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버지는 항상 완고했다. 때로는 가정폭력을 행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싫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아들로 기본예의는 갖추었지만 누구처럼 아버지에게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다. 결국 그는 상담을 받게 되었고, 조언을 받아들여 아버지와의 유럽여행을 계획한다. 비행기 탑승부터 나란히 자리를 잡아야 했다. 옆자리에 앉아있는 아버지의 숨소리가 왜 그렇게 크게 들리던지? 아들의 가슴이 쿵당거릴 정도였다. 호텔에서 지내며 어쩔 수 없이 부자는 10일 동안 여행을 이어가게 된다.
첫날 침실에 들기 전에 아들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제가 이혼을 해서 죄송합니다” 처음 꺼낸 말이었다. 아버지가 눈을 돌리며 말한다. “아들아, 내가 미안하구나. 네게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뜻밖이었다. 그렇게 불가능할 것 같은 부자간의 대화가 물꼬를 트게 된다. 남자 대 남자, 그것도 내가 이 땅에 와서 처음 만난 남자인 아버지와 내가 낳고 내가 키운 남자인 아들과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기적 아닐까?
회자되는 이런 통계가 있다. 남자들의 30%는 아버지와 대화가 없단다. 또한 남자들의 30% 정도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아주 껄끄럽단다. 마주하면 인사할 정도이지. 같은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고통이다. 또한 남자들의 30% 정도는 의무적으로 전화도 한다. 하지만 서로 눈치만 살피는 의례적이 만남만 있을뿐이다. 나머지 10% 정도가 그래도 아버지가 친구 같고, 허물 없이 지낸다고 한다. 얼마나 검증을 거친 신빙성이 있는 통계인지는 모르지만 지나치기에는 서글픈 통계이다.
남자가 남자로서, 진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면 꼭 치러야 할 통과 의식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를 새롭게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내 눈으로 아버지를 정면으로 보고 지금의 내 가슴으로 아버지를 느껴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때에 본 아버지 상(像)들의 종합이다. 어머니가 말해준 기억들이 만들어 놓은 상(像)들이다.
진짜 아버지가 아니고 내 생각으로 만들어 낸 아버지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누군가는 어릴때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고 소리를 치며 물건을 던지는 장면을 보았다. 외도를 하고 집을 나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아픈 상처가 있는 남자는 그 아버지와의 대면이 심히 불편하다. 그것보다 심각한 것은 세상을 살면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윗사람, 직장 상사, 그리고 아버지 또래들과의 관계가 힘들어 진다. 심지어 교회 목사님과도 마주하기 힘들어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면 내 안에 있는 남성성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은 내가 남자인데 남자가 되지 못한채로 된 사람이 아니라 못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남자들은 그냥 산다. 그러면서 일도, 인간관계도 잘해서 성공하고 싶어 한다. 가정도 잘 꾸리고 자식도 잘 키워서 행복하고 자랑스럽게 후회없이 살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 먹은대로 되질 않는다. 자꾸만 어느 순간 관계에서 막힌다.
보통 남자는 어머니뿐 아니라 평생 아버지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아버지는 평생 따라다닌다. 아버지를 신뢰 못하는 사람은 대체로 어른들을 신뢰하지 못한다. 아버지를 기쁘게 하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다른 노인들을 기쁘게 하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버지와 유럽 여행을 하고 온 남자가 말했다. “여행을 하고 나니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한 남자였더군요.” 그렇다. 아버지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그는 말을 이어간다. “저는 아버지와 농담을 하거나 친밀하게 놀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언제나 아버지 앞에서는 바른 자세였습니다. 그런데 막내 동생은 아버지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이 희한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자기는 아버지와 아주 재미있게 놀아 본 기억이 없다”고 말할 때 미안하고 부끄러웠단다. 사람은 배운대로 사나보다해서. 다시 만나야 할 사람 너무나 오해가 많은 사람이 아버지이다.
아버지를 만나야 한다. 그래야 진짜 사내가 된다. 아버지도 당신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