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5.11.25 06:04

뒷곁 풍경 9/4/2012

조회 수 6368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장독대.jpg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오붓한 장소가 있다. 바로 내가 살던 시골집 뒷곁이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울타리가 있었다. 지금 같은 견고한 시멘트나 벽돌이 아닌 나무로 엮은 울타리였다. 빨리 지나가면 보이지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안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어설픈 나무 울타리였다. 따라서 웬만하면 이웃끼리는 무슨 음식을 하고 있는지, 집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이웃사촌” 아닐까? 그때는 인심도 후해서 음식을 혼자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무슨 음식이든지 일단 옆집에 보내놓고 가족들만의 식사가 이어졌다.

집집마다 바깥마당이 있고 안마당이 있었다. 바깥마당은 온 동네의 아이들이 모여 드는 장소였다.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부터 ‘공기놀이’등을 즐겨했고, 남자 아이들은 ‘비석치기, 다마(구슬)치기, 딱지치기’등을 하며 놀았다. 그 당시에는 ‘볼거리’가 거의 없었다. 전기도 없는 시절이었으니까 지금 같은 전자제품은 상상도 못한 시대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버린 채 바깥마당에 모여 들었다. 그렇다고 아무 집 마당에만 모이는 것은 아니었다. 양지바르고 먼지가 덜나는 거기다가 주인의 마음씀씀이가 너그러운 집 마당이 가장 큰 인기였다.

그 마당에서 우리들은 사회를 배우고 친화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터득해 갔다. 왜냐하면 놀이를 하다보면 ‘얼토당토’ 않게 고집을 부리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딱지를, 구슬을 많이 따느냐?’가 아이들의 큰 관심거리였다. 아이들끼리 놀이에 열중하다가도 오지랖 넓은 지나가던 어른의 참견으로 소란스러워지면서 악동들의 꿈은 무르익어갔다. 안마당은 아무나 들어가질 못했다. 따라서 넓은 안마당을 소유한 집 아이들은 세도가 당당했다. “들어와!”라는 소리를 듣는 아이들만 안마당에 들어섰다. 안마당에서 놀다보면 그 집 엄마가 들고 나오는 간식을 먹는 특권(?)도 주어졌다. 여름에는 설탕에 잰 “토마토”가, 다른 때는 옥수수나 감자가 제공되었다.

그러다가 돌아가서 만나는 곳이 뒷곁(뒷마당)이다. 간혹 독특한 집도 있지만 거의 대동소이한 풍경이 드러난다. 뒷곁 중앙에 버티고 있는 것이 <장독대>이다. 그때는 장독이 많기도 많았다. 어마어마한 크기에 장독은 주로 간장을 담그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기다랗게 생긴 장독, 옆으로 퍼진 장독, 아기자기한 모양의 작은 장독들이 이야기를 나누듯이 장독대를 가득 메우고 서있었다. 그리고 장독대를 중심으로 텃밭이 일구어졌다. 고추, 가지, 토마토, 오이부터 깻잎, 도라지, 마늘, 딸기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울타리를 타고 오르는 나팔꽃은 아침이면 활짝 피어나 뒷곁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었다.

뒷곁을 마주보는 텃마루에는 메주가 걸리고 부지런한 주인이 해온 나뭇더미가 습기를 말려가며 겨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소나무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기분 좋은 향을 뿜어낸다. 그래서 뒷곁에 들어서면 마른 소나무 향기가 코끝에 닿으며 현기증을 일으켰다. 한편으로는 희한한 흙냄새와 곰팡이 향이 올라오기도 하였다. 뒷곁에서 무엇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투박한 모양의 굴뚝이었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굴뚝의 자태는 집의 균형을 잡아주었고 저녁이 되면 뽀얀 연기를 뿜어내며 이곳이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표식을 해 주었다.

굴뚝 옆과 울타리 사이에는 봉숭아, 채송화, 돋나물이 솟아나 작은 화원을 이루어주었다. 그 곳에 지직(돗자리)을 깔고 아이들과 엎드려 숙제를 한다. 사실 공부는 뒷전이고 이야기가 꼬리를 물면 뒷곁은 어느새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버렸다. 그러다가 나비가 나타나면 나비의 날개 짓에 넋을 잃었고 눈치 없이 나타난 지렁이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표정이 그림을 그려낸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그 뒷곁이 내 가슴에 샘을 만들어 준 것 같다. 지금도 그 샘에서 한 그릇에 글을 퍼서 나누어 주는 중이다. 아! 그 시골에 뒷곁이 너무도 그립다.


  1. 얘야, 괜찮아. 다 모르고 그랬는걸 뭐!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인연이 있다. 한 순간, 한 마디의 말, 한 사람이 인생전반에 은은한 잔영으로 남아있게 마련이다. 어느 날 문득 삶을 되돌아보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끊임없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고등학교 3학년, 예...
    Views50290
    Read More
  2. 살아있는 날 동안

    아르바이트 면접에 합격한 아들은 곧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엄마는 “공부하라”며 아들의 아르바이트를 말렸다. 아들은 ‘어려운 가정형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기쁨이 앞섰다. 그러나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
    Views48432
    Read More
  3. 공항의 두얼굴

    1970년대 공항에 대한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공항 대합실” “공항에 부는 바람” “공항의 이별” 가수 ‘문주란’은 굵고 특이하면서도 구성진 창법으로 연속 히트를 쳤다. 그때만 해도 특권층만이 국제 ...
    Views54160
    Read More
  4. 꼰대여, 늙은 남자여!

    사람은 다 늙는다. 여자나 남자나 다 늙어간다. 나이가 들어가는 서러움을 달랠량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소리쳐 보지만 늙어가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젊은이들에게 나이든 남자의 이미지를 물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Views54881
    Read More
  5. 아미쉬(Amish) 마을 사람들

    사람들은 유명하고 소중한 것이 가까이에 있으면 그 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 우리로 말하면 “아미쉬 마을”이다. 아미쉬는 푸르른 초원을 가슴에 안은 채 특유의 삶을 이어간다. 아미쉬의 특징은 전기, 자동차, 텔레비전 같은 문명의 이기를 철저...
    Views56457
    Read More
  6. 기다림(忍耐)

    현대인들은 빠른 것을 좋아한다. 무엇이든지 짧은 시간에 큰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스피드가 아니라 기다림이다. 왜냐하면 기다림은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절대 조급하지 않으시다. 하나님의 백성...
    Views158460
    Read More
  7. 감성 고뇌

    가을이 왔는가보다 했는데 한낮에 내리쬐는 햇살의 농도는 아직도 여름을 닮았다. 금년은 윤달이 끼어서인지 가을이 더디 오는 듯하다. 따스한 기온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을 정취에 흠뻑 취하고 싶어 하는 감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은근히 방해가 되는...
    Views56004
    Read More
  8.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유학생 부부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보기에도 퍽 아름답고 유익한 신앙인들의 모임이었다. 먼 이국땅에서 낮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며 사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한다. 짧은 언어로 일하면서 공부하는 유학생활은 참으로 버거운 과정이다. 같은 ...
    Views56275
    Read More
  9. Not In My Back Yard

    오래전, 버지니아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전도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다. 교회 역사만큼 구성원들은 고학력에 고상한 인품을 가진 분들이었다. 둘째 날이었던가? 설교 중에 ‘어린 시절 장애 때문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음’을...
    Views55453
    Read More
  10. 누나, 가지마!

    KBS가 UHD 다큐멘터리 ‘순례’를 방영했다. 흐르는 강물조차 얼어붙은 영하 30도, 혹독한 추위가 찾아온 인도 라다크 깍아 지른 협곡 사이로 수행자들의 행렬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외줄 하나에 온 몸을 의지한 채 순례 길을 걷는 수행자들의 모습...
    Views55147
    Read More
  11. 글씨 쓰기가 싫다

    한국에서의 일이다. 1984년, 한 모임에서 백인 대학생을 만났다. 남 · 여 두 학생은 백인 특유의 또렷한 이목구비와 훤칠한 키로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이 연인사이였는지, 아니면 그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다정다감하고 ...
    Views71208
    Read More
  12. 청춘과 함께한 행복한 밤

    실로 필라에 새로운 역사를 쓴 뜻 깊은 행사였다. 언제부터인가? 필라에 살고 있는 청춘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싶었다. 복음으로 흥분시키고 마음껏 젊음을 발산하는 장(場)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오랜 날 기도하며 준비한 밀알의 밤에 막이 오르고 메인게스...
    Views58505
    Read More
  13. 고독은 가을을 닮았다

    나는 가을을 탄다. 가을만 되면 이상하리만큼 가슴 한켠이 비어있는 듯 한 허전함을 느낀다. 가을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마력이 있다. 젊은 날에는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곰곰이 되새기게 된다. 운전을 하며 지나치는 숲속을 주시하고, 우연히 마주친 장애인...
    Views59401
    Read More
  14. 밀알의 밤을 열며

    “목사님, 금년 밀알의 밤에는 누가 오나요?” 가을녘에 나를 만나는 사람들의 물음이다. 그렇다. 필라델피아의 가을은 밀알이 연다. 15년 전,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된 밀알의 밤이 어느새 15돌을 맞이한다. 단장으로 오자마자 무턱대고 기획했던 ...
    Views52648
    Read More
  15. 넌 날 사랑하기는 하니?

    “넌 나를 사랑하니?”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남편은 가끔 섭섭함을 이렇게 토로했다. “사랑하지. 아니면 왜 같이 살겠어?” 남편은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했다. “같이 산다고 사랑하는 건가?” 나도 남편에게 섭섭함...
    Views55153
    Read More
  16. YOLO의 불편한 진실

    바야흐로 웰빙을 넘어 ‘YOLO 시대’이다. ‘YOLO’란 ‘You only live once’의 약자이다. 한마디로 “인생은 한번 뿐이다.”라는 뜻인데 굳이 죽어라고 애쓰며 살지 말고 “오늘을 즐기라”는 것이다. ...
    Views61196
    Read More
  17. 슬럼프(Slump)

    어느 주일 아침, 한 집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아들이 하는 말 “어머니 오늘은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아요?” 깜짝 놀란 어머니가 외친다. “교회를 안가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아들이 대답한다. “첫째, ...
    Views55093
    Read More
  18. 밀알 캠프의 감흥

    매년 일관되게 모여 사랑을 확인하고 받는 현장이 있다. 바로 <밀알 사랑의 캠프>이다. 그것도 건강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세월이 어느새 25년이다. 1992년 미주 동부에 위치한 밀알선교단(당시는 필라델피아, 워...
    Views52300
    Read More
  19. 구름을 품은 하늘

    처음 비행기를 탈 때에 앉고 싶은 좌석은 창문 쪽이었다. 날아오르는 비행기의 진동을 느끼며 저만치 멀어져 가는 땅과 이내 다가오는 하늘을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 작은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창 쪽에 앉은 사람을 부러워하며 목을 빼고 밖을 주...
    Views57038
    Read More
  20. 아내 말을 들으면…

    결혼을 하고 처음부터 아내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남편은 거의 없다. 가부장적 배경 속에 서 성장한 남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여자에 대해 급을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어디 여자가? 여자가 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해요!”등 흔히 들었던 소리...
    Views5369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