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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09:49

발가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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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흥렬 씨. 그는 선천적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 가장 큰 애로사항은 언어소통이다. 사람을 만나면 힘겹게, 너무도 힘겹게 말을 이어가야 한다. 말들은 쉽사리 그의 입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한동안 그의 온 몸을 휘젓고 다닌 끝에야 가까스로 그의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온다. 단절되며, 어렵게 새어 나오는 그의 말들은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늘 안타까움을 동반한다. 그의 힘겨움은 마주한 상대방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하지만 그로서도 속수무책,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뇌성마비, 태어날 때부터 그의 육체를 지배해온 이 ‘장벽’은 어쩌면 그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그가 구어(口語)가 아닌 문어(文語)를 택한 것은 그래서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체장애 1급인 그가 외부와 소통하는 수단으로서의 ‘글’은 ‘말’의 고단함과 힘겨움을 얼마간은 완화시켜주는 대안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에 말이다. 아울러 그는 보다 효과적인 의사전달을 위해 왼발 사용을 연습하였다. 결국 그에게는 ‘발가락 시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경남 고성 출생인 그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심한 충격으로 장애인이 되었다. 온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던 그는 14세가 되어서야 독학으로 글을 익히기 시작했다. 자신이 움직일 수 있었던 유일한 근육조직, 왼발로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27세가 넘어 불현듯 ‘시(詩)’라는 새로운 세계로 스며들었다. 자유 재활원이란 장애인시설에서 “시를 써야 한다”는 강렬한 울림을 들었던 것이다.

 

 육체적인 장애 앞에서 끝없는 절망의 나락을 경험했던 그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늘 모호했다. 무엇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그의 육체는 그에게는 처절한 감옥이었고, 늘 그를 절망의 벼랑으로 밀어가는 한계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의 심경을 토하며 “앉은뱅이 꽃”이라는 시를 적었다. 『아파도 앓아눕지 못하는 앉은뱅이 꽃. 마음을 다해 태워도 신열은 향기로만 남는, 뿌리 깊은 앉은뱅이 꽃. 갈대밭 세상에서 숨어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키 작은 내 모양』 장애는 그가 짊어지기엔 너무도 버거운 짐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믿음이 자라면서 육체를 넘어 진정한 희망을 내다볼 수 있는 ‘영혼의 창’이 되어주었다.

 

 그에게 삶은 하나의 전투이다. 세수하고 양치질을 하고 밥 먹는 일상사가 그에게는 모두 전쟁인 것이다. “나는 전쟁도, 사회 불의에도 직접 뛰어들어 싸워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과의 싸움은 날마다 끊이지 않았습니다. 맥없이 지는 날도 있었고 철저하게 이기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삶의 빛깔을 새순이라는 모양으로 내게 주어진 터전에서 푸릇푸릇 티워 왔습니다.” 그의 피맺힌 고백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50이란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는 대학 진학을 계획하고 있다. 육체는 비록 중증 장애인이지만 시인으로서, 한국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천상병 시인처럼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긋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그는 육체적 장애라는 한계를 딛고 좀 더 넓은 삶의 지평을 바라보고 있다. 그 언덕에는 신앙과 희망, 용기와 인내라는 나무가 향기로운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그는 그 길로 향하는 길을 조용히 기도로 묻고 있는 것이다.

 

 시는 한 단어 속에 사람의 정서를 응집시켜 표현해야 하는 고도의 예술이다. 그래서 나는 수필은 쓰고 있지만 아직 시는 범접하지 못하고 있다. 온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흥렬씨는 남아있는 왼발의 근육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시를 써 토해 내고 있다. 진정 그의 시는 지상 최고의 예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장애를 안고 살아온 내 생을 돌아보면 장애인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누구의 놀림도 무시도 아닌 자신의 마음속에서 불현듯 밀려 나오는 절망감인 것을 깨닫는다. 그 무서운 속삭임을 신앙으로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 장애는 새로운 창조를 이끌어 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의 힘겨운 창작품인 시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저만치 밀려오는 실낱같은 꿈을 실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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