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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04:08

깍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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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 중에 하나가 “깍두기”이다. 무우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 적당히 양념을 버무려놓으면 감칠맛 나는 “깍두기”가 탄생한다. “깍두기”하면 설렁탕이 생각나는 것은 둘이 너무나 궁합이 잘 맞기 때문이다. 설렁탕 국물에 “깍두기”를 겸하면 부러울 것 없는 식탁이 된다. 한국 사람치고 “깍두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배추김치도 좋지만 “깍두기”는 독특한 맛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신조어가 생겨났다. “깍두기”는 분명히 김치이름인데 사람을 “깍두기”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조직폭력배’를 가르키는 말이다. 아마 육중한 체격에 옆을 바짝 쳐서 깍은 머리모양이 “깍두기”를 연상시키기에 붙여진 것 같다. 그 순수하고 맛있는 “깍두기”김치가 끔찍한 조폭을 지칭하는 말이 된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김치도 아니고 조폭과는 전혀 다른 “깍두기”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갖가지 놀이가 많았다. 지금 아이들은 컴퓨터나 게임기에 얽매어 살았지만 우리는 동무(친구의 옛 호칭)들끼리 서로 부딪히며 우정을 쌓아 갔다. 만나면 서로 편을 갈라 경쟁하는 놀이를 많이 했다. 그러다보면 꼭 끼어드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니 끼어든다기보다 어머니가 돌보라고 맡겨놓은 동생들이 있었다. 놀이는 해야 하겠고 동생도 돌보아야 하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것이 “깍두기”였다. 어린 아이라고 해서 쫓아버리거나 구석에 처박아 놓는 일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데리고 놀아주는 것이 “깍두기”였다. “너는 깍두기다.” 그때부터 친구 동생의 눈에서 빛이 난다. 사실 “깍두기”는 역할이 없다. 편도 없다. 상황에 따라 이편저편을 돌아가며 게임의 흐름을 이어간다.

하지만 “깍두기” 본인도 소외당하지 않고 존재감을 불어넣어주며 한때를 이어 갈 수 있어 좋았다. 물론 상대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다들 “너는 깍두기다.”라는 한마디에 아이들은 없는 힘까지 뽑아내며 최선을 다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지혜롭고 현명한 편법이었다.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공동의 목적을 이루는 좋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밀알선교단에도 “깍두기”들이 있다. 분명히 장애인인데 “자신은 장애가 없다.”고 한다. 자신의 장애를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굳이 “당신은 장애인이야!”라고 할 필요는 없다. 봉사차원에서 나와 다른 장애인들을 성심으로 돌보는 그들은 실로 “아름다운 깍두기”인 것이다.

어른들끼리 윷놀이를 할 때면 꼭 철모르는 아이들이 “자신도 끼워 달라.”고 할 때가 있다. 그때 자연스럽게 쓰는 방법이 “깍두기 전법”이다. “그래 너는 깍두기다.”하고는 기회가 될 때면 윷을 던지게 한다. 그러면 아이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고 기분 좋게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 신이 나서 집어 던지고 또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은 얼마나 넉넉한 장면인가? 대학시절에 <영문학 개론>을 접하면서 서양과 동양의 애정관이 극명히 다름을 깨달은 적이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의 고전 문학에 나타나는 남녀의 애증(愛憎)의 관계에 있어서 만일 상대방이 배신을 하면 남자이건 여자이건 상대방을 찾아가 복수를 하고 피를 보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 꽃”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애간장을 태우면서도 님을 보내드리는 것이 우리의 정서이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월출봉에 달뜨거든 날 불러주오” 얼마나 순수하고 낭만이 있는가? 우리나라 문화는 문자 그대로 [깍두기 문화]이다. 애정도 그렇고, 시합도 그렇고, 오락도 그렇다. 약한 자도 참여시키고, 패자에게도 부활의 기회가 주어지는 진정한 깍두기 인간형이다. 큰사람이 누구인가? 덕이 있는 사람이다. 덕은 아량이다 배려이다. “넌 안돼!”가 아니라 “너는 깍두기다.”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내 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집이다. 시각을 바꾸면 상대방의 말이 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내치지 않고 끌어안는, 능력위주 보다는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기를 “깍두기”를 통해 조명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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