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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8 19:24

아,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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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습.jpg

 

 나는 지금 한국 방문 중이다. 중요한 일정 중에 하나는 한국 장애인의 날에 나의 모교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채플에서 설교를 하는 귀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20() 오전 11:30. 강단에 올라 무릎을 꿇었다. 가슴 한켠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40년 전 봄. 풋풋한 20대 신학생은 복음의 열망을 안고 선지 동산에 올랐다. 사당동에서 4년 학부를 감당했는데 갑자기 대학원을 독립시켜 경기도 용인 양지캠퍼스로 이전한 지 2년차. 모든 것이 열악했다. 꼬박 3년간을 스쿨버스로 통학하며 신학을 연마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졸업 후 37년 만에 이제는 경건 예배 강사로 초청되어 강단에 서게 된 것이다.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르던지? 대강당에 운집한 학생들의 수는 언뜻 보아도 1,000여명은 넘어 보였다.

 

  40년 전. 저 아래에서 두 눈을 반짝이며, 말씀을 들었을 장애인 신학생의 모습이 그려졌다. 얼마나 꿈이 많았던가? 산천을 태워버릴만큼 열정은 뜨거웠다. 실로 약하디약한 한 장애인 신학생을 하나님은 고이 길러주셔서 어엿한 선배로 설교를 하는 순간을 준비하신 것이다. 꿈만 같았다. 평생 단 한번의 기회라고 할 만큼 엄청난 강단이기에 감사가 샘솟듯 가슴에 저며왔다. 진정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증거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아멘과 탄식. 찬양 너는 내 아들이라!”를 열창하며 마무리하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학생들의 반응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오늘 넘 좋았습니다. 선배님, 멋지십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얼마나 고맙고 예쁘던지!

 

 이후 서울로 돌아온 나는 청계천을 찾았다. 숙소로 가는 길목이었기에 운동 삼아 청계천변을 거닐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내가 서울에 살 때만 해도 가장 복잡하고 분주하던 청계천은 고가도로를 거둬내고 진정한 청계천이 되었다. 종로 3가에서 계단을 내려가자 소박하지만 맑은 냇물이 나를 반겼다. 많은 사람들이 양말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 몹시도 정겨워 보였다. 말끔한 시냇물이 흐르는 청계천은 낮설었지만 신선했다. 물가에 내려가 가만히 물에 손을 담갔다. 마치 어디에 갔다가 이제야 오셨느냐?”고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갑자기 그 옛날에 청계천 연가가 가슴을 쓸고 지나간다.

 

 당일 내가 둘러본 곳은 관수교근처였다. 관수교는 청계천 준설사업을 위한 준천사가 설치되어 있었고 준천사에서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옛 교량 명칭이다. 청계천은 서울 4대 문안에 한복판인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하천이었다. 서울시내의 북악과 인왕, 남산등. 여러 골짜기의 모든 물이 모여져서 중랑포로 빠져나가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내이다. 이러한 청계천을 1957년에 모두 덮어버리게 된다. 복개되어 냄새가 진동하는 하수구로 전락해 버린 청계천은 서울에서 가장 복잡하고 공해가 심한 곳이 되었고, 그 위에 고가도로까지 올려 음침하기 이를데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칙칙한듯했지만 고교 시절부터 청계천은 우리들의 추억이 숨쉬는 거리였다. 방과 후 을지로 대림극장 앞에서 내려 동대문 운동장을 끼고 돌면 청계천 서점가가 눈에 들어왔다. 신간서적보다는 주로 헌책이 즐비한 책방을 드나들며 날이 어둑해 질 때까지 청계천을 누볐다. 신학생이 되어서는 그곳을 찾는 횟수가 더해갔고 책을 읽고 찾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부자가 되어있었다. 3·1 고가도로는 내가 가장 애용하던 시내 진입도로였다. 정화되고 청아한 물이 흐르는 청계천으로 복원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묻어왔던 그 모든 추억들이 한순간에 정리되고 말았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다.

 

  임금이 친히 광통교에 나와 돈 20관을 다리 위에서 아래로 던져 아이들이 주워 갖게 하고 시를 지어 화답케 하였는데 이때 개천을 깨끗이 치웠다는 뜻의 청개천(淸開川)’이라는 글귀가 그 후 청계천”(淸溪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 이름대로 청아한 내()로 돌아왔다. 청계천에 흐르는 맑은 물처럼 서울시민들의 마음씀씀이 청정도가 높아지기를 기대해 보며 도로 위로 올라와 청계천을 향해 작별의 손을 흔들었다. 청계천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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