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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5 14:16

동화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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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우정.jpg

 

 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동화를 품고 산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평생 가슴에 담고 싶은 나만의 동화가 있다. 아련하고 풋풋한 그 이야기가 있기에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철이 나고 의젓한 인생을 살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소년처럼 살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면 나만 그럴까?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나이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사는 분들을 발견한다. 한국에 가면 어린 시절부터 만난 친구들을 만난다. 어쩌면 그리도 안변할까? 말투도, 성격도, 마음씀씀이도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친구들을 발견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동화 속으로 향한다.

 

 나는 순경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를 5곳이나 다녔다. 친구들과 정이들만 하면 어느새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기구한(?) 어린 시절이었다. 처음 이사를 가서 만나는 집의 을씨년스러움, 방에 들어서면 코끝에 닿아오던 도배냄새. 부엌 입구에서 흔들거리던 백열전등이 너무도 낯설었다. 그러면서도 어느새 새 동네, 새 학교에 적응을 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뒹굴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놀랐다. 지평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양평, 강상, 서종, 옥천 초등학교를 다니며 양평은 내 가슴에 동화처럼 흘러들어왔다. 남한강, 북한강 줄기를 따라 내 어린 꿈도 영글어 갔다.

 

 양평과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동네이름은 강상, 강하로 나뉜다. 강상 초등학교는 만만한 뒷동산이 있어 좋았다. 점심 변또(도시락)를 먹을 때면 학교 뒷산에서 동리를 내다보며 먹었다. 내 곁에는 항상 연섭이와 금선이가 있었다. 누군가 노래를 시작하면 따라서 부르며 우리는 마음의 부자가 되어갔다. 셋은 공부를 할 때뿐 아니라 어디든 함께 뭉쳐 다녔다. 연섭과 나는 금선을 놓고 묘한 삼각관계였다. 금선이 조금만 한쪽으로 시선을 주면 서로를 질투하며 장난을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예쁜 얼굴을 가진 아이가 아니었음에도 뭐가 그리 좋았는지? 함께 있으면 그냥 좋았다. 그때가 우리 나이 9살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2학기에 서종으로 아버지가 전근을 하셨다. 헤어짐이 아쉬워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손을 흔들어대던 연섭과 금선의 모습을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서종은 북한강 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으며 혹시 내가 살고 있는 문호리가 배경이 아닐까?’했는데 몇 해 전 한국에 나가보니 그 동네에 소나기 기념관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우리 집 앞에는 작은 도랑이 흐르고 있었고, 아랫녘에는 시냇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양쪽을 오가는 돌 징검다리가 자리했고, 그곳에서 소나기의 두 주인공이 만난 것이다. 주인공들이 멀리 갔다가 소녀가 비를 많이 맞은 곳은 우리 동네 맞은편 산기슭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나는 3년을 지냈다. 내 생애 가장 많은 세월을 지낸 곳이다.

 

 그 시절에 만난 신비스러웠던 존재는 서울아이였다. 여름방학이면 친척집에 놀러온 서울아이는 피부부터 달랐다. 우리는 매일 냇가에서 멱(수영)을 감느라 새카맣기만 한데 그 아이는 우유 빛깔이었다. 하얀 얼굴, 하이얀 이, 너무도 어울리던 세라복,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어쩌다 담장 사이에서 마주치면 내 얼굴은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어느 날 소녀가 내게 물었다. “재철아, 명달리에 가야하는데 함께 가줄래?” 그렇게 우리는 하루 종일 다니며 동화를 썼다. 오솔길을 지나며 애꿎은 풀을 훑어대고, 시냇가 바위에 걸터앉아 동요를 불렀다. “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앉아 새파란 하늘가 흰구름 보면 가슴이 저절로 부풀어 올라 즐거워 즐거워 노래불러요그때 내 나이 11. 세상을 다 가진 듯 정말 행복했다.

 

 누구나 가슴에는 동화가 담겨있다. 저만치 뒹구는 손자, 손녀를 보며 장성해가는 아이들의 풋풋함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어린 날 마냥 즐거웠던 동화가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하다. 동화처럼 살고 싶다. 현실이 비록 냉혹하다 해도 내 가슴에 동화를 살포시 지피며 살고 싶다.

그 순수함, 때 묻지 않은 청아함을 영원히 지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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