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5.11.25 05:44

모자 5/16/2012

조회 수 6564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모자.jpg

 

 

동물들은 모자를 쓰지 않는다. 아니 쓰지 못한다. 사람들만이 모자를 쓴다. 따가운 햇볕을 차단하고 얼굴이 그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모자를 쓴다. 단색인 모자도 쓰지만 언제부터인가 매우 현란한 색깔의 모자들이 등장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모자를 가까이했다. 아버지가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쓰고 다니시는 경찰모는 몹시도 무거웠다. 경찰모는 앞쪽이 거창하게 올라가고 비둘기가 날개를 펴고 자리 잡고 앉았다.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기에 그랬나보다. 모자 안쪽에는 땀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굵다란 고무호스가 둘러치고 있었다.

경찰 모자를 쓰고 계급장이 달린 정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요샛말로 “짱”이었다. 아버지가 퇴근을 하셔서 모자를 벽에 걸어놓으시고 옷을 갈아입고 나가시면 나는 몰래 아버지 모자를 써보았다. 아버지의 땀 냄새가 기분 좋게 코를 찌른다. 모자가 커서 눈 밑에 까지 덮어 씌어 버렸다. 모자를 쓰고 거울을 향해 거수경례를 붙여 보는 것이 내 취미였다. 비가 올라치면 그 모자위에 비닐커버가 씌어졌고 여름에는 흰색의 천이 모자를 덮었다. 자전거를 타고 동리 곳곳을 누비며 민원을 살피시는 아버지의 멋진 모습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모자는 직업을 나타내기도 하고 직급을 표시해 주기도 한다. 내가 어릴 때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다. 어른들은 새싹그림이 그려진 초록색 모자를 쓰고 열심히 일들을 하셨다. 나에게는 “초록색 모자”에 대한 서글픈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하려던 나의 꿈은 낙방을 맛보며 산산이 부서졌다. 양평중학교(경기도)에서는 상위의 실력을 나타내며 우리 집안에서 “장애를 가졌지만 제일 공부를 잘 한다.”고 칭찬받던 나였는데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진 것이다. 옛날에는 합격자 발표를 학교중앙 건물에 벽보로 붙여 나갔다. 그 순간이 되면 학부모들과 당사자들의 모습은 초죽음이 된다. 심장이 약한 아이는 땅바닥만 쳐다보다가 겨우 고개를 들어 벽보를 바라볼 정도였다.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에 시험을 치른 학교 교정에 들어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와 벽보가 붙여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내가 이 학교에 들어가면 무엇부터 할까?’ 궁리가 많기도 많았다. 하지만 내 이름은 없었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내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다. 자세히 보니 공교롭게도 내 앞과 뒤에 수험번호는 합격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쓸쓸히 돌아섰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 생애 첫 번째 실패였다. 죽고 싶었다. 한강 다리가 떠올랐다. 그냥 걸었다. 온전치 못한 걸음으로 몇 시간을 걸었다.

그러다가 당도한 곳이 청량리 시장이었다. 우연히 초록색 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날부터 나는 초록색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다녔다.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듯 했다.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조차 싫었다. 평소 명랑하던 내 성격은 침울해 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감사한 것은 가족들의 세심한 보살핌이었다. 특히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하셨다. 그냥 내 등만 어루만져 주셨다. 이제야 안다. 애비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 주시며 아들의 표정이 돌아오기를 바라셨다.

그때 나는 모자의 실용성을 터득했다. 모자를 착용하는 사람의 심리도 알아차렸다. 그래서 인지 나는 지금도 모자를 쓴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을 할 때 모자를 쓰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따가운 태양광선을 피하기 위해 쓰는 모자는 당연하다. 하지만 항상 모자 쓰기를 즐겨한다면 그 사람은 우울증 초기현상을 겪고 있는 지도 모른다. 모자는 내 표정은 감추면서도 모든 사람과 상황은 볼 수 있는 희한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한편 모자가 잘 어울리는 사람을 나는 부러워한다. 이상하게 나는 모자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또 모자를 써서 머리가 눌리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어떠세요. 모자 좋아하세요?


  1. 사람을 바꾸는 힘 5/16/2012

    그는 고교시절 문제 학생이었다. 한번은 싸움이 붙어 상대방을 주먹으로 가격했는데 뒤로 넘어가더니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응급조치를 취해야 정당하건만 그는 너무 겁이 나서 도망을 치고 말았다. 집에 들어가면 혼이 날 것 같아 3일이나 이곳저곳을 떠돌...
    Views65851
    Read More
  2. 바다 그리고 음파 9/18/15

    세상에는 노래가 많다. 사실 들리는 모든 소리가 리듬을 타고 있다. 어린 시절에 우리 동네에는 물레방아가 있었다. 그 옆에는 대장간이 마주했다. 친구들과 심심하면 그 앞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모습은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커다...
    Views65837
    Read More
  3. 노년의 아름다움 12/2/2013

    2013년의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숨 가쁘게 달려 오다보니 어느새 한해의 끝자락이 보인다. 이제 곧 ‘2014년’이 친한 척을 하며 다가오겠지. 오랜 세월 청춘을 바쳐 몸담았던 직장을 정년퇴직한 분의 넋두리이다. 퇴직을 하자마자 소홀했던 ...
    Views65759
    Read More
  4. 친구, 우리들의 전설 5/28/2012

    인생을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기쁨이 있는 것은 “친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친구가 참 많다. 그것도 오랜 지기들이 수두룩하다. 김치는 “묵은지”가 감칠맛이 있듯이 친구도 오랜 세월 변함없는 관계가 소중한 것 같다. 한국에...
    Views65727
    Read More
  5. 결혼 일곱고개 6/17/2012

    봄은 역시 결혼의 계절인가보다. 여기저기서 청첩장이 날아든다. 세상을 살면서 “결혼”처럼 황홀한 일도 드물 것이다. “짝”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살다가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약속한다. 결혼식을 올리는 그날은 오...
    Views65696
    Read More
  6. 사람이 우선이다 3/4/2013

    삶의 목적을 성공에 두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히 그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성공의 척도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기에 어느 정도 성취를 하고나면 “곤고함”에 허덕인다. 즉 ‘내가 ...
    Views65682
    Read More
  7. 가을 품속에서 11/28/2014

    가을이다. 매년 맞이하는 계절이지만 금년 가을의 숨결은 내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한다. 무려 4개월 이상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전화를 받은 것이 6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5월 한 달, 중국 그리고 동남아 선교를 마치고 돌아와 지친 몸과 ...
    Views65668
    Read More
  8. 모자 5/16/2012

    동물들은 모자를 쓰지 않는다. 아니 쓰지 못한다. 사람들만이 모자를 쓴다. 따가운 햇볕을 차단하고 얼굴이 그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모자를 쓴다. 단색인 모자도 쓰지만 언제부터인가 매우 현란한 색깔의 모자들이 등장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
    Views65643
    Read More
  9. 밀알의 밤 바다 9/4/15

    가을이 되면 밀알선교단에서는 음악회를 연다. 2003년 7월. 밀알선교단 단장으로 부임하여 장애인사역의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당시 선교단의 상황은 열악했다. 전임 단장이 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사임하면서 시...
    Views65642
    Read More
  10. 내적치유의 효험

    상처가 상처인지도 모르고 살던 때가 있었다.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판국에 내면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 되어가고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사람들에게는 참 평안을 누리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찾아 왔다. 환경이 ...
    Views65400
    Read More
  11. 목사님, 저 기억하세요? 10/17/2014

    초등학교 국어책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아니?” 아이들이 대답한다. “원자 폭탄이요” “아니, 호랑이요” 이내 선생님이 입을 여신다. “세...
    Views65392
    Read More
  12. 이 감격, 이 감동! 11/14/2014

    사람이 살다보면 기쁨의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토록 원하던 일들이 성취되는 순간이나 생각지 않았던 일들이 영화처럼 눈앞에 나타날 때이다. 올림픽이 온 세계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은 올림픽 자체가 감동 덩어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몇 시간, ...
    Views65323
    Read More
  13. 가슴 4/19/2014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되면서 나는 참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동네를 가로 질러 지나 갈 때면 길에 나와 놀던 아이들이 다리 저는 흉내를 내며 나를 놀려댔다. 아이들은 내가 듣기에 거북한 소리를 질러댔다. 게다가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
    Views65234
    Read More
  14. 바람이 되고싶다 10/21/2013

    40대 초반 가을이었다. 다일 영성수련원(원장:최일도 목사) 경축전 ‘특송’을 부탁받고 경기도 양평 옥천을 거쳐 설악 뒷산을 차로 질주하고 있었다. 산마다 물감을 뿌려 놓은 듯 각양각색의 영롱한 단풍이 가을이 깊어감을 실감케 했다. 차창에 ...
    Views65194
    Read More
  15. 인생은 무엇인가? 7/19/2014

    날이 점점 무더워지고 있다. 한국에는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다. 지루하지만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들을 지어내던 기억이 새롭다. 빗속에 동화가 있고 저만큼 다가오는 추억이 있었다. 미국은 온통 초록색 향연이다. 그래서 ...
    Views65171
    Read More
  16. 생각의 힘 10/29/2012

    사람이 미물보다 우월한 것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흔들리고 휘청거리는 나약한 존재지만 ‘생각’을 하기에 위대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생각을 통해 꿈을 이루고 ...
    Views65104
    Read More
  17. 이마고를 아십니까? 1/9/2015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미국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조사를 한 결과 ‘돈이나 건강, 학력, 직업, 외모’가 행복지수와는 결정적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족 관계가 가장 좋은 사람, 그 중 부부관계가 좋...
    Views65103
    Read More
  18. 응답하라, 1988!

    드라마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걸까? 요즈음 아내와 드라마 삼매경에 빠져 추억에 젖어 보는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은 이런 질문을 저절로 하게 만든다. 몇 주 전에 한 교회를 방문했다. 예배를 마치고 친교시간에 담임 ...
    Views65090
    Read More
  19. 대화하고 사십니까? 5/25/2013

    한문으로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 한다. 글자대로 풀면 “사람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관계로 본 것이다. 혼자는 사람이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
    Views65082
    Read More
  20. 섬집 아기 7/10/2012

    한국인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동요가 있다. 동요는 말 그대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섬집아이”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처음 학교 음악시간에 “섬집아이&rdquo...
    Views6507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