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6.01.22 21:18

박첨지 떼루아!

조회 수 6037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박첨지.jpg

 

 내가 어린 시절에는 볼거리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에게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장난감이었다. 학교를 오가며 논길에 들어서면 거의 모든 것을 훑고 지나다녔다. 강아지풀을 잡아채어 입에 물고 다니는 것으로 시작하여 막 피어나는 도라지꽃을 터뜨리는 재미. 잠자리, 매미는 물론 개구리를 잡아 다양한(?) 방법으로 가지고 놀았다. 이제 막 밑둥에 푸른빛을 띄며 익어가는 ‘무’는 우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강변에 깔려있는 땅콩과 참외밭, 수박밭은 좋은 표적이었다. 교문을 나서며 발견한 깡통을 이리저리 차며 집에까지 몰고 올 정도로 아이들은 놀이에 목말라했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해가 뜨면 일어나 움직이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이장 집에서 연결한 라디오 스피커에서는 오로지 KBS 국영방송만 울려 퍼졌다. 단조롭고 딱딱한 내용이었지만 사람들은 ‘지직’거리며 들려오는 방송내용에 울고 웃었다. 어린 우리들이 좋아하던 것은 오후 6시에 나오는 “국군의 방송”이었다. 씩씩한 군가로 시작하다가 연속극이 나오는데 전우애가 물씬 풍길 뿐만 아니라 전투장면에 터지는 폭탄과 총소리에 악동들은 매료되었다. 방송을 듣지 않으면 학교에 가서 대화에 낄 수 없기에 항상 줄거리를 꾀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박첨지 떼루아!”라는 인형극이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동네에는 달변에 손재주가 뛰어난 한분이 계셨다. 동네사람들에게는 조금 “괴짜”로 취급을 당했던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하던지 그분은 매일 나무 인형을 깎으며 공연을 준비하셨다. 그분이 개발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전승되어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박첨지 떼루아!”가 공연될 때면 어머니는 나를 대동하고 구경을 가셨다. 커다란 마당에 사람들이 모이면 앞쪽에 쳐진 천막위로 인형들이 떠오르며 극은 시작된다.

 

 천막 뒤에서는 그분과 변사들이 숨어 대사를 이어가는 “박첨지 떼루아!”는 볼거리가 없던 동네사람들에게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잘 다듬어지거나 고운 모양의 인형이 아니었다. 투박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나무 인형들이 번갈아 나와 변사들의 대사에 맞추어 ‘기우뚱’거리며 반응을 한다. 한창 공연을 하다가 “박첨지 떼루아!”하고는 옆의 인형에 박치기를 하면 다른 인형이 ‘쏙’ 들어가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내용은 거의 ‘권선징악’(勸善懲惡)이었고 그 당시 “박첨지 떼루아!”는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큰 역할을 했다. “박첨지 떼루아!” 공연이 끝나면 아이들은 한동안 그 흉내를 내며 다녔다. “박첨지 떼∽루∽아!”하고는 다른 친구의 머리를 박았다. 그 모습에 아이들은 또한번 자지러진다. 얼마 후 우리는 아버지의 인사이동으로 “서종”으로 이사를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부지런히 친구를 사귀고 부모님이 집안일로 포천에 가신 날. 나는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보았다. 어느새 안방은 아이들로 가득차고 “박첨지 떼루아!” 첫 공연이 시작되었다.

 

 각본을 내가 직접 쓰고 인형대신 아이들을 지도하여 연극을 준비했다. 막은 한창 유행하던 국방색 담요 끝에 줄을 매어 사용했다. 공연이 시작되며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배꼽을 잡았다. 그날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마지막에 특유의 억양을 넣어 “박첨지 떼∽루∽아!”를 합창하며 연극은 막을 내렸다. 그 끼와 재능은 젊은 전도사 시절, 교회 중고등부를 지도하며 “문학의 밤”을 진행하며 빛을 보았고 지금도 “밀알의 밤”을 연출하며 도움이 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장인(匠人)을 보았다. 주위의 시선과 평판을 묵묵히 견뎌내며 “박첨지 떼루아!” 공연을 진행하는 그분은 거인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분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언뜻 들리는 소문에 그분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어 <한국민속촌>에서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역시! 한 우물을 파던 어르신의 모습이 아스라이 그려진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게다가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장인이요. 거인이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많은 사람이 행복해 진다면 더할 나위없는 값진 인생이 아닌가!


  1. 그것만이 내 세상

    우리 밀알선교단에는 다수의 장애인들과 장애아동들이 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아울러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것도 삶이 평탄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18년 전, 밀알선교단 단장으로 부임하였을때에 전신마비 장애인이 ...
    Views17467
    Read More
  2. 그 애와 나랑은

    갑자기 그 애가 생각났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진학의 꿈을 향해 달리던 그때, 그 애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전근을 자주 다니던 아버지(경찰)는 4살 위 누이와 자취를 하게 했다. 그 시대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던...
    Views17592
    Read More
  3. 창문과 거울

    집의 경관을 창문이 좌우한다. 창문의 모양과 방향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장면은 시야로 흡수되고 느낌을 풍성히 움직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통유리가 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 창을 통해 시원하게 펼쳐진 정원을 바라보는 것이 ...
    Views18073
    Read More
  4. 나무야, 나무야

    초등학교 1학년. 당시 아버지는 경기도 양평 지제(지평)지서에 근무중이셨다. 이제 겨우 입학을 하고 학교생활에 흥미를 가지게 될 5월초였다. 방과 후 집에 돌아와 친구랑 자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셨다. 그 시간이면 한창 근무할 때인...
    Views18164
    Read More
  5. 컵라면 하나 때문에 파혼

    팬데믹으로 인해 결혼식을 당초 예정일보다 5개월 늦게 치르게 된 예비 신부와 신랑. 결혼식 한 달을 앞두고 두 사람은 신혼집에 거주하면서 가구와 짐을 정리하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에 신혼집을 찾은 예비 신부가 집 정리를 끝낸 시간은 자...
    Views18118
    Read More
  6. 우리 애가 장애래, 정말 낳을 거야?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것은 모든 부부의 바램이다. 임신소식을 접하며 당사자 부부는 물론이요,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이 다 축하하며 즐거워한다. 그런데 태아에게 장애가 발견되었을때에 부부는 당황하게 된다. ‘낳아야 하나? 아니면 다른 선택을 ...
    Views18105
    Read More
  7. 반 고흐의 자화상

    누구나 숨가쁘게 삶을 달려가다가 어느 한순간 묻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를 쓰며 살아왔을까?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화가들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자화상을 그린다. 뒤...
    Views18183
    Read More
  8. 버거운 이민의 삶

    교과서에서 처음 배운 미국, 스펙터클 한 허리우드 영화, ‘나성에 가면’이라는 노래로 그리던 L.A. ‘평생 한번 가볼 수나 있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뒹굴던 친구가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나버린 날, 강주와 나는 자취방에서 ...
    Views18263
    Read More
  9. 기찻길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자란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접하는 것이 있다.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면 푸른 바다와 그 위를 유유히 가르며 다니는 크고 작은 배들. 비행장 근처에 살았다면 헬리콥터로부터 갖가지 모양과 크기에 비행기를 보며 살게 된다. 나...
    Views24735
    Read More
  10. “안돼” 코로나가 만든 돌봄 감옥

    코로나 19-바이러스가 덮치면서 우리 밀알선교단은 물론이요, 장애학교, 특수기관까지 문을 열지 못함으로 장애아동을 둔 가정은 날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복지관과 보호센터가 문을 닫은 몇 달간 발달장애인 돌봄 공백이 생기면서 ...
    Views18977
    Read More
  11. 인생은 집 짓는 것

    어쩌다 한국에 가면 좋기는 한데 불안하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정든 일가친척들이 살고 있는 곳, 그리운 친구와 지인들이 즐비한 곳, 내가 태어나고 자라나며 곳곳에 추억이 서려있는 고국이지만 일정을 감당하고 있을 뿐 편안하지는 않다. 왜일까? 내 ...
    Views19824
    Read More
  12. 그러려니하고 사시게

    대구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절친 목사에게 짧은 톡이 들어왔다. “그려려니하고 사시게”라는 글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형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부친 목사님의 연세가 금년 98세이다. “혹 무슨 화들짝 놀랄만한 일이 생기더라도...
    Views18796
    Read More
  13. 부부는 『사는 나라』가 다르다

    사람들은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 신고만 하면 부부인 줄 안다. 그것은 부부가 되기 위한 법적인 절차일 뿐이다. 오히려 결혼식 이후가 더 중요하다. 결혼식은 엄청나게 화려했는데 몇 년 살지 못해 이혼하는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그럴까? 남편과 아내는...
    Views19345
    Read More
  14.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는 안 되고 싶다

    장애를 가지고 생(生)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살아도 힘든데 장애를 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지를 당사자가 아니면 짐작하지 못한다. 나는 장애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한다. “목사님은 장애도 아니지요? ...
    Views18765
    Read More
  15. 지금 뭘 먹고 싶으세요?

    갑자기 어떤 음식이 땡길 때가 있다. 치킨, 자장면, 장터국수, 얼큰한 육개장, 국밥등. 어린 시절 방학만 하면 포천 고향 큰댁으로 향했다. 나이 차이가 나는 사촌큰형은 군 복무 중 의무병 생활을 했다. 그래서인지 동네에서 응급환자가 생기면 큰댁으로 달...
    Views19174
    Read More
  16. 인내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건강도 기회가 있다. 젊을 때야 돌을 씹어 먹어도 소화가 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만 과식을 해도 속이 부대낀다. 그렇게 맛있던 음식이 땡기질 않는다. 지난 주간 보고 싶었던 지인과 한식당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5개월 만에 외식이었다. 얼굴이 ...
    Views19774
    Read More
  17. 오솔길

    사람은 누구나 길을 간다. 넓은 길, 좁은 길. 곧게 뻗은 길, 구부러진 길.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길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애씀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길의 종류는 많기도 많다. 기차가 다니는 ...
    Views20568
    Read More
  18. 백발이 되어 써보는 나의 이야기

    한동안 누구의 입에나 오르내리던 대중가요가 있다. 가수 오승근이 부른 “내 나이가 어때서”이다.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점점 희어지...
    Views19050
    Read More
  19. 말아톤

    장애아동의 삶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만든 영화제목(2005년)이다. 제목이 “말아톤”인 이유는 초원(조승우)이 일기장에 잘못 쓴 글자 때문이다. 영화 말아톤은 실제 주인공인 자폐장애 배형진이 19세 춘천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서브쓰리...
    Views19546
    Read More
  20. 이제 문이 열리려나?

    어느 건물이나 문이 있다. 문의 용도는 출입이다. 들어가고 나가는 소통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요사이 다녀보면 문이 다 닫혀있다. 상점도, 음식점도, 극장도, 심지어 열려있어야 할 교회 문도 닫힌 지 오래이다. COVID-19 때문이다. 7년 전, 집회 인도 차 ...
    Views2005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