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버지니아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전도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다. 교회 역사만큼 구성원들은 고학력에 고상한 인품을 가진 분들이었다. 둘째 날이었던가? 설교 중에 ‘어린 시절 장애 때문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음’을 고백했다. 예배가 끝나고 나이가 지긋한 남자분이 내게 다가왔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당황하여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이십니까?” “아, 아까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생각이 났어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 제 짝이 목사님처럼 소아마비 장애인이었어요. 그때 친구를 놀리며 골탕을 많이 먹였거든요. 그때 그 친구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그분의 손을 꼭 쥐어주며 “아, 그러셨군요! 어디 사는지는 모르시겠지만 그때 짝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연못에 장난으로 돌을 던지지만 그 속에 사는 생물들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Not In My Back Yard’ 직역하면 “우리 집 마당에는 안 된다.” 앞글자만 따서 보통 “님비 현상”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시설이 들어섰을 때 끼치는 여러 가지 위해적인 요소로 인해 근처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꺼리는 것을 뜻한다. 주로 공동묘지, 방사능 폐기장, 송전탑, 쓰레기 처리장 등이 들어서려 할 때에 반대하는 모습을 지칭한다. 유해물질, 환경오염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 재산 가치의 하락, 지역 발전의 후퇴 등의 이유로 발생한다.
그런데 요사이 한국에서 전혀 다른 방향에서의 “님비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을 주민들이 적극 저지하며 가족들은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5일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사진과 기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 토론회>에서 벌어진 장면이다. 특수학교가 혐오시설이라며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논리로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면서 눈물을 흘렸다.
토론회에 참가한 한 엄마가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으며 “때리면 맞겠습니다, 제발 특수학교만 짓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고 이를 지켜보던 다른 장애아 학부모들도 하나둘씩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한 학부모는 “서울시에 특수학교를 건립할 때마다 이러한 상황이 생긴다면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가슴은 메어지고 뜯긴다. 헤아려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장애 아이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고운 시선과 배려의 마음을 가져주시길 바라는 바.”라고 절규했다.
이미 개교한 <밀알학교>도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천신만고 끝에 예정 개교일보다 한해가 미루어져 1997년 3월에나 개교가 가능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런데 무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이해하기 힘든 과정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이 개탄스럽다. 자신들이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나 가족들이라면 그렇게 완강했을까? 학부모들이 외치는 말처럼 장애아를 낳은 것이 죄인이란 말인가? 그분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를 해야만 하는 한국정서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장애인들의 인격은 사람들의 안중에도 없었다.
특히 소아마비 장애인들은 거동이 불편하기에 일찌감치 도장 파는 기술을 익혀 길모퉁이에 <시계포>를 차려 자리를 잡는 것이 최고의 성공이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배움의 길로 나를 인도했다. 우리세대는 기억한다. 중학교에서 학업을 멈춘 많은 학우들을 말이다. 아버지의 배려와 신념으로 지금의 내가있다. 배워야 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일수록 배움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귀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강영우 박사’, ‘이재서 밀알설립자’. ‘차인홍 교수’등이 배움의 능력을 증명한다.
장애학생들이 마음껏 학문을 연마하며 꿈과 개성을 키우는 그런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