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6.01.22 21:18

박첨지 떼루아!

조회 수 6039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박첨지.jpg

 

 내가 어린 시절에는 볼거리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에게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장난감이었다. 학교를 오가며 논길에 들어서면 거의 모든 것을 훑고 지나다녔다. 강아지풀을 잡아채어 입에 물고 다니는 것으로 시작하여 막 피어나는 도라지꽃을 터뜨리는 재미. 잠자리, 매미는 물론 개구리를 잡아 다양한(?) 방법으로 가지고 놀았다. 이제 막 밑둥에 푸른빛을 띄며 익어가는 ‘무’는 우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강변에 깔려있는 땅콩과 참외밭, 수박밭은 좋은 표적이었다. 교문을 나서며 발견한 깡통을 이리저리 차며 집에까지 몰고 올 정도로 아이들은 놀이에 목말라했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해가 뜨면 일어나 움직이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이장 집에서 연결한 라디오 스피커에서는 오로지 KBS 국영방송만 울려 퍼졌다. 단조롭고 딱딱한 내용이었지만 사람들은 ‘지직’거리며 들려오는 방송내용에 울고 웃었다. 어린 우리들이 좋아하던 것은 오후 6시에 나오는 “국군의 방송”이었다. 씩씩한 군가로 시작하다가 연속극이 나오는데 전우애가 물씬 풍길 뿐만 아니라 전투장면에 터지는 폭탄과 총소리에 악동들은 매료되었다. 방송을 듣지 않으면 학교에 가서 대화에 낄 수 없기에 항상 줄거리를 꾀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박첨지 떼루아!”라는 인형극이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동네에는 달변에 손재주가 뛰어난 한분이 계셨다. 동네사람들에게는 조금 “괴짜”로 취급을 당했던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하던지 그분은 매일 나무 인형을 깎으며 공연을 준비하셨다. 그분이 개발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전승되어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박첨지 떼루아!”가 공연될 때면 어머니는 나를 대동하고 구경을 가셨다. 커다란 마당에 사람들이 모이면 앞쪽에 쳐진 천막위로 인형들이 떠오르며 극은 시작된다.

 

 천막 뒤에서는 그분과 변사들이 숨어 대사를 이어가는 “박첨지 떼루아!”는 볼거리가 없던 동네사람들에게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잘 다듬어지거나 고운 모양의 인형이 아니었다. 투박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나무 인형들이 번갈아 나와 변사들의 대사에 맞추어 ‘기우뚱’거리며 반응을 한다. 한창 공연을 하다가 “박첨지 떼루아!”하고는 옆의 인형에 박치기를 하면 다른 인형이 ‘쏙’ 들어가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내용은 거의 ‘권선징악’(勸善懲惡)이었고 그 당시 “박첨지 떼루아!”는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큰 역할을 했다. “박첨지 떼루아!” 공연이 끝나면 아이들은 한동안 그 흉내를 내며 다녔다. “박첨지 떼∽루∽아!”하고는 다른 친구의 머리를 박았다. 그 모습에 아이들은 또한번 자지러진다. 얼마 후 우리는 아버지의 인사이동으로 “서종”으로 이사를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부지런히 친구를 사귀고 부모님이 집안일로 포천에 가신 날. 나는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보았다. 어느새 안방은 아이들로 가득차고 “박첨지 떼루아!” 첫 공연이 시작되었다.

 

 각본을 내가 직접 쓰고 인형대신 아이들을 지도하여 연극을 준비했다. 막은 한창 유행하던 국방색 담요 끝에 줄을 매어 사용했다. 공연이 시작되며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배꼽을 잡았다. 그날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마지막에 특유의 억양을 넣어 “박첨지 떼∽루∽아!”를 합창하며 연극은 막을 내렸다. 그 끼와 재능은 젊은 전도사 시절, 교회 중고등부를 지도하며 “문학의 밤”을 진행하며 빛을 보았고 지금도 “밀알의 밤”을 연출하며 도움이 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장인(匠人)을 보았다. 주위의 시선과 평판을 묵묵히 견뎌내며 “박첨지 떼루아!” 공연을 진행하는 그분은 거인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분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언뜻 들리는 소문에 그분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어 <한국민속촌>에서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역시! 한 우물을 파던 어르신의 모습이 아스라이 그려진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게다가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장인이요. 거인이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많은 사람이 행복해 진다면 더할 나위없는 값진 인생이 아닌가!


  1. 이제 문이 열리려나?

    어느 건물이나 문이 있다. 문의 용도는 출입이다. 들어가고 나가는 소통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요사이 다녀보면 문이 다 닫혀있다. 상점도, 음식점도, 극장도, 심지어 열려있어야 할 교회 문도 닫힌 지 오래이다. COVID-19 때문이다. 7년 전, 집회 인도 차 ...
    Views20064
    Read More
  2. 배캠 30년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안타깝게도 음악을 접할 기회가 쉽지 않았다. TV를 틀면 다양한 음악 채널이 잡히고 유튜브를 통해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듣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였다. 길가 전파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Views19528
    Read More
  3. 부부의 세계

    드라마 하나가 이렇게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을까? 종영이 된 지금도 <부부의 세계>는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여운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가족 드라마라 생각하고 시청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모와 탁월한 연기력을 겸...
    Views19695
    Read More
  4. 학습장애

    사람은 다 똑같을 수 없다. 공동체에 모인 사람들은 나름대로 개성이 있고 장 · 단점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악보를 전혀 볼 줄 모르는데 음악성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 천재적인 작품을 그려내기도 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Views20419
    Read More
  5. Small Wedding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부부의 연을 맺고 가정을 이루게 된다. 우리 세대는 결혼적령기가 일렀다. 여성의 나이가 20대 중반을 넘어서면 노처녀, 남성은 30에 이르르면 노총각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세태가 변했다. 이제는 30이 넘어도 ...
    Views20479
    Read More
  6. 지금 나의 바람은?

    사람은 평생 꿈을 먹고산다. 꿈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는 죽은 사람과 매한가지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꿈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지요?” “하이고, 내 나이가 지금 몇 살인데요?” “꿈은 무슨 꿈이예요? 다 배부른 소리지?&r...
    Views20155
    Read More
  7. 인생의 나침반 어머니

    5월이다. 싱그럽다. 아름답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 향연을 벌이고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마주 보고 있는 5월. 추웠던 겨울과 다가올 무더운 여름 틈새에 5월은 자리하며 계절의 여왕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 5월의 한...
    Views20270
    Read More
  8. 왜 남자를 “늑대”라고 하는가?

    나이가 든 여성들은 잘생기고 듬직한 청년을 보면 “우리 사위 삼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든 남성들은 예쁘고 매력적인 자매를 보면 다른 차원에서의 음흉한 생각을 한다고 한다. 물론 점잖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으시...
    Views26977
    Read More
  9. 한센병은 과연 천형(天刑)일까?

    병(病)의 종류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의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희귀병은 늘어만 간다. 지금 우리는 듣도보도 못한 바이러스로 인해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 옛날에 가장 무서운 병은 “문둥병”이었다. 표현이 너무 잔인하...
    Views27638
    Read More
  10. 어쩌면 오늘일지도

    전화벨이 울렸다. 뉴욕의 절친 목사 사모였다. “어쩐 일이냐?”고 물을 틈도 없이 긴박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지금 목사님이 코로나바이러스 양성판정을 받고 상태가 악화되어 맨하탄 모 병원 중환자실에 들어가셨어요.” 앞이 하...
    Views25934
    Read More
  11.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가수 소향, 그녀를 처음 본 것은 한국 양재동 횃불회관에서였다. SBS 관현악 김정택 단장이 친히 사회를 보며 진행되었는데 집회가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에 생소한 CCM 가수가 소개된다. 12월이서인지 자매는 “오, 거룩한 밤”을 불렀다. 특이한 ...
    Views24905
    Read More
  12. 모든 것은 밥으로 시작된다

    “식구가 얼마나 되십니까?” 식구(食口)? 직역하면 ‘먹는 입’이다. 너무 노골적인 것 같지만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이 가족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밥을 먹고 성장하며 함께 얽혀 추억을 만든다. 그래서 가족은 인류의 가장 소중한...
    Views23721
    Read More
  13. ‘장애우’가 아니라 장애인!

    사람에 대한 호칭이 중요하다. 성도들이 목사님이라고 부르면서 강단에 올라 대표 기도를 할 때에는 그 명칭이 다양해진다. “목사님, 주의 사자, 종”은 이해가 간다. 어떤 분은 “오늘 주의 종님이 말씀을 증거하실때에…”라고 ...
    Views24826
    Read More
  14. 위기는 스승이다

    인생을 살면서 형통과 평안만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세 드신 분들과 대화를 해보면 공통점이 있다. 다 고생한 얘기뿐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보릿고개의 고통을 겪으며 버틴 일, 6 · 25사변을 만나 피난 갔던 일 등. 인생은 예측불가이다....
    Views24962
    Read More
  15. 평범한 일상이 그립습니다!

    신학대학 2학년이 되면서 교육전도사 임명을 받았다. 그렇게 커보이던 전도사, 바로 내가 그 직함을 받고 누구나 “이 전도사님!”이라 부르는 자리에 선 것이다. 까까머리 고교시절부터 성장해 온 그 교회에서 이제 어린이들에게 설교를 하고 함께...
    Views25744
    Read More
  16. 부모는 영화를 찍는 감독

    남녀는 성장하며 이성을 그리워한다. 어린 마음에 이성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구름 위를 걷는 몽환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 애만 보면 가슴이 뛴다. 그 애와 우연히 눈만 마주쳐도 밤을 설친다. 그렇게 연민을 품다가 드디어 연(緣)을 맺는다. 내가 좋아할...
    Views23596
    Read More
  17. 소아마비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지던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은 어디나 가기를 좋아하던 나를 언제나 데리고 다니셨다. 몸이 온전치 못한 아들, ‘기우뚱’거리며 걸어 다니는 아들이 그분들에게는 조금도 어색하거나 부끄럽지 않으셨나 보다. &lsq...
    Views23251
    Read More
  18. 목사님의 구두뒤축

    세상이 많이 변했다. 내가 신학대학을 다니던 시절. 언론사에서 유명여대생들을 대상으로 결혼 상대자에 대한 직업 선호도를 조사한 바 있다. 물론 상위에는 소위 사字가 들어가는 직업이 랭크되었다. 과연 목사는 몇위였을까? 18위였다. 공교롭게도 17위는 ...
    Views23940
    Read More
  19. 아픔까지 사랑해야 한다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한다. 진정 삶이란 그렇게 풀어내기 힘든 과제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별 어려움 없이 다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만 힘들고 꼬이는 생을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들어가 보면 나보다 더 허덕거리며 살고 ...
    Views24548
    Read More
  20. 겨울이 전하는 말

    겨울은 춥다, 길다. 지루하다. 하지만 그 겨울이 전해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깊은 내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마력이 있다. 겨울은 해를 바꾸는 마술을 부린다. 열심히 살아온 정든 한해를 떠나보내게 하고 신선한 새해를 맞이하는 길목이 겨울이다. 남미...
    Views2632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