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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5 09:48

이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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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제목을 보고 옛날 당나라의 풍류 시인 “이태백”을 떠올렸다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의 약자이다. 희망에 부풀어 살아야 할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지 오래이다. 실로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온갖 정성과 있는 돈, 없는 돈 다들여 공부를 시켰건만 자녀들이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답답할까? 우스개 소리로 “이태백”이라고 하지만 우리 세대에는 “실업자”로 통했다.

 

 나도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에 실패를 맛본 후 실업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졸업식의 분위기는 완전히 갈라졌다. 대학 합격을 한 친구들은 꿈에 부풀어있었다. 그렇지 못한 부류들에게는 냉정한 백수의 삶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절이 겨울이어서일까? 우리는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고 어울렸다. 역시 실업자에게는 겨울이 더 좋다. 새봄이 찾아오고 우리들 사이에 부인할 수 없는 벽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시절에는 대학마다 교복이 있었다. 어깨에 학교 마크가 새겨진 자켓을 입고 다녔다.

 

 대학 새내기들은 만나면 우리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캠퍼스의 낭만, 여대생들과의 미팅. 부러웠다. 시간이 흐르며 정신적 고통은 심해만 갔다. 같은 백수의 길을 가던 친구들이 하나둘 여기저기 직장을 잡았다. 하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재수를 하고 싶어도 물질적 여유가 없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려해도 장애가 있으니 나를 받아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장애인들의 취업은 생각조차 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음악이나 듣고, 키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오래 이어졌다. 이태백의 심정을 그래서 누구보다 잘 안다.

 

 백수!(百手) 순수한 한글로 “맨손”이다. 젊은 백수는 번민이 많다. 꿈도 많고 야망은 큰데 “오라”는 데는 없으니 답답하다. 나는 고교를 졸업한 백수였지만 대학 졸업반은 양상이 전혀 다르다. 일단 군대를 다녀오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해진다. 막연한 불안감을 졸업과 동시에 짊어지고, 사회에 던져진 백수는 정신적으로 거의 피가 마른다. 심장이 뜨거운 젊은 날에 할 일이 없는 것처럼 곤고한 일은 없다.

 

 일반 백수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있다. 그것은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 둔 백수이다. ‘명퇴’, ‘황퇴’(황당하게 퇴직)한 이야기는 일단 접기로 하자. 지금 말하는 백수는 ‘소신파’을 말한다. 그렇게 꿈을 안고 직장을 잡았는데 막상 다녀보니 갈수록 흥미를 잃어간다. 견디다 못해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쉬는 백수이다. ‘이제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본다. 돈도 좋지만 조금 적게 받더라도 주거지에서 가까운 곳, 작은 회사라도 인간적인 소통이 가능한 곳을 갈망한다. 좀 더 실용적이 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백수하고는 급이 다르다. 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면 지쳐버릴 수도 있다.

 

 백수도 급이 있단다. 휴일이 되었다고 하자. 초급 때는 평소에도 쉬지만 휴일이라고 기분 내며 쉰다. 중급이 되면 아무런 감흥이 없다. 가끔 날짜도 헷갈린다. 고급이 되면 “어라? 오늘 TV가 안 끊기고 계속하네!”가 된다. 식사는 어떻게 처리할까? 초급 때는 하루 세끼 다 찾아먹는다. 한 끼라도 거르면 밥 생각에 아무것도 못한다. 중급은 게임이나 채팅에 몰두하다 자주 한 끼씩 건너뛴다. 고급은 한 끼만 먹고 하루를 버틸 수 있다. 스스로도 대견해한다. 대신 나날이 ‘폐인화’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생은 어차피 돌고 돌게 되어있다. 백수에게도 기회는 온다. ‘백수’라고 주저앉아 있지만 말고 어느 순간 뜰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 그 기간은 “인생의 쉼표”일 뿐이다. 마침표가 아니라는 말이다. 책을 잡아야 한다. 허송세월을 보내기보다 기회가 오면 달려 나갈 실력을 키워야 한다. 20대가 시작되며 찾아온 백수 시절이 돌아보니 내게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런 쉼표의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도 내 손끝에서는 글이 엮어져 나오고 있다. 삶의 순간순간은 버릴 것이 없다.

 

 이 땅에 백수들이여! 그대에게도 환희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준비하라!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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