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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jpg

 

한해가 조용히 저물어 가고 있다. 식당과 쇼핑몰마다 캐롤송이 울려 퍼지고 구세군 자선냄비와 어우러져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성탄이 가까워 옴을 느낀다. 아빠 차에 오른 딸에게 물었다. “너는 캐롤을 들으면 가슴이 설레이니?” “모르겠어, 이상한 캐롤이 너무 많아서. 그런데 정말 은혜로운 캐롤을 들으면 조금은 가슴이 설레이는 것 같아” 딸의 말을 듣다말고 핀잔 섞인 한마디를 했다. “아니, 20대에 캐롤을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니?” 그렇다. 어린 시절에는 성탄이 가까워오면 가슴이 뛰었다. 20대에 성탄절은 추억 투성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성탄 찬송을 들어도 별 느낌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에 좁은 골방에서 친구와 함께 카드를 그리며 별빛 반짝이라고 가루를 흩뿌리던 때가 기억난다. 일단 십자가가 달린 예배당 그림을 그린 후 곁에 소나무 성탄트리를 세워 균형을 잡았다. 아랫목에 배를 깔고 카드를 그리는 우리들의 코를 타고 윗목에 걸려있던 매케한 메주향이 밀려 들어왔다. 40여년이 훌쩍 지나버린 세월의 뒤안길에서도 그때 그 추억이 흐뭇한 훈훈함으로 내 가슴에 되살아난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성탄절을 교회에서 보낸 기억이 별로 없다. 성탄절에 교회를 가기는 갔다. 오로지 빵과 학용품을 받기 위해서였다. 친구들이 간다고 하니 따라가서 선물을 받았을 뿐이다. 중학교 졸업반 때 처음으로 친구들끼리 모여앉아 자르던 크리스마스 케잌이 생각난다. 어른들 몰래 처음 먹어보던 샴페인 향의 여운이 아직도 입안에 머물러있다. 고교시절도 여전히 성탄절은 그냥 들 떠 보내는 절기였다. 그때는 ‘통행금지’시대였다. 자정이 넘으면 거리를 다닐 수 없었지만 일 년에 딱 두 번. 크리스마스이브와 12월 마지막 날에는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특권이 주어졌다. 그 황금 같은 찬스를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고교시절에는 밤새도록 종로거리를 싸돌아다는 것이 일상이었고 20대에는 아무 목적 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성탄을 보냈다. 군사 독재 시대였음에도 연말이 되면 서울 시내는 인파로 들끓었다. 전파사에서 울려 퍼지는 캐롤송이 분위기를 돋우고 성탄전야가 되면 그야말로 온 나라가 몰입이라도 하듯 흥분과 설레임의 도가니가 되었다. 통행금지가 해제된 서울 시내를 누비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 시대는 그만큼 통제받는 것이 너무 많았기에 모처럼의 해방이 소중했는지 모른다. 성탄의 의미도 모른 채 그렇게 지냈었다.

그러다가 소명을 받고 신학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그때부터 성탄절은 가장 바쁜 날이 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성탄발표회”(재롱잔치)가 있었다. 행사를 마무리하고 밤이 깊어지면 청년회 모임이 이어진다. 20대 초반에 청춘들은 서로 마주 앉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다양한 게임과 선물 교환을 해가며 자정을 넘기고 권사님들이 준비한 팥죽을 먹고는 조를 짜서 “새벽송”을 돌았다. 하얀 눈이 쏟아져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는 날은 실로 대박이었다. 그렇게 청춘들은 가슴이 들뜬 채 성탄전야를 하얗게 지샜다.

전도사 시절에는 중 ·고등부 아이들의 에너지를 다스리느라 힘을 소진해야 했고 성탄의 낭만보다는 학생들을 통제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20대 후반을 보내야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풋풋한 그리움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통행금지는 이제 까마득한 과거사가 되어버렸다. 경제가 어렵다지만 옛날 그 시절에 비하면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마음에는 예전 같은 여유가 없다. 성탄절의 본산인 땅에서는 “Merry Christmas!”보다는 “Happy Holiday”라는 인사가 더 익숙해져 가고 있다. 집집마다 의미도 모르는 트리장식이 요란하지만 그저 무덤덤하고 캐롤을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지 않는다.

철없이 뜻도 몰랐지만 기대감 속에 맞이하던 어린 시절에 성탄절이 그래서 사무치게 그립다. 금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세상의 어설픔에 빛으로 꿈을 주러 오신 아기예수님의 뜻을 깊이 헤아리며 맞이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저만치 지워져가는 성탄의 추억을 더듬으며 희망 한 부대 가득 선물 받는 그런 성탄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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