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3.07.28 09:10

그 강 건너편

조회 수 450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람마다 살아가며 잊지 못할 인연이 있다. 내 생애에 꼽으라면 단연 천정웅 목사님이다. 나를 오늘의 나로 가꾸어 준 멘토이다. 그분은 정말 건강했다. 20대 초반, 교회 청년부에서 ‘아야진’(동해 휴전선 근처 마을)으로 하기수련회를 갔던 때였다. 둘째 날 오후 모두들 바닷가를 찾았다. 그 찰라 제일 먼저 바다에 뛰어들어 능숙한 수영을 한 분은 목사님이셨다. 바닷속 깊은 곳에 들어가 고기를 잡아 올리는 모습을 보며 청년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항상 보아오던 양복 차림이 아닌 수영복을 입고 바다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는 목사님의 모습에 청년들은 혀를 내둘렀다. 20대 혈기 넘치는 청년들이었지만 도대체 목사님을 따라 갈수가 없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육상을 전공하신 그분은 운동에 관한 한 누구보다 뛰어난 체력과 실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분과 나는 고등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첫 인연을 맺었다. 가을이면 교내 체육대회가 열린다. 경기의 마지막 순서이자 하이라이트는 교사와 학생회 임원 간에 릴레이 육상 경기였다. 릴레이 경기는 박진감이 넘쳐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스타트하는 순간에는 아무래도 학생팀이 리드를 하게 된다. 순발력이 뛰어나고 교사들보다는 힘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주자에서 경기는 항상 뒤집어졌다. 학생 팀이 반 바퀴쯤 리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 팀 마지막 주자에게 바통이 이어진다. 그때 소리 없이 치고 나가는 분이 교사 마지막 주자인 천정웅 목사님이셨다. 어쩌면 그렇게 발이 빠를까? 발이 안보였다면 과장일까? 어느새 학생 팀 주자를 따돌리고 결승점 하얀 테잎을 끊고 들어오셨다. 그때 터져 나오는 함성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내가 신학을 공부하며 이제는 교수와 제자로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분은 강의 시간마다 건강에 대한 특강을 간간히 해 주는 동시에 체육대회가 있을 때마다 여전히 스타로 떠올랐다. 달리기에 관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했던 것이다. 1980년 후반. 천 목사님은 미국 서부로 이주하셨다. 산호세에서 목회를 하며, 당시 ‘다미선교회’가 주도한 시한부 종말론에 학적(學的)으로 맞서며 미국, 한국, 유럽까지 세미나를 인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일까? 무리가 오면서 갑자기 건강에 문제가 생겼고, 급기야 암 판정을 받게 되었다.

 

 멘토인 목사님의 병환 소식을 듣고도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당시 미국은 너무도 먼 나라였기 때문이다. 투병 중일 때 유학중인 내 신학대학원 동창 목사들이 문병을 가게 되었다. 이야기 끝에 나와 친구라고 하자 “죽기 전에 재철이 얼굴을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나중에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는지 모른다. 건강하고 당당하던 목사님이 암에 걸려 야의어가는 모습이 가련해 발을 굴렀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 야속해서 울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나이 49세였다.

 

 필라안디옥교회 박태동 장로님은 누구보다 건강하셨다. 82 고령에도 검도로 몸과 정신을 가다듬고 문인협회 회원으로 글을 쓰고 가까이하며 멋지게 사셨다. 무척이나 나를 좋아하던 장로님. 지난 6월 초, 함께 교제하며 “한달동안 한국에 다녀올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로님의 표정은 소년처럼 들떠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인일인가? 갑자기 쓰러져 투병을 하는가 싶더니 지난 7월 6일 유명을 달리하셨다. 소식에 접하고 진정 황망했다. 장례식에 참석하여 관 속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시신을 보며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악수를 할때마다 악력에 감탄할 정도로 건강하던 분이 홀연히 떠나버리다니! 작년 가을, 안마당 감가지를 꺾어 슬그머니 안겨주던 장면이 다가오며 내뺨은 눈물로 흥건해졌다. 가만히 속삭였다. “뭐가 그리 급해서 가셨어요?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언젠가는 우리도 그 강을 건너야만 한다. 죽음의 미스터리. 사람은 언제 죽을지? 어디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언제 건너갈지 모르지만 오늘 진실하게 신앙생활하고, 손을 내밀어 이웃을 살려내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1. No Image

    숙명, 운명, 사명

    살아있는 사람은 다 생명을 가지고 있다. 생명, 영어로는 Life. 한문으로는 生命-분석하면 살 ‘生’ 명령 ‘命’ 풀어보면 “살아야 할 명령”이 된다. 엄마의 태로부터 태어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살라는” 명을...
    Views2662
    Read More
  2. No Image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고교 시절에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은 박계형의 소설이었다. 그녀의 소설은 우선 단순하다. 그러면서도 책을 읽다가 실눈을 뜨고 ‘뜨락’을 바라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간혹 야한 장면이 여과 없이 표현되어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사춘기 ...
    Views2633
    Read More
  3. No Image

    개 팔자의 격상

    동물 중에 사람과 가장 가까운 존재가 개일 것이다. 개는 어디에나 있다. 내가 어릴때에도 동네 곳곳에 개가 있었다. 그 시절에 개는 정말 개 취급을 당했다. 개집도 허술했고, 있다고해도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었다. 개가 먹는 것은 밥상에서 남은 음식찌꺼...
    Views2963
    Read More
  4. No Image

    눈 뜨면 이리도 좋은 세상

    감사의 달이다. 한해를 돌아보며 그동안 누려왔던 은혜를 되새김해 본다.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분들을 생각한다. 지난 3년의 세월동안 우리는 코로나에 휩싸여 살아야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이 번지며 일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제 거추장스럽던...
    Views3133
    Read More
  5. No Image

    등대

    항구마다 바다를 마주한 아름다운 등대가 있다. 등대는 가야 할 길을 몰라 방황하는 배와 비행기에 큰 도움을 주며, 때로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등대 빛을 알아볼 수 있는 최대 거리를 ‘광달거리’라 한다. 한국에서 광달거리가 큰...
    Views2824
    Read More
  6. 외다리 떡장수

    최영민(48)은 다리 하나가 없다. 어릴 적에는 부모에게 버려진 아픔이 있다. 열살이 되던 해, 하교 길에 횡단 보도를 건너다 버스에 치어 왼쪽 다리를 잃었다. 사고 후 그는 너무 절망해서 집안에 틀어박혀 살았다. 그러다가 매일 도서관을 찾는 일이 일상이 ...
    Views3301
    Read More
  7. 가을 창가에서

    사람마다 계절의 감각을 달리 느낀다. 여성들은 봄의 감성에 손쉽게 사로잡힌다. 나는 가을을 탄다. 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원인 모를 외로움이 살며시 고개를 내어민다.홍릉의 가로수 마로니에 잎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것을 보며 사춘기를 넘어...
    Views3545
    Read More
  8. 천국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

    태초에는 숫자가 없었다. 그래서 열손가락을 사용했고, 셈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다가 오늘날 통용되는 아라비아 숫자까지 발전을 해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각자에게 번호가 주어진다. 키가 작은 아이부터 숫자가 주어졌다.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았던...
    Views3939
    Read More
  9. 남편의 위상

    “결혼 안하는 남자”라는 영상을 보았다. 소위 전문직에 종사하는 엘리트 총각들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도 결혼을 안 하는 현대의 자화상을 담아낸 영상물이었다. 인물, 신장, 집안, 학력 모두 상당한 수준에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거기다가 전문...
    Views4104
    Read More
  10. 내게 한사람이 있습니다

    우연히 차를 몰다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때문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입을 ‘삐죽’여 보기도 한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나게 했던 야속한 한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안 좋은 생각은 다 걷어 ...
    Views4138
    Read More
  11. 보람과 아쉬움

    매년 가을이면 기대하던 밀알의 밤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열일을 젖혀놓고 매년 참석하는 분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밀알의 밤 준비는 행사 3개월 전에 출연자를 결정하는 기획에 들어가고, 19년째, 40일 금식을 이어가며 준비하게 된다. 힘은 들지만 마음...
    Views3980
    Read More
  12. No Image

    마음 속 어린아이

    사람은 누구나 궁금함에서 삶을 시작한다. 그것을 호기심이라고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좁다. 사람의 즐거움은 다양하다. 우선 오감을 자극시켜 주는 즐거움이 있다. 사람의 인지능력은 시력을 통해 가동되는 경향이 높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고 싶...
    Views4334
    Read More
  13. No Image

    이태백

    칼럼 제목을 보고 옛날 당나라의 풍류 시인 “이태백”을 떠올렸다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의 약자이다. 희망에 부풀어 살아야 할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지 오래이다. 실로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Views4401
    Read More
  14. 행복의 샘, 밀알의 밤

    미국 역사상 최대의 재벌은 록펠러이다. 그는 만고의 노력 끝에 억만 장자가 되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보통 돈만 많아도 행복할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55세에 그는 불치병을 만나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 선고를 받게 ...
    Views4424
    Read More
  15. No Image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인생사에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사랑으로 태어나고 사랑으로 사람은 성장한다. 우연히 “회장님댁 사람들”이라는 영상을 보았다. 장장 22년을 방영한 인기 드라마 <전원일기>를 재구성하는 케이블방송이었다. 마침 <쎄시봉>팀들이 출연...
    Views4529
    Read More
  16. No Image

    밥상의 주인은 밥이다

    팬데믹을 지나며 놀라는 것은 물가가 너무 올랐다는 것이다. 차 운행이 필수인 미국에서 개솔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인들을 만나 식사를 할라치면 음식 가격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런치 스페셜?’ 옛날이야기이다. 저렴한 스페셜이...
    Views4333
    Read More
  17. No Image

    철학자의 인생론

    한때 ‘철학계의 삼총사’로 불리우며 다양한 철학논리를 펼친 학자들이 있다. 김형석(연대), 김태길(서울대), 안병욱 교수(숭실대)이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하지 않는가? 나야 대학 초년생때 <철학개론>마저도 고루하게 생각했던 장본인...
    Views4652
    Read More
  18. No Image

    아미쉬(Amish) 사람들

    사람들은 유명하고 소중한 것이 가까이에 있으면 그 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 사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데 말이다. ‘필라델피아’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이 있다. 영화 “록키”에서 주인공이 뛰어올라 두 손을 높이 들고 환호하...
    Views4799
    Read More
  19. 장애인들의 행복한 축제

    여름이 다가오면 장애인들과 장애아동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바로 “동부 사랑의 캠프”이다. 어떤 때는 밀알선교센터 달력이 다 찢기워 나가고 7월이 펼쳐져 있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하지만 지난 3년 멈춰서야만 하였다. 끔찍한 팬데...
    Views4606
    Read More
  20. No Image

    그 강 건너편

    사람마다 살아가며 잊지 못할 인연이 있다. 내 생애에 꼽으라면 단연 천정웅 목사님이다. 나를 오늘의 나로 가꾸어 준 멘토이다. 그분은 정말 건강했다. 20대 초반, 교회 청년부에서 ‘아야진’(동해 휴전선 근처 마을)으로 하기수련회를 갔던 때였...
    Views450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