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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02:51

방학숙제 7/22/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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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는 것은 힘이 들지만 “방학”이 있기에 학생들은 꿀보다 더 단 휴식을 취하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식을 하는 날은 수업이 오전만 있어서 좋았다. 방학하는 날은 가슴이 설레이는 날이다. 성적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공부를 썩 잘했다’는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며 성적표를 나누어 주는 시간이 왠지 좋았다 . 

담임선생님은 성적표를 받아가는 아이들에게 한마디씩을 던지셨다. “공부 더 열심히 해라!”라던가 “와! 이번에 성적이 많이 올랐네”였다. 성적표를 받아드는 순간 “수, 우”가 많은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지었고, “양, 가”가 많은 아이들은 상을 찡그리며 슬그머니 성적표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의 기억때문인지, 난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성적표 아래쪽에 선생님이 적어주시는 학생 발달 사항 기재란이 있었다. 

“명랑 쾌활하나 조심성이 없음”에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으며 아이들과 잘 어울림”등 그 내용은 다양했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역시 앞뒤 문맥이 다 매끄러우면서 칭찬 일색이었고, 보통은 앞에는 긍정적인 내용이 펼쳐지다가 뒤에는 충고 하는듯한 반전 문맥이 이어졌다.

성적표와 같이 받아드는 것은 “방학생활”이라는 이름의 방학책이었다. 옛날이지만 방학책에서 풍겨나오던 매콤한 기름 냄새가 아직도 코에 배어있는 듯하다. 표지는 도시아이들이 모델이 되어서 세련되게 편집되어 있었다. 방학식이 끝나고 복도를 달려 나오며 아이들은 소리를 쳤다. 

누구나 ‘해방감’을 경험 할 때는 그런 탄성이 터져나오는가보다. 이제부터는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다. 아픈 다리를 끌고 기나긴 등굣길에 나서는 일이 없어서 좋았다. 집에 돌아와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려 방학책을 넘긴다. 그러다가 방학책 사이에서 종이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방학과제” 즉 선생님이 내어주신 “방학 숙제 목록”이다. 왜그리 과제물은 많은지! 순간 한숨이 나온다. 방학은 좋은데 “숙제”는 미웠다.

방학숙제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크게 갈라진다. 방학 초기에 숙제를 ‘몽땅’ 해결하고 방학을 지내겠다는 부류와 “일단 방학은 방학, 놀고 보자”는 쪽이다. 방학이 시작되면 우선 작성하는 것이 「생활계획표」이다. 맨 위에 “하루 생활 계획표”라고 쓴다. 그리고 24시간이 들어가는 동그란 원을 그린다. 시간을 잘게 쪼개어 계획 난에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스스로 보아도 거창하다. 아침 기상시간이 오전 7시. 운동, 방학 숙제하기, 친구들과 놀기, 부모님 일 도와주기 등. 하지만 작심삼일이다. 하루 이틀은 잘 되는 것 같다가 며칠이 지나면 리듬이 깨지고 계획표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방학을 지내게 된다.

필자가 초등학교 4학년까지만 해도 “재건 아침 조례회”가 있었다. 지역별로 6학년 형이 반장이 되어 아침에 모여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상당한 제재력이 있어서 방학 내내 아침이 되면 우리는 뒷산 기슭에 모여야만 하였다. 싸리 빗자루를 든 채 말이다. 휴지도 줍고, 파여진 웅덩이도 메우고, 동네 신작로를 쓰는 일을 주로 하였다. 일이 다 끝나고 나면 반장은 출석을 불렀다. 그 모습이 왜 그리 멋있어 보였던지 6학년이 되면 꼭 반장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5학년 말에 도시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그 꿈은 접어야만했다.

생활계획표는 벽에 단단히 붙어있지만 그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많이도 돌아다녔다. 친구들은 매일 만나도 마냥 좋았다.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노래를 불렀다. 오늘은 웃마을에 갔다가 다음 날은 아랫마을로 어울려 산과 들, 물가를 쏘다녔다. 목이 마르면 시냇물을 ‘벌컥벌컥’ 들이켰고, 배가 고프면 널린 나무 열매를 따먹었다. 반도(고기 잡는 작은 그물)를 들고 시냇물 풀숲을 뒤지다가 붕어나 넙치, 미꾸라지, 피라미가 들어오면 우리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좋아했다. 그렇게 고기를 잡고 마지막에 고기가 든 깡통을 “누가 들고 갈 것이냐?”로 승강이가 붙기도 하였다. 

고기가 든 깡통을 든 아이가 그날 마지막 영웅이 된다. 동네에 들어서면 아이나 어른이나 누구든지 ‘고기를 얼마나 잡았는지?’ 궁금하여 깡통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그때 고기 통을 든 아이는 순간 우쭐 해 지는 것이다.

이렇게 뛰어다니다보니 “방학숙제”는 딴전이다. 어쩌다 아침녘 평상에 모여 앉아 숙제를 시작하지만 “멱”(수영)을 감으러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어느새 책과 공책은 접혀진 채 달려 나가고 만다. 그렇게 지내다보면 여름방학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어느새 개학날은 다가오고 “숙제”는 해 놓은 것이 미미하고 담임선생님의 부릅뜬 눈매와 손에든 회초리를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게 된다. 

개학이 다가오며 우리는 정말 바빠진다. 우선 “곤충채집”를 하기 위해 나선다. 지금이야 멋진 망사로 만든 매미채가 있지만 그때는 둥글게 나무를 틀어 왕거미부터 잡아야했다. 이튿날에 보면 신통하게도 왕거미가 거미줄을 ‘촘촘’하게 쳐놓게 된다. 그 거미줄 매미채에 침을 살짝 뱉으면 끈끈해져서 잠자리, 매미등을 손쉽게 잡을 수 있었다. “식물채집”을 시작한다. 사실 방학 초기에 채집을 해서 무거운 것으로 눌러놓아야 하는데 시간이 바쁘니 생생한 식물을 그대로 공책에 붙이게 된다. 지금은 흔한 ‘스카치 테잎’이지만 그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약국에 가서 반창고를 사다가 ‘덕지덕지’ 발라 놓게 된다.

문제는 “방학일기”이다. 어떤 아이는 미리 일기를 써놓고 연출(?)을 하기도 한다. 개학 이틀 전에 한 달반 동안에 일기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내용은 창작을 한다고 해도 날씨는 그게 아니다. 밤을 새워가며 일기를 쓰고 기억력을 되살리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여기저기 물어서 날씨를 조작한다. 그래서 일기 내용은 거의 천편일률(千篇一律)이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아침을 먹었다. 엄마가 하는 일을 돕다가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우는 동생을 달래다가 친구들과 멱을 감았다. 저녁에는 아버지가 소여물을 쑤는 일을 도와드렸다. 아주 보람된 하루였다.”

드디어 개학날, 아이들은 방학숙제 한 것을 한 짐 싸들고 학교로 향한다. 과제물을 성실히 한 아이는 당당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어깨가 ‘축’ 쳐져 등교를 하게 된다. 그때부터 펼쳐지는 많은 사건들이 뇌리에 스친다. 그 당시는 숙제를 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사이에 많은 격차가 나는 것 같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방학은 방학이어야 한다. 쉴 때는 쉬어야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방학숙제가 거의 없다고 한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 아이들이 자라 인생의 숙제 앞에 섰을 때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며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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