층이 누에들이 자라난다. 이때쯤 뽕나무도 어린잎을 내밀어 누에 키울 준비를 한다. 어린 뽕잎을 곱게 채 썰어 어린누에에 뿌려준다. 첫잠을 자고 난 누에가 허물을 벗고 1령이 되고, 4주일 동안에 잠을 네 번 자는데 그때마다 먹는 뽕잎의 양은 대단하다. 잔뜩 오므려서 삐죽 나온 것 같은 입이 오물오물 움직이면 어느새 뽕잎은 간 곳 없이 사라져버렸다. 누에 방에 들어가보면 사각사각소리가 모여 제법 요란하게 들렸다.

 

  한번은 넉잠을 잔 누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친구의 꾀임(?)에 넘어가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고 삼키기로 하였다. 내가 지는 바람에 먼저 엄청나게 커버려 징그러운 누에, 꿈틀거리는 누에를 산채로 삼키는 해프닝도 가져야 했다. 며칠을 꺼림직한 기분으로 살아야 했지만 그때부터 머리가 좋아졌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고단백 그대로였다. 친구와 가끔 누에 방에 들어가 숨을 죽이고 누에가 뽕잎 갉아먹는 소리를 들었던 추억이 새롭다. 시원한 빗소리와도 같았고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해준 소리이기도 했다.

 

 햇볕이 뜨겁게 익어가는 초여름이면 뽕잎은 제법 억세어지고 가지에는 오디가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초록색 애벌레처럼 작고 보잘것없다가 햇볕을 받아 농익은 오디는 검보랏빛으로 변해 제법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뽕나무를 훑으며 오디를 따먹다 보면 입술은 보라색 잉크를 칠한 것처럼 물들어간다. 혓바닥에는 오디의 오돌토돌한 성근감이 남아있고 입안에는 들큼한 맛이 가득했다. 이내 성장한 누에는 고치를 짓고 그 안에 들어앉는데 번데기를 보느라 고치를 잘라 동서남북을 외치던 추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아무 생각없이 오디를 따먹으며 다녔는데 오디가 당뇨에 좋다고하니 영양식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내가 내어민 오디를 보며 아스라이 잡힐듯한 추억을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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