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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jpg

 

 

갑자기 어린 시절, 집집 툇마루에 걸려있던 메주가 떠올랐다. 이제 제법 작가의 영감이 찾아온 모양이다. 흔히 사람들은 범상한 기준보다 떨어지는 외모를 가진 사람을 향해 메주덩어리에 비유한다. 메주가 들으면 화를 낼 일이다. 메주가 만들어지기까지 들어가는 정성과 사람에게 주는 유익을 헤아린다면 그런 비유를 해서는 안 될 듯싶다. 모양새가 둔탁하다는 이유로 못생긴 사람과 빗대어 표현하는 것은 메주 입장에서는 섭섭한 일일 수 있다.

콩은 “땅에서 나는 고기라.”고 한다. 그만큼 콩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건강에 유익한 식품이다. 어린 시절 나는 콩을 싫어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그리 부드럽지도 않았고 맛도 별로였다. 특히 강낭콩은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다. 크기와 모양, 색깔이 울긋불긋하니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이가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콩을 좋아하게 되었고 건강에 좋다고 하니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늦가을이 되면 어머니는 메주를 쑤느라 온힘을 기울이셨다. 엄청난 양의 콩을 가마솥에 붓고 삶기 시작한다. 집안 깊숙이 야릇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내 건져 올린 콩을 커다란 절구통에 넣고 빻기 시작한다. 한참을 으깨고 난 후 떡덩이처럼 차진 삶은 콩을 어머니는 정성스럽게 쓰다듬으며 네모반듯하게 메주를 만드셨다. “재철아, 메주를 잘 빗으면 예쁜 아이를 낳는단다.” 고개를 갸웃하며 어머니의 말을 들었다. ‘그럴까, 과연?’

정말 어머니는 메주를 예쁘게 빚으셨다. 벽돌을 찍어놓은 듯이 가지런히 누워있는 메주덩어리를 짚으로 엮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메주는 인고(忍苦)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한 겨울 기온이 급강하 할 때는 메주가 방으로 들어오신다.(?) 햇볕이 따사로운 날은 마루로 나가신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좋은 숙성을 위해서이다. 여기저기 걸려있는 메주덩어리에 머리를 부딪치는 일과 그 특유의 역겨운 냄새를 견뎌내야 하는 것은 우리 가족의 몫이었다.

좋은 장맛을 내려면 시기가 중요하다. 음력 11월경 입동을 전후로 메주를 쑤고 추위가 풀리기 전인 이른 봄에 장을 담그는 것이 전통이다. 만사는 때가 있다. 장도 마찬가지이다. 재래 장을 담그는 시기는 음력 1월(정월)에서 삼월 삼짇날 사이가 적격이다. 그때가 세균 감염이 적어 변질이 되지 않고 숙성 과정에서 온도가 상승하면서 잘 숙성되어 특유의 맛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른 봄, 소금물에 메주를 띄워 60일 정도 햇볕에 숙성시킨 후 양력 4월 초 쯤에 메주를 건져서 장 가르기를 한다.

커다란 장독대에 떠있는 메주, 그 둘레에 빨간 고추, 까만 숯덩이가 자리를 잡고 누워있는 모습은 우리가 어린 시절에 장독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딱히 할 일이 없던 악동들은 손가락으로 밍밍한 장맛을 보기도 하고 나뭇가지로 메주를 굴려대며 놀았다. 같은 날 담근 장이라도 장독에 의해 장맛이 좌우된다.신기한 일이다. 전통 옹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숨구멍이 있어서 숨을 쉰다니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놀라울 뿐이다.

그렇게 불린 메주는 으깨어 된장으로 담그고 메주를 우려낸 간장은 따로 보관해 숙성시킨다. 이렇게 담근 햇 된장은 여름내 햇볕에 숙성시켜 가을부터는 먹을 수 있는데 1년 이상 묵혀야 더 깊은 맛을 낸다. 봄에 담근 햇 된장은 60일 정도 지나면 적당히 발효되어 먹을 수 있다. 이게 소위 재래(조선)간장의 탄생과정이다. 우리 속담에 ‘음식 맛은 장맛’이라 했다. ‘장이 단(맛있는) 집에 복이 많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장을 담근다는 것은 온갖 정성을 요구한다는 뜻이고 그 가족의 참을성과 침착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 어느 날, 샘표 간장이 출시되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외간장”이라고 불렀다. 짜디짠 조선간장보다 부드럽고 단맛의 여운이 있었다. 외간장에 밥을 비비고 하얀 김장 김치를 ‘쫙쫙’ 찢어 얹어먹으면 정말 최고의 맛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머니의 정성이 담기고 오랜 기간 숙성한 조선간장이 건강에도 좋고 더 정감이 있다는 것을. 시간과 정성을 먹고 내 가슴에 다가오는 결과만이 진정한 맛의 결정체임을 나이가 들어가며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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